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고3입니다. 야구, 계속 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국가대표의 고민, 한국 여자야구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열정이라는 엔진으로 거침없이 달렸지만, 언제까지 의지에만 기댈 수도 없다. 누구나 오래, 멀리까지 달릴 수 있도록 길을 정비하는 작업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 여자야구의 가장 큰 문제점, 중학교 이후 고교와 대학으로 이어지는 성장 사다리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유소년 선수는 늘었지만 꾸준히 훈련할 팀도, 실전 감각을 유지할 동료도 구하기 어렵다. 미국 여자프로야구(WPBL)서 활약 중인 김현아(보스턴 헌터스)도 “어린 선수들이 다음 단계로 건너가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짚었다.
국가대표, 태극마크라는 자부심도 현실 앞에서 무너진다. 대표팀 활동이 학교 공결이나 체육 관련 진학에 반영되지 않아 선수로서의 노력과 성취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다. 박주아(샌프란시스코 파이어벨스)는 “후배들에게 돈과 시간, 진로를 모두 걸고 야구에 100%를 쏟으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유망주들의 진로까지 흔들린다. 다른 종목으로 눈을 돌리거나 학업으로 돌아가는 케이스도 많다. 고교 2학년이지만 벌써 국가대표팀에 승선한 투수 곽소희 역시 고민에 빠졌다. 180㎝에 가까운 신장으로 농구와 배구 쪽 권유도 많았지만 모두 제쳐두고 야구를 선택했다. 그러나 당장 현실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 살 어린 외야수 박민교도 대표팀 선수로 활약 중이다. 고교 진학 대신 검정고시 후 일본 유학 등을 모색하고 있다. 어머니 권소현 씨는 “참고할 경로가 부족하다. 기회도 제한적이다. 선수와 부모 모두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대로라면 힘겹게 발굴한 재목들을 잃을 위기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이 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팔 걷고 나서고 있다. 천안 주니어팀을 직접 지원한 데 이어 수도권과 영남 등 권역별 육성 거점을 넓혀, 주니어부에서 학교팀과 전국체전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종목화’ 체계를 단계적으로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이수미 연맹 사무국장은 “주니어팀이 늘어야 학교팀 창단에 필요한 선수층도 갖출 수 있다”며 “지역별 기반부터 하나씩 다져 학교체육과 해외 프로 진출로 이어지는 길을 차근차근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다음 고리도 마련해야 한다. 현장에선 대학팀과 함께 일정한 급여를 받거나 개인 비용을 덜고 운동할 수 있는 준실업팀을 장기적인 대안으로 꼽는다. 한 선수는 “대학팀과 준실업팀을 마련해 정기적인 훈련과 대회 출전을 보장하고, 교통비와 장비비 등 기본 부담부터 줄여야 한다”며 “좋아서 버티는 데 그치지 않고 운동을 계속할수록 기량과 경력이 쌓이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선수들도 더 높은 목표를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때론 출발선을 넓히는 일도 중요하다. 일본 공원서 모녀가 자연스럽게 캐치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운을 뗀 김라경(뉴욕 하이츠)은 “한국은 안전을 이유로 공놀이 자체를 막는 공간이 많다”고 고개를 저었다.
거창한 변화가 필요한 건 아니다. 티볼공이나 고무공을 활용해서라도 누구나 야구를 접할 장소부터 늘려야 한다는 게 김라경의 설명이다. 그는 “여자 선수도 자연스럽게 전문 선수를 꿈꿀 수 있는 터전을 만들려면 이런 작은 변화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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