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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아이즈원, ‘팬덤형 걸그룹’의 미래될까

입력 : 2020-02-28 19:41:30 수정 : 2020-02-28 20: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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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여돌 초동 35만장 시대’가 개막됐다. 지난 17일 첫 정규앨범 ‘블룸아이즈’와 타이틀곡 ‘피에스타’로 컴백한 걸그룹 아이즈원에 의해서다. 한터차트 기준 35만6313장. 역대 여돌(여자아이돌) 초동기록 경신이다. 이전 기록이 지난해 트와이스 ‘Feel Special’의 15만4028장이었으니, 그냥 경신도 아니라 배 이상 수치로 경신된 셈이다. 과연 이런 숫자가 여돌로서 가능할지조차 의문시되던 영역까지 갔다.

 

이 같은 쾌거는, 여러 차례 분석됐듯, 아이즈원이 ‘남돌형 걸그룹’, 즉 팬덤형 걸그룹이란 점에 기인한다. ‘남돌=팬덤형, 여돌=대중형’이란 기존인식에 역행한다. 물론 팬덤형 걸그룹을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팬덤 ‘규모’까지 인기 남돌의 그것만큼 성장한 건 아이즈원이 첫 사례다. 그러다보니 다른 지표들에서도 인기 남돌과 유사한 패턴이 포착된다.

 

대표적으로 디지털음원 부문이 있다. 아이즈원에 있어 그간 취약점으로 꼽히던 ‘대중성’ 지점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이번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타이틀곡 ‘피에스타’는 최대음원사이트 멜론 실시간 3위로 진입해 줄곧 2~3위를 유지하다 4일차에 드디어 1위까지 올랐다. 아이즈원으로서 최초일 뿐 아니라, 애초 이 정도가 가능한 걸그룹 자체가 몇 없다.

 

이어 팬덤 중복스트리밍을 거르고 전체이용자 수만 집계하는 일간순위에서도 이틀 연속 5위 진입에 성공했다. 이후 27일 현재까지 일간 10위 내 계속 머물고 있다. 여기서 부턴 소위 ‘팬덤 스밍’만으론 불가능한 수치다. 팬덤이 끌어올린 순위로 음원을 일반대중에까지 노출시키고 또 소비시키는 데 성공했단 얘기다. 팬덤 ‘규모’의 힘이 ‘대중성’까지 일정수준 이상 끌어내는 정상급 남돌 위력을 그대로 재현했다.

 

앞서 아이즈원이 ‘첫 사례’일 뿐이라 언급한 이유가 있다. 2018년 경부터 등장한 신예 걸그룹들은 전반적으로 아이즈원과 비슷한 종류 팬덤형 인기를 쌓아가고 있어서다. 아직은 팬덤 규모가 달라 사실상 같은 패턴이란 점이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당장 아이즈원과 비슷한 시기 컴백한 에버글로우, 이달의소녀 등만 해도 그렇다. 모두 팬덤형 걸그룹들이고, 팬덤의 힘으로 음원차트 순위까지 끌어올린 경우들이다. 그리고 피지컬 음반판매 측면에선 최근 컴백에서 모두 자기 기존기록 배에 가까운 폭등세를 보였다.

 

팬덤의 힘이 이토록 커진 건 그 팬덤이 ‘국내’에 그치지 않게 돼서다. 위 거론된 팀 모두 유튜브는 물론 피지컬 음반판매 면에서도 해외 팬덤 지분이 크다. 아이즈원의 경우 예약판매기간 중국서 주문된 물량만 약 8만 장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이미 본격 진출한 일본시장 판매량이 더해진다. 다른 팀들 역시 해외 팬덤이 국내보다 크단 말이 나온다.

 

바로 이 점이 기존 중소기획사 팬덤형 걸그룹들과 다른 부분이다. K팝 글로벌화가 정착된 상황에서 출범한 ‘진화형 팬덤 그룹’들이란 것. 그렇게 국내와 국외가 서로 상호작용하며 팬덤을 메머드 급으로 키워나가는 구조다, 그러니 아이즈원처럼 전에 없던 어마어마한 화력까지 나오게 되고, 곧 그 정도 화력을 낼 다른 팀들도 차례로 추가될 수 있다.

 

시야를 넓혀보자. 애초 ‘여돌=대중성’ 개념이 성립된 건 남돌보다 여돌 쪽 대중 접근성이 좋단 점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를 바탕으로 각종 행사나 CF 출연 등을 주 수입원 삼는 변칙적 수익모델이 채택됐다. 그러나 근 5년래 유튜브 등 다양한 뉴미디어 열풍이 일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갑자기 스몰스타 전성시대로 접어들었다. 아이돌이 독식하고 있던 특유의 대중아이콘 위치도 여러 갈래로 잘게 나뉘었다. 엄청난 자본이 투여된 아이돌 역시 대중성 차원에선 수많은 유튜버, SNS 인플루언서 등과 함께 ‘원 오브 뎀’이 돼버렸다.

이처럼 미디어가 변화하니 기존 여돌 수익모델도 무너져갔다. 행사시장은 힙합 뮤지션, 전문댄스팀 등 주로 뉴미디어를 통해 성장한 스몰스타들이 파이를 잠식해가고 있다. CF시장도 마찬가지다. 근래 들어선 쯔양 등 100만 이상 구독자 인기 유튜버들까지 하나둘 끼어들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추세는 향후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중성의 걸그룹’도 이제 보이그룹과 같은 팬덤 전략으로 중심을 이동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속성상 보이그룹보단 팬덤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단 한계는 해외 팬덤이 보완해준다. 경제력 있는 선진국들로 팬덤문화가 침투되면서, 유튜브를 통해 무료콘텐츠를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 피지컬 음반 및 각종 굿즈까지 실질소비해주고 있다. 결국 팬덤형은 팬덤형인데 한층 진화된 ‘글로벌 팬덤형’으로 넘어가다보니 아이즈원처럼 그 규모도 기존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해지는 것.

