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방이 아닌 ‘비전’을 보여줄 때다.
어느덧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한체육회장,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레이스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기흥, 정몽규 현역 회장들은 장기집권의 길을 노린다. 이에 맞서는 대항마들도 하나둘 고개를 드는 중이다.
4일 기준 체육회장 선거 후보는 8명이나 된다. 이 회장을 포함해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 김용주 전 강원도체육회 사무처장, 박창범 전 대한우슈협회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 오주영 대한세팍타크로협회 회장 등이 경쟁을 펼친다.
축구협회는 12년 만의 경선을 앞뒀다. 2013년 이후 처음이다. 축구 대통령 자리를 두고 정 회장과 허정무 대전하나시티즌 전 이사장, 신문선 명지대학교 초빙교수의 3파전이다.
한목소리로 반(反)이기흥, 반정몽규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네거티브 공방 때문이다. 3년 전 열린 제41대 체육회장 선거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2선에 도전한 이 회장을 포함해 총 4명의 후보자가 경합, 정책 토론회가 열린 바 있다.
당시를 떠올린 체육계 한 관계자는 “서로 정책으로 경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며 “시종일관 검증이라는 명목 아래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전했다. 실제로도 후보 간 형사고발이 난무하는 등 ‘진흙탕’ 싸움에 가까웠다는 후문이다.
후보자 추가 검증 기회가 더 이상 없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관련 토론회 자체도 그해 단 한 차례만 진행됐다. 관계자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후보 한 명이라도 그냥 안 하겠다고 하면 끝인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번 선거 양상 역시 심상치 않다. 먼저 체육회장 후보인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의 경우 출마 선언과 함께 해명에 나서야 했다. 탁구협회장 시절 불거진 기부금 의혹 때문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네거티브는 후보로서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한 유 전 회장은 “(탁구협회장으로 재임한) 5년 동안 100억 원이 넘는 후원금을 유치했고, 유소년, 프로리그, 국가대표 지원금 등으로 활용됐다. 회장으로서 단 한 번도 법인카드를 쓴 적이 없다. 투명하게 사용했다고 자부한다. 모두가 공감할 만한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축구협회장 선거 흐름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게 문제다. 정책 홍보보다는 선두주자인 정 회장 흉보기에 온 신경을 쏟고 있다. 허정무 후보는 “정 회장의 4선 도전은 그 자체로 축구계의 큰 불행”이라고 했고, 신문선 후보는 “재벌 총수가 행정을 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이 가운데 최근 코리아컵 결승전 현장을 방문했던 허 후보 측은 “허 전 이사장이 팬들의 우호적 민심을 확인했다. 반면, 정 회장에게는 야유가 쏟아졌다”는 내용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강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다만, 차별화된 비전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상대를 때리는 데 집중했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KBS 스포츠국장 출신인 정재용 대한민국농구협회 상근부회장은 “이번 체육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그 어느 후보도 뚜렷한 정책을 내놓고 이런 방향으로 대한민국 스포츠를 끌고 가겠다,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다, 이런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 및 대안을 제시하는 분이 없더라. 우리 체육계의 가장 큰 비극 아닐까 싶다”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갈등과 비방으로 점철된 선거는 결국 체육계 발전의 걸림돌이다. 이번 체육단체장 선거만큼은 상호 간 흠집 내기에서 벗어나 건설적인 비전 경쟁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종원 기자 johncorners@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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