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재철이 묵직한 카리스마를 내려놨다. 능청스러운 블랙코미디 연기를 선보이 ‘김재철의 재발견’을 이끌어냈다.
지난 4일 종영한 ‘지금 불륜이 문제가 아닙니다’에서 김재철은 이혼 소송 중인 의사 부부의 남편 주보성을 맡았다. 초반에는 아내 수정(조여정)과 날을 세우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점차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얽히면서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면모가 돋보였다. 후반부 네 남녀의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꼬여가는 과정에서는 진지함과 코믹함을 넘나들며 존재감을 키웠고, 극의 판도를 흔드는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작품 종영 후 인터뷰에서 김재철은 “평소에 존경하는 선배들, 좋은 후배님들과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개인적으로 팬심이 있던 이창희 감독의 세계관에 참여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 ‘파묘’를 시작으로 얼굴을 알린 뒤 그동안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역할로 활약했다. 이번 작품은 숨겨뒀던 코미디 본능을 꺼내 보인 무대였다. 대중에게는 새로운 얼굴이지만 김재철에게 코미디 연기가 낯선 영역은 아니었다. 드라마에서의 활약과 달리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코미디 작품에도 여러 차례 출연했다. 망가지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던 당시의 경험이 이번 보성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김재철은 “드라마를 하기 전 연극할 때는 코미디를 꽤 했다. 망가지는 역할도 많이 했었는데 그런 지점이 주보성 안에 녹아 있다. 내가 갖고 있지만 보여주지 않았던 연기가 있었기 때문에 반가웠다”고 캐릭터 첫인상을 밝혔다.
그동안 비슷한 역할을 맡으며 특별한 갈증을 느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품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올 때 한번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속의 다짐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중반까지의 주보성은 사건에서 한발 떨어져 자신의 이익을 위해 냉정하게 움직이는 인물에 가까웠다. 김재철은 “비열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냉정한 사람으로만 봤는데 후반에는 합세해서 망가지는 걸 보고 오히려 반가웠다. ‘내가 갖고 있는 걸 여기서 좀 펼쳐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대학로 코미디 작품들에는 우당탕탕 소동극 같은 정서가 많이 있지 않나. 나도 많이 했었고, 그런 부분을 이 작품에서 보여줄 수 있겠다 싶어서 반가웠다”고 설명했다.
김재철이 이번 작품을 통해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얼굴은 후반부인 7, 8부에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8부 별장에서 나도(박량우)에게 멱살 잡혀 끌려나간 임재홍(김지훈) 대신 운전대를 잡다가 곧바로 본인도 멱살을 잡힐 때 “선생님 오해하시는 겁니다”와 같은 찌질한 모습이 웃음을 안긴다.
김재철은 “7, 8부에 조금씩 보여줬던 것 같다. 겁 없게 생긴 사람이 겁먹은 표정을 짓는 모습을 그동안 보여준 적이 없다. 저도 실제로 겁이 있고 그걸 극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걸 꺼내 보이려면 그런 역할을 만나야 하지 않나”라며 “주보성이 너무 지나친 하이 텐션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얼굴을 꺼내 보였다는 게 개인적으로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동안 들어왔던 작품은 기존 이미지와 맞닿은 경우가 많았다. 그는 “무거운 역할을 많이 하다 보니까 재벌이나 권력자 등 비슷한 류의 작품 제안이 많이 온다”며 “주보성처럼 여유로운 친구지만 마음은 보잘것없는 캐릭터를 맡아야 보일 수 있는 표정들을 이번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꺼내 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번 변신을 시작으로 다양한 장르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도 이어졌다. 김재철은 “그동안엔 (이미지에) 중간이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 잔잔한 코미디 등의 작품도 올 것 같다. 로맨틱 코미디나 가볍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에서 또 다른 류의 코미디도 해보고 싶다는 용기가 났다. 주보성이 어떻게 보여질지 작품이 나와봐야 저도 아는 건데 다행히 주변에서 많이 좋게 봐주셔서 이런 얼굴을 앞으로 더 보여줄 수 있겠다 싶은 용기가 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리즈의 하이라이트는 네 명의 주요 인물이 드디어 한 공간에서 맞닥뜨리는 7부다. 불륜, 뺑소니 사고와 시체 은폐 등 사건사고를 겪어온 주인공들이 우연찮게 경희(김혜수)와 재홍의 집에 모이고 한바탕 소동이 펼쳐진다. 대본이 나왔을 때부터 배우 모두가 기대했던 장면이었고, 감독 또한 연극적인 연출을 시도하며 힘을 줬다.
