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잃은 KPGA, 결국 전통과 역사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다.
69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선수권 대회가 자랑하는 숫자다. 국내 프로골프 대회 가운데 유일하게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개최됐다. 골프계 ‘키다리 아저씨’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이 대회에 지원하는 금액만 무려 16억원이다. KPGA는 지난 3월 10억원을, 이후 6억원을 분리해 지급 받았다. 덕분에 지난주 막을 내린 KPGA 선수권대회는 총상금 16억원, 우승 상금 3억2000만원 대회로 치러졌다. 올 시즌 KPGA 투어 최대 상금 대회였다.
풍산그룹이 지원한 16억원, 18홀 파크골파장을 건설할 수 있는 금액이다. 경기도 하남시는 미사동 일원 1만4000㎡ 부지에 7월 준공을 목표로 18홀 규모의 파크골프장을 착공했다. 여기에 투입되는 자금이 16억원이다. 현시점에서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풍산그룹 입장에서 매년 파크골프장 1개씩 건설하는 것이 홍보·마케팅 측면에서는 더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풍산그룹이 KPGA 선수권대회에 이처럼 큰 금액을 지원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전통과 권위의 최고 대회라는 타이틀, 한국 남자 골프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K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선수권대회 출전에 큰 비중을 둔다. 우승자 이름이 새겨지는 순간, 단순 대회 챔피언이 아니라 한국 골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인물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 역사에 가장 엄격해야 할 KPGA가 역사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제69회 KPGA 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문동현은 20세 2개월 2일의 나이로 정상에 오르며 대회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가 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KPGA는 처음에 종전 최연소 우승 기록 보유자를 2023년 우승자인 최승빈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2012년 우승자인 이상희가 종전 기록 보유자라고 정정했다. 하지만 그것도 틀렸다. 추가 확인 결과 1960년 제3회 대회 우승자인 한장상 KPGA 고문이 이상희보다 더 어린 나이에 우승한 사실이 확인됐다.
오래된 기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차례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은 단순한 행정 착오로 넘기기 어렵다. 69년 역사를 자랑하는 단체가 가장 중요하게 관리해야 할 기록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게 됐을까.
찬찬히 살펴보면 KPGA 내부 혼란 연결된다. KPGA는 내부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럽다. 올해 초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KPGA가 해고한 직원들에 대해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다. 직원들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 복직했지만, 여전히 소외돼 있다. 복직한 직원 가운데 A씨는 신규개발팀에 합류했다. 직원은 없다. 1인 부서다. KPGA 사무실과 동떨어진 별도의 공간에 사무기기 하나 없이 책상만 덩그러니 놓은 채 근무 중이다. 맡은 업무도 신규 스폰서 유치다. 마케팅팀이 모두 달려들어도 힘든 스폰서 유치를 단 1명의 직원에게 맡겼다.
A씨는 오랜 기간 KPGA 투어 선수들의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통계 시스템 구축에 참여한 데이터 실무 전문가다. 현재 KPGA 투어에서 활용되고 있는 각종 기록과 통계 체계를 구축하는 데 관여했던 인물이다.
리더의 역할은 적재적소에 맞춤형 인재를 배치해 최고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지휘하는 것이다. 스포츠 단체에서 기록 관리와 데이터 구축 경험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역량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 그리고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함께 쌓여야 가능한 영역이다. KPGA는 왜 오랜 시간 축적된 데이터와 기록 관리 경험을 가진 전문가를 기록과 무관한 업무에 배치하고 있는 것일까. 기록의 역사가 흔들린 사태, KPGA가 자처한 셈이다.
김원섭 KPGA 회장은 지노위의 부당해고 판정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재심을 요청했다. KPGA 고위 임원은 “끝까지 가겠다”는 말을 서슴치 않게 던지고 있다. KPGA는 2025년 투어 적자로 인해 결산안이 부결됐다. 벌써 6월이다. 3개 대회를 치르면 약 2개월의 휴식기에 들어간다. 2026년 투어가 상반기가 끝나는 시점까지 부결된 2025 결산안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노위 재심 과정에서 투입되는 추가 비용은 무엇을 위한 투자일까.
스포츠 조직에서 반복되는 작은 균열은 대개 우연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에서 시작된다. 사람을 잃은 조직은 경험을 잃고, 경험을 잃은 조직은 역사를 잃는다. 문동현은 새로운 역사를 썼다. 그러나 그 역사를 관리해야 할 KPGA는 정작 역사를 지켜온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69년 역사를 자랑하는 KPGA가 지금 되새겨야 할 것은 새로운 기록이 아니라, 그 기록을 지켜온 사람들의 가치인지도 모른다.
권영준 기자 young0708@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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