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 껴봤는데, (홍)성호 것이 가장 잘 맞더라고요(웃음).”
10년을 훌쩍 넘긴 프로 생활에도 생존 경쟁엔 졸업이 없다. 줄곧 내야를 지켜온 강승호(두산)는 올 시즌 처음으로 우익수까지 수비 영역을 넓혔다.
아직 외야수 전용 글러브도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다. 후배 홍성호의 것을 빌려 들고 저멀리 낯선 들판으로 향한다. 베테랑의 무한도전은 그렇게 ‘빌린 글러브’에서 시작됐다.
24일까지 우익수 출전은 두 차례다. 후반기 첫 경기였던 16일 창원 NC전서 경기 도중 외야로 투입됐고, 19일에는 처음 선발로 나섰다. 강승호는 “나가기 전에는 떨렸지만 막상 외야에 서니 생각보다 편했다”며 “처리한 타구가 많지 않지만 아직까진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기존 내야수 글러브와 1루수 미트로만 시즌을 준비해 왔다. 갑작스러운 변신은 출전 기회를 붙잡기 위한 선택이다. 외국인 타자 유니오 세베리노가 합류한 뒤 두산은 올스타 휴식기부터 강승호에게 외야 병행 가능성에 대비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세베리노가 1루로 나가면 뛸 자리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경기에 나가려면 어디든 핑계 대지 않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일고 시절 유격수 최대어로 주목받은 강승호는 프로서 내야 전 포지션을 두루 소화했다. 그러나 이젠 새로운 걸 익히는 일이 예전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는 “어릴 때부터 외야를 준비했다면 빨리 배웠을 수도 있지만, 지금 나이에 새로 하려니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포지션 이동의 쓴맛도 이미 봤다. 2024년 주전 2루수로 타율 0.280, 18홈런 81타점을 올리며 커리어하이를 썼지만, 이듬해 3루수로 옮긴 뒤 타율 0.236, 8홈런 37타점으로 부침을 겪었다. 흔들린 기억은 적잖은 좌절로 남았을 터. 부담이 따를 법했지만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강승호는 “포지션을 옮겼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 처음엔 조금 의식됐다”면서도 “아주 잠깐이었다. 프로 선수인 만큼 경기에 나가는 게 먼저다. 어느 자리에서든 타격감을 유지하며 꾸준히 출전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훈련 비중을 내야 6, 외야 4 정도로 두고 우익수 출전이 예정된 날이나 경기 전 여유가 생기면 임재현 코치 등과 함께 타구 판단 및 포구 훈련을 추가한다. ‘외야 선배’인 팀 동료 조수행과 정수빈은 모든 타구를 잡으려 욕심내기보다 가까이 오는 평범한 플라이부터 놓치지 말라고 조언했다는 설명이다.
팀 역시 서두르지는 않는다. 김원형 두산 감독은 “전문 외야수는 아니지만 타격감이 워낙 좋다”며 “외야 수비를 조금씩 맡기면서 실전에서 어느 정도 해낼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분간은 홈 잠실보다 외야가 작은 구장에서 경험을 쌓게 할 계획이다.
실제로 최근 방망이가 뜨겁다. 6월 타율 0.100으로 주춤했지만 이달 14경기서 타율 0.375, 4홈런 19타점을 몰아쳤을 정도다. 이 시기 때린 18안타 중 10개가 장타(2루타 6·홈런 4)다.
김 감독이 그의 이름을 어떻게든 라인업에 남겨두려는 이유다. 강승호는 “감독님도 불안한 부분이 있으실 텐데,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외야에 써주신다는 말을 듣고 감사한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했다.
향후 외야 이닝을 늘린다면 한국야구위원회(KBO) 수비상 초대 유틸리티 부문 입후보 가능성도 생긴다. 강승호는 현재 1루수 311이닝, 2루수 82이닝, 외야수로는 7이닝을 소화했다. 총합 400이닝이다.
두산은 정규리그 51경기를 남겨뒀다. 이 기간 강승호가 출전 기회를 확보해 외야에서 50이닝 이상을 채우고 총 수비 이닝이 540이닝을 넘으면 후보 요건에 들어간다.
정작 당사자는 상보다 눈앞의 역할을 바라본다. 강승호는 “주변에서 먼저 유틸리티 부문 이야기를 하더라. 생각도 못 했다”고 운을 뗀 뒤 손사래를 쳤다. 이어 “어릴 때부터 상이나 타이틀 욕심은 없었다. 지금은 한 타석, 한 이닝씩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라운드 위 자리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글러브를 빌려 처음 선 외야도 강승호에게는 절실하게 붙잡아야 할 소중한 기회다. 14년 차에도 그의 프로야구 생존기는 여전히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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