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 나는 4살 래브라도 리트리버 ‘난초’에요. 시각장애인 안내견이고, 2024년 12월부터 현지수 언니와 살고 있어요. 저를 만나기 전 언니는 8년 넘게 함께한 안내견이 있었대요. 그런데 우리 안내견들은 보통 8년쯤 활동을 하다 은퇴를 하고 반려견으로서 삶을 살거든요. 그 ‘선배’가 은퇴를 하면서 제가 새로운 짝꿍이 된 거에요.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언니가 내 키가 너무 커서 살짝 걱정됐지만 조용한 성격은 꼭 닮아서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대요.
우리는 24시간 내내 꼭 붙어있어요. 구청 공무원인 언니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도 함께하죠. 언니는 밖에서 길 찾는 게 너무 스트레스인데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든든하대요. 그런데 가끔 간식 타이밍에 간식을 안주면 길에서 꼼짝도 않는다면서 ‘자본주의 안내견 땡초’라고 눈치를 줘요. 근데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업무 시간에는 언니 책상 바로 옆 지정석에 앉아 있어요. 언니는 국회, 감사원, 타 지자체 등 외부에서 온 문서를 구청의 각 담당처에 전달하는 업무를 하는데 매일 700~800건의 문서와 씨름해요. 그동안 저는 언니와 다른 직원들에게 저의 귀여움을 전파하는 막중한 업무에 집중해요.
언니는 신생아 때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었다고 해요. 대신 타고난 ‘절대음감’으로 어릴 적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가야금을 연주했고 콩쿠르도 자주 나갔대요. 대학 시절에는 밴드 활동을 하며 키보드를 쳤고 교회 성가대에서도 연주를 했다네요.
지금은 하프를 튕기는 하피스트에요. 3년 전 우연히 하프 연주를 들었는데 맑은 선율에 반해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고 해요. 매주 언니에게 하프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그러는데 재능이 대단하대요. 소리를 몇 번 듣기만 해도 음을 금방 찾아내 악보 없이도 연주를 한다면서 말예요.
언니는 안내견학교, 친척 결혼식 등에서 자주 공연을 했어요. 그때마다 언니가 안전하게 무대에 오르내리고 연주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바로 곁에서 함께했어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거나 박수소리, 사진 플래시 때문에 놀라지 않을까 걱정했다는데 하나도 어렵지 않았어요.
언니는 하프를 연주하면 스트레스가 사라진대요. 하프를 처음 배우던 시절 업무 관련 민원이 많아서 머리가 아팠는데 하프 줄을 튕기면 거짓말처럼 힐링이 된다나요. 저도 언니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하프 소리가 강아지와 고양이의 정신 건강을 돕는 테라피 뮤직으로도 쓰인다는 사실 아시나요? 언니의 연주를 들으면서 하프에 몸을 기대고 잠들 때가 많은데, 언니 말로는 제가 드르렁 드르렁 코도 곤대요. 사실 그건 코골이가 아니라 언니와 화음을 맞춘 거예요. 믿거나 말거나.
침대에서 하프 연주를 들을 땐 몸을 뒹굴면서 앞발을 휘두르기도 해요. 이건 제가 가장 기분 좋을 때 하는 행동이에요. 그런 모습을 보면 언니는 역시 하프를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대요.
언니는 오는 11월 독주회를 가질 거예요. 시각장애인 하피스트의 독주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는데 그 무대에 같이 오를 생각에 벌써 두근거려요.
이렇게 멋진 언니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대요. 유기동물 친구들 앞에서 하프 연주회를 하는 거예요.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데 앞이 보이지 않아서 그럴 수 없으니 대신 하프 연주로 유기동물에게 마음의 평화를 선물하고 싶대요.
저도 꿈이 있어요. 어디든 언니와 함께 다니는 거예요. 지금도 식당이나 카페 같은 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많아요. 두 번에 한 번은 그래요. 저처럼 장애인 안내견 조끼를 입는 강아지는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막으면 법을 어기는 거예요. 안내견은 사람과 똑같답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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