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프 X 헌터’ 관람 해외 관광객들
“연기·가창력 출중 … 멋졌다” 호평
배우 퇴근길 배웅 후 주변 투어도
관광공사, 완성도 높은 작품 선정
해외에 알리고 외국어 자막 지원
"새 한류 콘텐츠로 관광 활성화"
“노래, 춤, 연기력, 그리고 외모까지. 모든 걸 갖추기란 정말 쉽지 않죠. 그런데 한국의 뮤지컬 배우들은 그걸 다 해내고 있어요.”(말레이시아 가수 아이다 제바트)
말레이시아의 가수이자 인플루언서인 아이다 제바트(Ayda Jebat) 씨는 서울 대학로에서 ‘뱀프 X 헌터 : 울부짖어라! 피닉스 포포!! (이하 뱀프 X 헌터)’를 관람한 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학로 JS아트홀에서 펼쳐진 이번 공연은, 뱀파이어와 그에 맞서는 헌터들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로 올해 4월 첫선을 보인 이후 큰 사랑을 받아왔다.
이날 공연에서는 특히 히잡을 쓴 여성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왓슨스 말레이시아가 준비한 한국여행 이벤트에 당첨된 소비자들로 브랜드 홍보대사와 함께 대학로를 찾았다. 평소 K-콘텐츠에 큰 관심을 가진 이들이 선택한 프로그램은 ‘웰컴대학로’였다. 웰컴대학로는 대학로를 중심으로 국내외 관광객이 한데 어울려 즐기는 공연관광 페스티벌이다.
다만 이들이 택한 뱀프 X 헌터는 대사가 있는 속칭 ‘깔깔극(코믹극)’이다. ‘춤이나 공연 같은 논버벌(비언어)이면 모를까,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어 작품을 어떻게 즐기지?’ 궁금했다. 의문은 극장에 들어가자마자 해소됐다. 무대 양 사이드에 커다란 자막용 모니터가 눈에 띄었다.
무대의 막이 오르자마자 배우들의 대사에 맞게 영어, 일본어, 중국어(간체자·번체자) 등 4개국어 자막이 ‘싱크 오류’ 없이 착착 맞춰 나왔다. 한국어를 모르는 말레이시아 관객들도 대사를 놓치지 않고 함께 웃고 공감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한국관광공사 측은 “2017년부터 자막 지원 사업을 통해 외국인들이 대학로 공연을 더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어 몰라도 K-뮤지컬의 매력에 빠진 이유
왓슨스 말레이시아 홍보대사인 아이다 제바트 씨는 공연이 끝난 뒤 세계비즈앤스포츠에 소감을 전했다. 그는 “K-공연을 본 건 처음이었는데, 너무 멋졌다”고 말했다. 특히 “연기도 훌륭했고, 노래는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다. 나도 무대에서 함께 하고 싶었다”고 극찬했다. 다만 자막을 읽느라 고개를 자주 돌려야 하다 보니 무대를 놓칠까봐 아쉬웠다고도 전했다.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 출신 방문객들도 공연장을 찾았다. 루마니아 출신의 사업가 안토니아 씨는 “뮤지컬을 정말 오랜만에 봤는데, 너무 재밌었다”며 “저는 루마니아 사람이다 보니 드라큘라 이야기가 익숙하다. 여기에 한국의 정서가 더해지니 익숙하면서도 신선했다. 배우들이 정말 훌륭했고, 특히 최헌식 역의 이선 배우가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이날 관객들은 한국 공연계의 독특한 ‘퇴근길 문화’도 경험했다. 이들은 뱀프 X 헌터에서 열연한 배우 이선주(장류진), 차윤오(김준홍), 이선(최헌식), 박상선(생제르맹) 등과 사진을 찍고, 사인도 받으며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팬서비스로 유명한 대학로 배우들은 이 특별한 시간을 더 빛나게 했다.
배우 입장에서 외국인 관객이 늘어난 상황이 낯설지는 않을까. 이날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 만난 이선 배우는 “자막 지원되는 대학로 공연이 사실 많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번 공연을 연출한 노재환 콘텐츠플래닝 대표님께서 대학로에 외국 관광객분들도 많이 오고 공연관광도 활성화되길 바라는 취지에서 자막 사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덕분에 저희 극도 더 눈에 띄고, 외국인 관객분들도 와주시는 거로 알고 있다. 감사하게 공연하고 있다”고 말했다.
◆K-퍼포먼스, 해외 시장으로 무대 넓힌다
한국관광공사는 최근 K-퍼포먼스를 글로벌 무대에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K팝, 영화, 드라마에 이어 이제는 공연 콘텐츠가 주목받을 차례라는 것.
특히 대사 없이 퍼포먼스에 나서는 논버벌 위주의 공연을 넘어 뮤지컬에 대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공사가 자막 지원 사업을 강화한 배경도 이 같은 흐름에서다. OTT의 보편화로 자막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것도 한몫했다.
흔히 영화를 볼 때 떠올리는 ‘자막’을 생각하는 경우 자막에 왜 지원이 필요한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극장에서의 자막 연출은 영화와 조금 다르다. 대사의 속도, 호흡 등에 따라 이를 관리하는 오퍼레이터가 상주하며 관리해야 한다. 또 작품을 다양한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관광공사는 이런 부담을 덜기 위해 자막 지원사업에 나서게 됐다.
공사는 이와 관련 국내 작품 완성도가 높은 뮤지컬을 해외에서 소개하고 있다. ‘뱀프 X 헌터’도 이 중 하나다. 최근의 변화를 잘 반영한 만큼 해외 로드쇼에서도 함께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와 협업해 베트남, 대만,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K-뮤지컬의 가능성을 해외에 선보이는 중이다.
◆대학로, 아시아 유일의 공연 메카
공사와 공연업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대학로를 공연관광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의지다. 대학로는 현재 160개가 넘는 공연장이 밀집해 있는 대한민국 공연의 메카다. 아시아에서 이처럼 많은 공연장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곳은 매우 드물다. 거리에서 배우들이 공연을 홍보하러 다니고, 극장 곳곳에서 ‘퇴근길’ 인사가 이어지는 모습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날 말레이시아에서 찾은 관객들도 공연을 마친 뒤 대학로를 둘러보며 투어에 나섰다. 이들은 혜화역을 중심으로 대학로 일대를 구석구석 둘러봤다. 특히 K-컬처에 관심이 많은 만큼 드라마, 가수들의 화보 촬영지에도 관심이 많았다. 전통과 현대, 젊음이 어우러진 대학로에는 둘러볼 만한 장소가 많다. 최근 뉴진스가 화보를 촬영한 레스토랑 ‘자미더홍’, 드라마 ‘도깨비’와 ‘호텔 델루나’의 각각 촬영지인 ‘메밀향 그집’과 ‘창화당’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했다. 이들은 지난해 배우 권유리와 정일우가 참여해 그린 웰컴 대학로 벽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마로니에 공원으로 돌아와 일정을 마무리했다.
곽재연 한국관광공사 한류콘텐츠팀 팀장은 “K-퍼포먼스는 단순히 무대 위 공연에 그치지 않고, 관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한류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대학로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뮤지컬과 팬 문화를 결합한 K-퍼포먼스는 앞으로도 더욱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대학로 관광까지 연계해 문화관광을 활성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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