 

이제 2018년 이후 걸그룹들은 전략 자체가 다르다. 로켓펀치처럼 데뷔앨범을 내자마자 팬미팅을 열어 실질소비층 코어팬덤 규모를 가늠, 전략을 재편하기도 한다. 이달의소녀처럼 해외에서 더 열광적인 걸스힙합 장르로 선회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애초 문화예술계 대중성이란 ‘소수 미디어 독점’을 전제로 성립되던 개념이다. 4개 지상파방송이 모든 것을 거머쥐고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시대, 몇몇 일간지들이 다루지 않으면 ‘없는 일’이 될 수 있었던 시대 전유물. 학교에 가면 어제 본 똑같은 방송 얘길 모두 함께 나눴고, 인기 TV드라마는 시청률 60%선을 넘나들었다. 그러다 미디어폭발이 일어나자 ‘근본적인’ 사고의 변화가 일어났다.

 

소수 미디어 독점 시대 걸그룹 수익전략은 결국 소비자 그 자체가 아닌 플랫폼 주체로부터 ‘선택’을 받는 구조였다. 행사주체로부터 선택 받고, 광고주로부터 선택 받고, 그러기 위해선 대중성을 담보로 지상파방송 등으로부터 선택받아야 했다. 그러다보니 대중성 확보에 몰입된 방법론들이 들끓었다. 한때 K팝 전체에 드리웠던 ‘후크송’ 몰입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이젠 걸그룹들도 자기주도형 수익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자기 채널’을 통해 유튜브 수익을 남기고, 아이즈원처럼 멤버들 유료 프라이빗 메일 서비스 등 팬덤과의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를 굿즈화하기도 한다. 그렇게 ‘선택’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나니, 근간이 되는 음악 자체도 바뀌어간다. 대중성을 위해 고집되던 쉽고 가볍고 따라 부르기 쉬운 이지리스닝 계열에서, 점차 엣지있는 안티트렌드 음악들을 실험하고 있다. 드림캐쳐처럼 메탈 기반 걸그룹까지 성립되고 있다. 그럴수록 해외 팬덤은 고조되고, 국내 팬덤도 상호작용으로 더욱 탄탄해진다. 이런저런 메인스트림 내 실험들이 점차 보편화 추세로 가고 있다.

 

나아가 대중성이란 코드가 무너지니 팬덤 전쟁에서 빠지지 않던 이미지 훼손 전략도 별무소용이 돼가고 있다. 어찌됐건 아이즈원 이번 쾌거는 ‘프듀 순위조작 사건’을 딛고 얻어진 결과다. 사실 그게 정점이었을 뿐 아이즈원은 근래 보기 힘들 정도로 데뷔 이전부터 각양각색 이슈들로 인터넷상에서 쉼 없이 ‘두들겨 맞아온’ 팀이다. 이러면 당연히 기존 ‘대중성’ 차원에선 타격이 심해진다. 2012년 ‘화영 왕따사건’으로 정상에서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티아라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그에 타격 입을 ‘대중성의 걸그룹’은 이제 사라져간다. 기존 대중성이란 개념 자체가 해체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흐름이 이러니 점차 대중도 그런 배싱들에 더더욱 무관심해져 간다. 그러니 활동 자체에 법적문제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실제 사줄 사람들’만 납득하면 되는 일이다. 오히려 이슈가 커질수록 대중인지도를 넓혀 ‘입덕’ 루트를 확대시키는 효과까지 낸다. ‘얻어맞을수록 성장해온’ 아이즈원 팬덤 규모가 이를 증명한다. 현 시점 인터넷 배싱은 코어팬 결집력을 강화시키고, 라이트팬을 코어화시키며, 무관심했던 대중을 라이트팬화시키는 발판이 돼간다.

 

한편 지상파방송 등 기존 플랫폼 권력을 납득시켜야 할 이유조차 존재하질 않는다. 기존 대중성 개념에 매달리는 기성세대들이나 중요시 여길 뿐이다. 미국방송에 출연했기에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1위를 한 게 아니라, 유튜브나 SNS 등 뉴미디어를 통해 방탄소년단이 미국서도 무시 못 할 팬덤을 형성했기에 미국방송서도 출연을 요청하는 시대다. 영화 ‘기생충’과 아카데미상 관계에 대한 LA타임즈 영화비평가 저스틴 창 언급에 빗대보자면, 지금은 아이돌이 지상파방송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지상파방송이 자신들 뉴미디어를 통해 팬덤을 모은 아이돌을 필요로 하는 시대다. ‘팬덤이 큰 것이 곧 대중성’이 되는 시대 개막이다.

 

이처럼 현상적 기록경신으로 드러난 아이즈원 현 상황은 그저 혼자서 툭 불거져 나온 특이점이라 보기 힘들다. 사실상 여기서 부터가 아이돌산업의 ‘다음 단계’란 이정표에 가깝다. 수익모델, 타깃설정, 활동영역, 음악적 방향성, 기성미디어와의 관계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이전과는 생존논리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이 같은 ‘대중성의 재해석’은 어쩌면 대중문화산업 자체의 ‘다음 단계’일 수도 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마블영화 등 ‘세계관’ 중심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등도 근본적으론 좀 느슨한 형태의 팬덤 전략이란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향후 대중문화산업 전반적 추이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이유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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