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동해 묵호동…서울서 2시간
매콤 걸쭉 장칼국수로 배 채우고
묵호항·별빛마을 등 천천히 걷기
백사장 유명한 어달해변서 힐링
카페서 디저트까지 즐기면 환상
아침엔 시원 든든 문어국밥 일품
‘기차 여행’ 감성이 그리워져 괜히 기차에 몸을 싣고 일상에서 훌쩍 멀어지고 싶을 때가 있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이왕이면 기차를 타고 파란 바다가 보이면 좋겠다. 목적지에서 렌트카를 빌리는 것도 귀찮은데 걸어 다닐 만한 곳은 없을까. 맛있는 음식도 많고 여행 감성도 느껴지면 좋겠다.
이런 까다로운 요소를 모두 충족하는 여행지가 바로 강원도 동해시 묵호동이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KTX 영동선을 타고 2시간이면 묵호역에 닿는다. 가까운 거리여서 배낭만 메고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도 부담이 없다.
묵호역까지 가는 기차에 타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확실하게 든다. 진부역을 지나면서 정동진을 향해 가는 순간부터 시퍼런 바다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바다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꿀팁, 좌석 선택 시 A열을 택할 것.
지난 삼일절 묵호를 찾았다. 꽤나 많은 승객들이 묵호역에서 내린다. MT를 떠나려 라면 박스와 식재료를 이고 지고 가는 대학생들, 젊은 연인, 동성 친구들끼리의 우정 여행, 가족여행 등. 이미 감성 여행지로 완벽히 자리잡은 모양새다.
묵호는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북부 지역에 있다. 묵호라는 이름은 새들이 새까맣게 몰려드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사실 이곳은 서울 광화문의 정동방으로, 어떻게 보면 진정한 정동진이다.
역에서 내려 일단 배를 채우러 간다. 인근에는 걸어서 가기 좋은 맛집들이 많다. 칼칼한 국물이 당겨 ‘오뚜기칼국수’로 향했다. 강원도에 왔으니 향토음식인 장칼국수를 먹어야겠다. 대체로 해물 육수에 고추장을 풀어 만드는 칼국수다. 요즘엔 다양한 변주 스타일도 많이 나와 있다.
오후 3시 묵호역에 같이 도착한 사람들이 다 여기로 모였는지 웨이팅이 상당하다. 메뉴는 심플하다. 빨간 국물의 장칼국수 또는 만둣국, 반대로 흰칼국수와 만둣국이다. 사이드 메뉴는 따로 없다.
오뚜기칼국수의 장칼국수는 걸쭉한 국물에 면은 부드럽게 퍼진 스타일이다. 양념이 떡볶이 맛이 나는 듯해 모두 맛있게 먹는다. 관광지에 가면 으레 음식의 양이 적은 편이라는 생각에 ‘곱빼기’를 시켰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보통을 시켜도 양이 푸짐하다. 나가는 손님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라며 인사하는 주인 할머니가 무척 정겹다.
배를 채우고 묵호역 근처를 둘러본다. 칼국숫집에서 나와 슬렁슬렁 10분 남짓 걷다보니 어느새 묵호항이다. 1937년에 개항한 묵호항은 동해안 제1의 무역항으로 시작, 현재는 동해안의 어업기지로 바뀌었다. 살펴보니 울릉도, 독도로 가는 배가 여기서도 뜬다.
가는 길에 수산시장을 구경하기도 좋다. 어선들이 드나드는 어판장에서는 각종 생선들을 싸게 구입할 수도 있다고. 현재 해양문화관광지구 조성 등 해양관광 거점항만으로 육성하기 위해 재개발 2단계 선도사업을 추진 중이다. 묵호항과 함께 묵호등대를 둘러보기 좋다. 새하얀 묵호등대는 해발고도 67m의 산 중턱에 있다. 묵호항에서도 잘 보이고,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 풍광도 청량하다.
인근의 ‘묵호 별빛마을’로 향한다. 잘 알려진 관광지인 논골담길 옆이다.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지어진 알록달록한 색채의 지붕과 집들이 파란 동해 바다와 어우러져 컬러풀하다. 묵호 별빛마을을 찾아가는 것은 쉽다. 어린왕자 벽화가 채색된 곳을 찾으면 된다. 노란 계단이 보이는데, 올라가면 마을이 나온다.
