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스마트팜·시니어 주택 등
건설, 수소 발전·통신판매 등 정관변경
제약도 동물의약품·건기식 등 확대
올해 정기 주주총회 시즌에 들어선 유통·건설·제약업계가 일제히 ‘변화 카드’를 내밀고 있다. 경영 안정을 도모했던 지난해와 완전 달라진 모습이다. 올해는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가 주요 안건에 오르면서 신사업 카드를 꺼내들었다.
올해 주총 핵심은 기업가치 제고다. 새 바람을 위해 사명을 변경하고, 정관을 개정하면서 시장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유통업계의 새 먹거리 선점
유통업계는 지주사 및 계열사 사명 변경부터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는 정관 개정에 나서면서 기존 유통업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먼저 일부 기업들은 사명 변경을 통해 기업 정체성을 재정립한다. 정유경 회장이 이끄는 (주)신세계의 자회사 신세계센트럴시티는 오는 20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명을 기존 신세계센트럴시티에서 ‘신세계센트럴’로 변경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향후 종합 부동산 개발회사로 성장한다는 목표다. 스포츠 브랜드 휠라와 골프용품 업체 아쿠쉬네트 등을 운영하는 휠라홀딩스도 오는 31일 주총에서 상호를 미스토홀딩스(Misto Holdings Corporation)로 변경한다. 2023년 홍콩에 세운 글로벌 브랜드 사업 법인 미스토브랜드홀딩스에서 따왔다. 이를 토대로 다양한 브랜드 사업을 하겠다는 취지다.

주총을 통해 신사업 추진을 위해 정관 개정에 적극 나서는 유통기업도 있다. 호텔신라는 20일 정기주총에서 사업목적 변경 안건을 다룬다. 종합휴양업과 콘도미니엄 분양·운영업, 노인주거·여가복지 설치 및 운영사업을 정관에 추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시니어 레지던스 사업 추진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롯데하이마트도 같은 날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관상 사업 목적에 전자·전기·통신 기계기구 및 관련 기기, 기타 관련 부속품의 제조업, 방문판매업 및 이에 부수하는 서비스업을 추가한다. 조립 PC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령화 사회에 맞춰 고객 평생 케어 기반의 안심 상담 및 구매 지원을 확대한다는 목표다. 농심은 오는 21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스마트팜 사업을 정관상 사업 목적에 넣는다. 2018년 사내벤처 닥터팜을 결성하고 스마트팜 사업을 개시한 지 7년 만이다. 이번 정관 개정을 계기로 스마트팜 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동원F&B도 오는 26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무려 17개의 신규 사업을 정관상 사업 목적에 추가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전자상거래 및 통신판매 중개업, 광고대행업, 인터넷 콘텐츠 개발 등 인터넷 서비스 관련 사업을 비롯해 식품 가공 및 의류 봉제 판매업, 생활필수품 판매업, 애완동물 관련 용품 판매 및 유통업 등이 추가된다.
◆신사업으로 건설경기 침체를 돌파하라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건설업계도 신사업 발굴, 사업 다각화를 통해 돌파구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달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는 건설업계 정기 주주총회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사업 다각화다.
삼성물산은 지난 14일 열린 주총에서 통신판매중개업, 수소발전 및 관련 부대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는 정관 변경안을 의결했다. 기존 플랜트 사업 역량을 활용해 수소 사업 분야에 대한 역량을 확보하고 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함이다. 또 삼성물산은 홈플랫폼 홈닉(Homeick)과 빌딩플랫폼 바인드(Bind) 사업 확대를 위해 통신판매중개업도 추가했다.

GS건설은 오는 25일 열리는 주총에서 통신판매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는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친환경·고효율 모듈러 주택 공급을 확대와 B2C시장으로 사업 영역 확대를 위한 행보로 보고 있다. 모듈러주택은 집의 건축물 각 부분을 공장에서 미리 생산한 후 현장으로 운반해 조립·설치하는 공법이다. 한국철강협회와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모듈러 건축 시장 규모는 2022년 1757억원에서 2023년 8000억원을 넘어섰고, 오는 2030년에는 2조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경기 부진이 장기화하며 차별화된 신사업을 통해 미래 먹거리 선점이 중요해졌다”며 “당분간 업황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이는 만큼 건설사들은 신사업에 진출하거나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데 공을 들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견 제약사들의 신사업 추진
트럼프발 관세 및 국내 약가인하 정책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제약업계도 중견 제약사 중심으로 사업 다각화를 통해 희망을 찾으려 한다.
19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이달 말 국내 주요 제약사들은 주주총회를 갖고 현재의 불확실한 사업 환경을 타개할 방안을 모색한다. 대형 제약사들이 경영진 및 경영구조 변화에 초점을 맞춘 반면 연매출 1000억원대의 중견 제약사들 중에는 신사업 전개를 위한 정관 변경의 움직임을 보이는 회사들이 눈에 띈다. 특히 중견 제약사는 규모 차이에 더해 제네릭(복제약) 의존도가 비교적 더 심하기 때문에 한숨이 깊다. 캐시카우(수익창출원)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먼저 유유제약은 오는 27일 정기 주총에서 동물의약품(동물의약외품·동물건강기능식품·동물용품)의 제조·판매업을 추가하는 정관 변경안을 상정한다. 이미 회사를 대표하는 비타민제 유판씨의 이름을 본 딴 강아지용 및 고양이용 영양제 멍판씨와 냥판씨의 상표등록도 출원한 상태다.
안국약품도 오는 28일 주총에서 사업목적에 사료 제조·수입·판매업과 미용기기 제조·유통·판매업을 추가하는 안건을 올린다. 전자의 경우 현행 법규상 반려동물 영양제도 사료의 하나로 취급되는 만큼 펫 영양제 시장에 합류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 가능하다. 후자는 2018년 브랜드 메디페르를 론칭한 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화장품 사업에 다시 힘을 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신신제약은 건기식 사업 강화에 나선다. 오는 26일 주총에서 식품 첨가물 제조 판매업 기존 정관을 식품, 건기식, 식품 첨가물 제조 및 판매업으로 변경 확장한다. 현재 보유 중인 건기식 브랜드 신신HL에 더욱 힘을 싣겠다는 의지다. 아울러 신신제약은 이번 주총에서 피부 미용 브랜드 웰스킨을 이끄는 박경찬 대표이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으로, 관련 품목 확대를 계획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중견 제약사들은 몸집 키우기가 아닌 생존의 차원에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신사업도 전혀 새로운 도전이라기보다는 기존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희원·박재림·이정인 기자 happy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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