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습니다. 보고 싶을 거예요.”
마운드로 향하는 길이 이렇게 힘겹게 느껴졌던 날이 있었을까. 불펜에서 걸어 나오는 ‘대장 독수리’ 정우람(한화)의 눈에선 이미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중 나와 있던 김태균은 따뜻한 포옹으로 격려했다. 전광판에선 류현진을 비롯한 한화 선수단, 스승과 제자로 연을 맺었던 김성근 감독, 한용덕 경기감독관, 그리고 강민호(삼성), 김재호(두산), 전준우(롯데), 김광현, 최정(이상 SSG) 등 동료들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아내와 두 아들은 꽃다발을 전달했다.
20년간 마운드를 지켰다. 2004년 SK(SSG 전신) 유니폼을 입고 프로세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2016시즌부터는 한화와 손을 잡았다. 이날 진행한 은퇴경기까지 통산 1005경기서 977⅓이닝을 소화하며 64승47패 197세이브 145홀드 평균자책점 3.18을 기록했다. 화려한 성적만큼 인상적인 대목은 내구성이다. 긴 세월 속에 좋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항상 있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아시아 단일 리그 투수 최다 출장이라는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리그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정우람. 정작 본인은 수치적인 것들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듯했다. 경기 전에도 “꾸준히 마운드에 오르다 보니, 야구를 오래하게 됐다”고 자세를 낮췄다. 준비한 은퇴사에도 기록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그보다는 오랜 시간 함께해온 가족, 동료들, 그리고 팬들에 대한 애틋함으로 가득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다”고 운을 뗀 정우람은 ‘주장’ 채은성부터 류현진까지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꾹꾹 눌러 담아온 진심을 전했다.
선수로서 임하는 마지막 공식 행사다. 여러 감정이 교차할 수밖에 없을 터. 중간 중간 눈물이 차오르는 듯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때마다 팬들은 정우람의 이름을 연호하며 힘을 실어줬다. 더그아웃에서, 관중석에서 이를 지켜보는 동료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처음으로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찾은 정우람의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도 마찬가지. 은퇴사를 낭독하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돌고 온 정우람을 향해 동료들은 헹가래로 제2의 인생을 응원했다.
선수로 활약하는 내내, 그리고 끝을 고하는 순간까지도 잊지 못한 이들이 있다. 다름 아닌 팬이다. 정우람은 “매 순간 저희와 함께 울고 웃었던 팬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영광스러운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사람들이 묻는다. 대전에 뭐가 유명하냐고. 그때마다 대전의 최고 명물은 한화 팬 분들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최고의 팬덤인 여러분들은 선수들의 자부심이자 사시사철 굳건한 소나무였다. 감사하고 행복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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