별빛전망대도 들러보자. 마을과 묵호항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마스코트인 사자 한 마리가 귀여움과 재미를 더하는데, 마을 주민이 애장하던 사자상을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별빛마을에는 정겨운 카페 ‘묵꼬양’도 있다. 새뜰마을사업의 하나로 묵호동 지역주민들이 협동조합을 설립해 창업한 카페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어머니들이 맛있는 커피를 내려준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대추차 향기가 가득했는데 자신있는 메뉴는 수제 대추차와 생강차라고. 걸쭉한 차 한잔을 마시면 온몸이 푹 녹는 듯하다.
다시 묵호항을 향해 내려간다. 걷는 내내 마을을 채우고 있는 벽화가 눈길을 모은다. 마을에서 내려오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려 한다.
묵호항 수산물위판장 맞은편에 ‘거동탕수육’을 찾는다. 이곳에서 문어탕수육을 먹는 게 목표다. 육즙이 흐르는 돼지고기에 문어를 넣어 함께 튀겼다. 본래 ‘찍먹’파인데, 거동탕수육은 양념이 입혀진 ‘매콤’맛도 감칠맛이 나 정말 맛있다. ‘반반’을 시키면 맥주 안주로 최고다.
이왕 바다를 보러 왔으니 해변 구경도 하고 싶다면 ‘어달 해수욕장’을 추천한다. 백사장 길이 300m, 폭 20~30m의 조그만 해수욕장이다. 묵호항에서 버스로 15분이면 간다.
어달 해변가는 모래가 곱고 수온이 적당한 데다가 평균 물 깊이도 1m 남짓이라 피서지로 좋다. 겨울에는 하얀 모래사장을 산책하며 바다 감성을 느끼기 제격이다. 상대적으로 날이 포근해진 요즘, 해변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었다. 바닷가에 앉아 독서를 즐기고, 연인끼리 사진을 찍어주거나, 강아지와 바다 구경에 나서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드라이브 코스로도 추천. 이곳 해안 도로는 특히 경치가 좋아 일출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인근에는 어달해변의 경치를 즐기기 좋은 숙소들도 문을 열고 있어 취향껏 골라보자. 통창 숙소를 골랐다면 일출도 놓치지 말자.
감성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카페’다. 어달해변 인근에 지난 겨울 문을 연 ‘오프쇼어’를 꼭 들르자. 2층의 오션 뷰가 무척 아름답다. 특히 이곳을 찾았다면 무조건 휘낭시에를 먹어야 한다. 직접 구운 다양한 맛의 휘낭시에는 향뿐 아니라 맛도 좋다. 반죽 자체가 쫀득하면서도 착 감기는데, 한입 무는 순간 공감할 것이다. 추천 메뉴는 ‘누네띠네 휘낭시에’. 포근한 날에는 바닷가에 들고 나와 산책하는 것도 좋겠다.
묵호에서 하루 묵었다면 다음날 아침은 흔히 곰치국을 떠올린다. 살이 부들부들한 곰치에 김치, 콩나물 등을 넣고 푹 끓여낸 해장 끝판왕이다. 이미 곰치국을 많이 먹어봤다면 ‘문어국밥’은 어떨까. 묵호항 인근의 ‘무코문어 1936’은 문어국밥으로 입소문을 탄 맛집이다. 이곳 역시 웨이팅은 필수인데, 문어국밥은 재료 상황에 따라 한정 판매하니 오픈런도 한다. 이번에는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손님이 되어 먹을 수 있었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이미 솔드아웃이라니, 인기가 엄청나다.
돌문어 대신 좀 더 커다란 참(피)문어로 국밥을 끓여낸다. 문어는 묵호항에서 잡은 것만 사용한다고. 깊고 시원한 맑은 국물이 자꾸 생각난다. 미니 숙회, 물회, 비빔국수도 스테디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혼밥석도 마련돼 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같이 둘러볼 만한 곳
묵호권역 관광벨트의 중심인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와 해랑전망대는 광활한 동해바다의 전경을 즐길 수 있다. 이는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는 등 동해안의 해양특화체험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멸종위기종 제1호인 황금박쥐가 서식하는 ‘천곡황금박쥐동굴’도 찾아볼 만하다. 국내 유일 도심 속 천연동굴로 알려져 있다.
묵호=글·사진 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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