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경기장은 더 이상 스포츠 범주에만 머물지 않는다. 때때로 누군가에겐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는 ‘쇼케이스’ 무대다. 시구, 시축, 시투 등이 대표적이다. 수만 명의 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연예인, 스포츠 선수, 화제의 인물 등 점차 범위가 넓어지고 가운데 정치인도 빼놓을 수 없다. 프로야구 SSG와 KIA의 개막시리즈 2차전이 열린 지난달 29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선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정해권 인천시의회 의장이 각각 시구자, 시타자로 나섰다.
정치와 일상의 접점이 확대되고 있는 시점, 이러한 현상은 하나의 흐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경기장은 접근성이 높고 다양한 연령층이 고르게 모인다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크다. 문제는 주객이 전도돼선 안 된다는 점이다. 스포츠의 핵심은 ‘중립’이다.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이 개입되는 순간 그 가치를 잃는다. 선거 유세처럼 뚜렷한 목적이 있을 땐 더욱 경계해야 한다. 경기 관람을 방해하는 것은 기본,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종목을 막론하고 경기장 내에서의 정치적 활동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정치적 문구가 포함된 현수막, 피켓, 의류 등의 반입을 제한한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사례를 떠올릴 만하다. 2019년 3월30일, 경남FC와 대구FC의 경기가 펼쳐진 창원축구센터서 4·3 창원성산 재보궐 선거 운동을 펼쳐 논란이 일었다. 강기윤 후보와 함께 당명이 적힌 붉은 점퍼를 입고 경기장 안에까지 들어갔다. 당시 바른미래당 측도 현장을 찾았지만 경기장 밖에서만 활동했다.
법의 테두리는 벗어나지 않았지만, 경기장을 찾은 것 자체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의도성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었던 2021년 아내 김혜경씨와 프로야구 KT 경기를 직관했다. 일반석에 앉아 소탈한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경기장 밖에 몰려든 지지자들과 정치 유튜버들로 혼란을 야기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후보시절 고척스카이돔을 방문했다. 순수한 야구 팬임을 강조했지만 20·30대 표심을 의식한 행동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었다.
구단이 특정 인물이나 당을 지지하는 것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 지난해 8월17일, 춘천시민축구단과 울산시민축구단의 K3 경기가 진행된 춘천 송암스포츠타운. 춘천시축구협회는 ‘춘천시장님 힘내세요’ ‘춘천시장님을 응원합니다’ ‘춘천시민의 자존심을 지켜주셔서 감사하다’ 등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만약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라면 사전선거운동으로 볼 수도 있다”며 “유착이 의심될 만한 불명확한 대응은 신뢰를 해친다”고 말했다.
사실 스포츠와 정치는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원활한 경기 운영을 위해선 여러 지자체들과의 협업이 필수다. 대부분 구단이 ‘을’의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끌려 다닐 순 없다. 자칫 징계의 늪에 빠질 수 있다. 경남FC는 자유한국당 선거 유세로 제재금 2000만원을 냈다. 그나마 제지하려 했다는 사실이 확인돼 중징계를 면했다. 춘천시민축구단 역시 대한축구협회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현수막 반입 제한 고지 강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6·3 지방선거가 다가오는 만큼 좀 더 신경을 곤두세운다. 대구시는 일정 기간(4월4일~6월3일) 삼성라이온즈파크 스위트박스 사용을 제한한다. 대구는 삼성으로부터 제공받은 스위트박스 두 곳을 보유하고 있다. 스포츠 취약계층과 시정 유공자 등을 대상으로 한 각종 초청행사에 활용했다. 법률 자문을 받아 검토한 결과, 공직선거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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