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자’를 부르던 김종국의 짠내 나는 절약 정신에 MBC 예능 ‘짠남자’가 탄생했다. 지난 5월 파일럿 방송의 호평으로 정규 편성된 짠남자는 평소 짜디짠 절약 습관을 지닌 연예계 대표 인물들이 거침없이 플렉스 하는 ‘흥청이·망청이’를 참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전 국민의 지갑을 지키고자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출발했다.
제작진은 김종국에게 합법적으로 잔소리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줬다. 각종 관찰 예능을 통해 극강의 절약 정신을 보여줬던 김종국은 출연자들의 일상에 침투해 잔소리 폭격을 날린다. 실내 에어컨 온도부터 열려 있는 냉장고 문까지 그의 레이더에 걸리면 모조리 잔소리의 대상이 된다. ‘물티슈를 빨아 쓴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던 김종국에겐 두 장, 세 장씩 쏙쏙 뽑아 쓰는 물티슈 사용은 낭비다.
출연진들의 짠내 에피소드는 마를 줄을 모른다. 제작진은 한술 더 떠 제작비 절감을 위해 MBC 로비에 소파를 가져다 놓고 촬영을 진행한다. 특별한 솔루션은 없지만 흥청이와 망청이조차 서로의 소비 패턴을 보고 ‘과하다’ 이야기한다. 지출 앞에선 언제나 합리화가 수반되지만, 타인의 거침없는 소비를 통한 거울 치료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짠남자를 보고 있자면 2018년 KBS2 예능 ‘김생민의 영수증’이 떠오른다. 당시 거침없이 “스튜핏!”을 외치는 김생민에 웃음을 터트리다가도 문득 나는 과연 ‘스튜핏’한 소비를 하지 않았나 돌아보고 반성하게 됐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절약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형성됐다. 한동안 ‘욜로(YOLO·You Only Live Once)’가 유행처럼 번졌다. 한 번 사는 인생, 지금의 행복을 위해 소비를 아끼지 않으려는 젊은 층의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고물가가 계속되면서 욜로의 시대는 가고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하고자 하는 ‘요노(YONO·You Only Need One)’의 시대가 왔다.
요노 시대에 딱 맞는 예능이다. 촌철살인 같은 잔소리로 웃음과 반성이 동시에 나온다. 흔히 ‘연예인 걱정은 쓸데없다’는 말을 한다. 막연하게 ‘많이 벌겠지’ 싶은 연예인들의 소비 습관에 공감할 수 있을까 우려했지만, 공감 포인트는 확실했다. “많이 벌어?”라는 김종국의 질문은 소득 대비 소비를 기준으로 한다는 의미다. 더욱이 흥청이·망청이들은 중복 소비와 택배 중독, 충동 소비 등 소비 요정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한 일상을 보여줬다. ‘연예인도 크게 다르지 않구나’ 생각에 예능적인 요소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짠남자에 공감하려는 찰나 코미디언 이진호의 수십억 대 불법도박 소식을 접했다. 녹록지 않은 학창시절의 시골살이를 ‘농번기랩’으로 표현해 화제가 됐던 그가 지인 연예인들에게 빌린 돈은 수천에서 수억원에 이른다. 한쪽에서는 열린 냉장고 문을 보고 다그치고, 다른 쪽에서는 수십억의 불법도박이 벌어진다. 짠남자를 보며 잠시나마 공감했던 마음이 금세 현타가 되어 돌아온다. 공감이 배신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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