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의 반란, 희망이 자란다.
2024시즌 프로야구. 개막 전 삼성을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하위권으로 분류했다. 개막 미디어데이에서도 마찬가지. 질문 자체가 많지 않았다. 우승 공약에 대한 물음 역시 KIA, LG, KT 등 이른바 3강 후보에 집중됐다. ‘캡틴’ 구자욱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더라”고 회상했다.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것을 감안하면 뼈아픈 대목이다. 자유계약선수(FA), 2차 드래프트 등을 통해 투수 김재윤, 임창민, 내야수 전병우 등을 영입, 전력 보강에 힘썼다.
전망은 전망일 뿐이다. 오히려 마음을 더욱 굳게 가다듬는 계기가 됐다. 자신도 있었다. 비시즌 열심히 준비했다. 마무리캠프에서부터 스프링캠프까지 강도 높은 훈련에 연속이었다. 연습양만 따지자면 그 어떤 팀에게도 지지 않았다. 베테랑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외 없이 모두가 꽉꽉 채워진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죽겠다”는 곡소리가 흘러나왔을 정도. 흘린 땀방울만큼 탄탄한 기초공사가 뒷받침된 것은 물론이다.
반전을 일궜다. 차근차근 발걸음을 내디뎠다.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었다. 약점으로 지목됐던 마운드는 물음표를 지웠다. 팀 평균자책점 4.68로 3위였다. 선발(4.49·3위), 불펜(4.97·2위) 균형 또한 잘 맞았다. 무엇보다 홈런군단으로서의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팀 홈런 185개를 자랑했다. 타자친화적인 홈구장을 십분 활용했다. 2016년 라이온즈파크가 개장한 뒤 삼성이 팀 홈런 1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장타는 가히 위협적이었다.
최상의 시나리오. 투타 에이스 원태인과 구자욱이 한 단계 높이 도약했다. 원태인은 15승을 신고하며 생애 첫 다승왕에 올랐다. 구자욱은 프로데뷔 후 처음으로 30홈런 고지를 넘겼다. 129경기서 타율 0.343, 33홈런 115타점 등을 신고했다. 젊은 피들의 성장도 한 몫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얼굴은 내야수 김영웅이다. 첫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며 28번의 아치를 그렸다. 이재현, 김지찬 등 김영웅과 함께 ‘굴비즈’로 통하는 자원들도 주축 선수로 발돋움했다.
포스트시즌(PS)을 앞두고도 머리를 맞댔다. 완전체를 가동할 수 없는 가운데서도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LG와의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서 시리즈 전적 3승1패로 웃었다. 최고의 소방수로 거듭난 김윤수가 대표적이다. 위기 때마다 원 포인트로 등판해 급한 불을 껐다. 150㎞짜리 강력한 직구는 시원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박진만 감독의 생각대로 터지는 타선까지. 9년 만에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 진출에까지 성공했다.
한 끗이 부족했다. 계속되는 부상 악재 앞에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1선발 코너 시볼드(견갑골 통증)가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선발 로테이션이 원활하지 않았다. 시즌 막판 필승조 최지광(팔꿈치 내측인대)이 수술대에 오른 데 이어 백정현은 청백전서 타구에 맞는 아찔한 상황을 겪었다. 구자욱은 PO 2차전서 왼쪽 무릎을, 원태인은 KS 4차전서 오른 어깨를 다쳤다. 비록 왕좌에 오르진 못했지만 스스로 약팀의 이미지를 지우고 더 밝은 내일을 예고했다.
광주=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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