
뜨거웠던 ‘V12’의 기억을 품고 왕조를 향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호랑이 군단의 출발은 너무나도 버겁다.
프로야구 KIA는 지난 6일까지 12경기를 치러 4승 8패, 승률 0.333의 처참한 성적표를 써 9위에 자리했다. 10위 한화에 단 0.5경기 앞섰다. 1위 LG(10승1패)와는 벌써 6.5경기 차이다. 시즌 극초반이라는 점을 위안 삼으려 하지만, 가랑비에 젖은 옷이 점점 더 무거워진다.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시나리오다. 2025시즌 뚜껑을 열기 전, KIA를 향한 평가는 높았다. 모든 전문가가 입을 모아 절대 1강으로 선정했을 정도. 2016년 두산 이후 명맥이 끊긴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일굴 유력한 후보였다. 투타 모두 탄탄한 전력을 갖췄기 때문에 전혀 근거 없는 예상도 아니었다.

단 하나의 변수가 발목을 잡는다. KIA 주장 나성범이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모든 팀이 부상에 의해 순위가 요동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거다. 지난해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부상만 없다면 충분히 2연패를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며 경계심을 드러냈던 바로 그 부상이다.
개막전부터 초대형 암초를 만났다. 지난해 역사적인 시즌을 만든 최우수선수(MVP) 김도영이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장기 이탈을 마주했다. 이어 박찬호가 도루 과정에서 무릎을 다쳐 1군을 떠났다. 버팀목이 되어주던 김선빈마저 종아리 문제 때문에 정상적으로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
아무리 디펜딩 챔피언이라 할지라도 주전 내야수가 줄줄이 사라지는 불협화음을 버티기는 힘들었다. 심지어 셋 모두 지난 시즌 타율 3할을 넘긴 타선의 핵심들이다. 추락은 당연했다. 지난 시즌 유일하게 팀 타율 3할(0.301)을 넘긴 KIA의 방망이는 올해 0.249, 리그 6위로 허덕이는 중이다.
덩달아 타선의 힘으로 무마해왔던 지난해 리그 실책 1위(146개)의 흠결까지 치명타가 되어 올 시즌을 파고든다. 벌써 10개의 실책을 범해 리그 최다 4위에 올랐다. 백업 내야로 나선 김규성(3개), 변우혁(2개), 윤도현(1개) 등이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역병처럼 퍼진 암울한 분위기 속에 외야에서도 크고 작은 실수들이 터지면서 좀처럼 반전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불펜까지 무너졌다. 구원진 평균자책점이 무려 7.62로 가장 높다. 지난 시즌 필승조를 책임졌던 곽도규(12.00), 전상현(15.00) 등이 난조에 빠지면서 겨우 빼낸 점수조차 지키지 못하는 형국이다. KIA의 팀 역전패는 6번으로 리그 최다 1위다.
지난 시즌 KIA는 10경기를 치른 시점 8승2패를 내달리며 일찌감치 순위표 윗공기를 마셨다. 이후 빠르게 1위에 정착한 후, 도전자들의 추격을 칼같이 뿌리치며 정규시즌 1위를 확정하는 탄탄한 레이스를 펼친 것. 정반대 흐름을 마주한 지금, 2년 차를 맞은 이범호 KIA 감독의 리더십도 진정한 시험대에 오른다. 난관을 돌파할 운용의 묘, 강력한 해결책이 필요해진 KIA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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