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그간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연예인들도 앞장서 목소리를 내고, 거리로 나선 팬들을 응원하고 위로하며 저마다의 방법으로 힘을 보탰다.
이승환은 지난 13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탄핵 촛불문화제 말미 무대에 올랐다. “개런티도 다 필요 없다”고 탄핵 집회 참석의 의지를 드러낸 이승환은 이에 앞서 촛불집회 주최 측인 촛불행동에 1213만원을 기부한 이체 내역을 공개하기도 했다.
‘덩크슛’ 가사를 개사해 “내려와라 윤석열”을 외치자 집회 참가자들은 열띤 호응으로 화답했다. 자신을 ‘탄핵 집회 전문가수’로 소개한 이승환은 “내 나이쯤 되는 사람 중에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이런 집회 무대에 서지 않아도 되는, 피 같은 돈을 기부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배우 최민식은 젊은 세대에게 사과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3일 부산에서 열린 ‘제25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에 참석한 그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젊은 친구들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응원봉을 흔들면서, 겉으로는 웃으면서 콘서트처럼 하지만 그 친구들 보면서 너무 미안했다”며 “이 자리를 빌려 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가수 윤종신, 작사가 김이나 등 국내 음악인 762명은 윤 대통령의 탄핵과 체포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가수 아이유와 뉴진스를 비롯한 가수들도 집회에 참여하는 팬과 대중을 위해 ‘선결제’로 힘을 실었다. 추운 겨울 여의도 일대에서 진행된 집회에 행동으로 뜻을 모아준 참석자들을 위해 ‘큰 손’들이 나섰다. 선결제란 온라인상에서 커피부터 간식, 식사에 이르기까지 금액을 선결제해 방문객들이 무료로 메뉴를 찾아갈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팬덤의 다양한 나눔 문화 중 하나로 직접 참석할 수 없거나 다수에게 선물하고자 활용하는 방법이다.
SNS상의 ‘선결제’ 물결에 연예인들도 동참했다. 아이유의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3일 공식 팬카페에 여의도 내 매장 상호와 주소를 공유하며 “추운 날씨에 아이크(응원봉)를 들고 집회에 참석해 주변을 환히 밝히고 있는 유애나(공식 팬덤 명)들의 언 손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지길 바라며, 먹거리와 핫팩을 준비했다. 건강과 안전에 꼭 유의하시고 아래 사항 참고 후 해당 매장에 방문 부탁드린다”고 공지했다.
소속사와 분쟁 중인 걸그룹 뉴진스는 새로 개설한 SNS 계정의 첫 게시물에 먹거리 선결제를 공지했다. 함께 올린 영상에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해서 준비했으니까 몸조심하시고 파이팅”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김밥, 음료, 삼계탕 등 500인분의 먹거리 선결제 정보를 공유했다. 소녀시대 유리도 동참했다. 팬 플랫폼을 통해 여의도 인근 가게의 김밥 선결제 소식을 알렸다.
SNS나 팬소통 앱으로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 아이돌, 배우 등 연예인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목소리를 냈다. 14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을 담은 뉴스 화면을 직접 찍어 올리거나 시위 현장의 모습을 담아 공유했다. 배우 고민시는 SNS에 ‘국민이 주인이다’라고 적힌 시위 깃발이 흔들리는 영상을 게시했고, 가수 겸 배우 피오는 촛불 사진을 게재하며 박수 이모티콘을 달았다. 배우 이동욱은 팬 플랫폼에 “봄이 한 발 가까워진 듯, 따뜻한 연말 되셨으면”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소녀시대 멤버 서현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책 사진과 함께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라는 ‘다시 만난 세계’의 가사 일부를 적었다. 탄핵 집회 곳곳에서 울려 퍼진 곡이다. 다시 만난 세계는 이번 집회에서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07년 발매된 이 곡은 2016년 이화여대 총장 퇴진 요구에서 불려 주목받은 바 있다. 벅차오르는 멜로디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등의 의지를 담은 가사로 공감을 얻어 새로운 민중가요로 떠올랐다.
계엄으로 촉발된 탄핵 촉구 집회는 새로운 시위 문화의 장을 열었다. 아이돌 음악이 울려 퍼지고, 촛불 대신 형형색색의 꺼지지 않는 응원봉이 거리로 나섰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여준 ‘응원봉 시위’에 외신도 주목했다. 2030세대 젊은 층이 주도한 이번 시위에 AP통신은 “젊은 시위대는 전통적으로 음악 콘서트에서나 볼 수 있었던 K-팝 응원봉을 들고 거리를 점령해 반대 목소리를 높이며 정치 시위의 새로운 트렌드를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아이를 동반한 부모나 연인, 노인 주민 단체,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노래를 부르고 응원봉을 흔드는 등 시위는 정치 시위가 아니나 K-팝 콘서트처럼 느껴졌다”며 “10대 후반과 20대 한국인들은 케이팝 콘서트에서 응원봉을 가져와 나이 든 한국인들과 함께 조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고 보도했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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