김재철 “어려운 신인데 촬영하면서도 배우들과 리허설을 하면서 한 번에 척척 만들어졌다. 배우들도 너무 신기했고 힘이 났다. 감독님도 장면을 담으면서 행복해했던 것 같다”며 “7, 8부는 캐릭터들이 극단을 달리는 신이지만 배우들은 행복했다. 재미있는 공연을 계속 플레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신 끝날 때마다 같이 모니터하고 깔깔대고 웃었다. 그 와중에도 모니터 속 서로를 보라면서 자기자신보다 상대방의 연기에 집중했다. 그 힘으로 다음 신이 더 금방 좋게 나왔고 그렇게 8부까지 갔다”며 “배우들도 감독님도 모두 걱정했던 신인데 그만큼 다들 준비도 많이 해왔고, 그런 사람들이 모이니까 척척 되더라. 찍으면서도 즐거웠고 신났다. 촬영 끝나고 집에 가는데 너무 뿌듯했다. 그리고 작품 공개 후 관객으로서 보는데 재미있더라. 다 같이 모여서 달려나가는 에너지까지 느껴졌다”고 행복했던 현장을 돌아봤다.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인 김재철의 다음 목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정 장르나 캐릭터에 자신을 가두기보다 폭넓은 작품을 오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재철은 “가급적이면 안 보여준 모습을 꺼내고 싶다는 게 제 바람”이라면서도 “저 또한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런 역할이 올 수 있게 새로운 얼굴을 잘 단련시키고 준비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도전하고 싶은 장르에도 경계를 두지 않았다. 그는 “로맨틱 코미디나 사랑 이야기도 해보고 싶고, 극악무도한 악역도 해보고 싶다. 구분은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기회가 된다면 독립영화라든지 이창동 감독님 같은 분들의 살 냄새가 나는, 바닥에 붙은 이야기에도 출연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코미디와 악역을 자유롭게 오가는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다. 김재철은 “‘파묘’ 같은 상업적인 작품도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 그 벽이 없는 배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장르를 오가는 게 모든 배우들의 꿈이지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배우가 해내기도 쉽지 않지만 관객을 설득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지금부터 한 발씩 잘 걸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려면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번 작품이 더욱 의미가 남다른 이유다.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코미디 연기를 먼저 알아보고 기회를 건넨 제작진에 대한 고마움이 특히 크다. 김재철은 “그 얼굴은 분명히 그동안 제가 보여준 적이 없는데 왜 저를 캐스팅했을까 싶었다”며 “대본을 보고 ‘내가 이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싶었다. 저는 할 수 있다고 믿지만 기존 작품만 봤을 때는 이런 연기를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직접 이창희 감독에게 캐스팅 이유를 물어보기도 했다. 돌아온 답은 간결했다. “잘하실 줄 알았어요”였다. 김재철은 “감사하다. 제작자들께도 감사하다. 그분들이 저를 선택해줘서 새로운 모습을 꺼내 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변신이 또 다른 기회로 연결되기를 바랐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다른 관계자들이 ‘그럼 이것도 할 수 있겠는데’라고 해주면 저 또한 단련시켜서 다시 다른 모습을 꺼내 보이고 싶다”며 “그게 제일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했다.
이미 차기작은 영화로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먼저 촬영을 마친 김한민 감독의 영화 ‘칼: 고두막한의 검’에서 거란 장수로 등장한다. 그는 “기대하셔도 좋다. 거기서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줄 것”이라고 귀띔했다.
오는 11월 개봉 예정인 영화 ‘최종면접’에서는 면접관으로 등장한다. 아울러 현재 또 다른 드라마를 촬영 중이라고 밝히며 쉼 없는 연기 행보를 이어갈 것을 예고했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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