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푸라민, 네오톤 같은 약품들이 전시된 걸 보니 어릴 적 기억이 떠오릅니다. 유일한 박사가 독립운동도 하신 건 여기 와서 처음 알았네요.”
2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의 유한양행 100주년 기념관 ‘윌로우하우스’에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내부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80세 동작구민 김용안 어르신은 “동네 친구들과 마실 나왔다”며 “그동안 여러 약을 쓰기만 했지 어디서 만든 건지는 몰랐다. 추억이 깊은 의약품 중에 유한양행 것이 많으네”라고 껄껄 웃었다.
이날은 윌로우하우스 미디어 투어가 진행된 날이기도 했다. 윌로우하우스는 1962년부터 1997년까지 35년간 유한양행의 본사 및 의약품생산 핵심거점으로 사용된 공간이자 최근 리노베이션을 통해 재탄생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지난 20일 공식 오픈했으며 유한양행 임직원은 물론 시민들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조욱제 유한양행 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회사와 함께 성장한 구사옥을 허물지 않으면서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며 “지난 100년 걸어온 시간과 앞으로 걸어갈 시간을 담은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은 창업자 유일한 박사로부터 비롯된 유한양행의 '버드나무' 정신이 100년째 곳곳에서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버들 유(柳) 씨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박사는 유학을 떠난 미국에서 공부와 사업을 하다 1926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국민의 평균 수명이 33.7세에 불과할 정도로 의약 분야에서 취약한 고국에 제약회사를 설립하겠다는 유 박사의 계획은 그와 미국에서 교류한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에게도 큰 감명을 줬고 서 선생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 박사에게 버드나무 모양의 목각품을 증표로 선물했다. ‘버드나무는 아무리 꺾여도 다시 자라나며, 아무리 메마른 땅에서도 깊게 뿌리를 내리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이 버드나무처럼 조선 민족에게 시원한 그늘을 안겨주고 희망을 주는 기업이 돼라’는 당부와 함께.
한국에 돌아온 유 박사는 그해 6월20일 서울 종로 덕원빌딩 내 사무실에 터를 잡고 자신의 성 ‘유’와 한국을 의미하는 ‘한’을 붙인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회사 로고에도 버드나무가 들어갔다. 이후 신문로 사옥을 거쳐 1962년 대방동에 터전을 잡았다. 1971년 영면한 유 박사의 마지막 숨결이 깃든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윌로우하우스는 크게 ‘유한아카이브’와 ‘윌로우그라운드’, ‘윌로우파크’로 나뉜다. 회사의 100년 역사를 담은 유한아카이브는 1층 미디어아트홀 및 체험 전시관, 2층 메모리얼홀, 3층 비전홀로 구성됐다.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윌로우그라운드는 카페와 식당, 파빌리온, 뉴스퀘어가 마련됐다. 타임캡슐이 묻힌 윌로우파크는 산책을 하고 벤치에서 쉴 수 있는 공원이다.
버드나무를 뜻하는 영단어 윌로우(Willow)가 들어간 이름처럼 곳곳에서 버드나무를 볼 수 있었다. 우선 투어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유한아카이브 1층 로비에는 현재 회사의 로고인 커다란 버드나무 모양을 한 대형 미디어월이 설치돼 환영 영상이 흘러나왔다.
또한 비전홀 천정에는 바람에 흩날리는 초록색 버드나무 가지를 형상화한 샹들리에형 조형물이 있었다. 그 아래로 국산 항암제로는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청(FDA) 허가를 받은 렉라자를 비롯한 전문의약품, 안티푸라민 등 일반의약품, 마그비 등 건강기능식품, 반려동물 브랜드 윌로펫, 유한락스 등 유한양행의 브랜드와 제품들이 진열됐다.
메모리얼 전시된 유한양행 100년 전통을 상징하는 주요 의약품에도 버드나무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1933년 회사의 첫 자체 의약품 안티푸라민, 같은 해 출시된 인삼 기반의 자양강장제 네오톤, 1956년 탄생한 결핵치료제, 1963년부터 함께하는 영양제 삐콤 등이었다.
아울러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과 유품 등과 더불어 전시된 저서 중에도 ‘버드나무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또한 윌로우하우스와 현재 사옥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윌로우파크엔 버드나무 한 그루가 식재돼 있었다.
그밖에도 1957년 국내 최초 항생제 생산, 1965년 국내 최초 결핵 치료제 원료 생산, 1969년 국내 최초의 전문경영인제도 도입, 1970년 네오톤 홍콩 수출, 1997년 업계 최초의 우수의약품유통관리기준 적격 업소 지정, 2013년 업계 최초 원료의약품 1억 달러 수출, 2014년과 2025년 각각 업계 최초의 매출 1조원·2조원 돌파 등 국내 제약의 역사를 새로 쓴 주요 이정표를 윌로우하우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든 방문할 수 있는 윌로우하우스는 스탬프 투어를 완성하면 유한양행 키캡을 선물로 받을 수도 있다. 동작구민 강영문 씨는 “벌써 동네에서 꽤 유명해진 곳”이라며 “유한양행이 단순히 오래된 제약회사라고만 생각했는데 100년이나 된 지는 몰랐다. 같은 동네 주민으로서 괜스레 자부심이 느껴진다”고 엄지를 세웠다.
박재림 기자 jami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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