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심각한 잔디 상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A매치가 열리는 한국 축구의 성지가 ‘논두렁’, ‘지뢰밭’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잔디 훼손에 여러 요인이 거론되지만 결국 관리 주체인 서울시 책임론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경기장 잔디가 급격하게 나빠진 데는 지난해 8월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잼버리)’의 일환으로 갑작스럽게 열린 ‘K-팝 슈퍼 라이브’ 공연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형 콘서트가 계획 없이 열리게 되면서 잔디 보호 장치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먼저 운동장 위에 대형 무대를 설치하면서 잔디가 무거운 무게에 눌려 훼손됐다. 당시 잼버리 콘서트는 골대 부근을 포함해 그라운드까지 무대를 설치해 잔디 훼손 논란을 자초했다. 잔디 보호를 명목으로 깔판을 깔고 무대를 설치하긴 했지만 시설물 무게 대비 한없이 얇은 깔판에 지나지 않았다. 관중은 잔디 위 그라운드석에 착석해 가수들의 공연을 관람했다. 축구팬들은 이같은 상황을 우려해 콘서트 개최를 앞두고 경기장의 잔디가 손상될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실제로 콘서트 이후 잔디는 심각하게 훼손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경기장 원상회복을 위한 예산까지 편성하며 긴급 복구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잔디 회복이 더딘 상태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이후에도 각종 공연과 축구 경기를 치러야만 했다. 지난해 9월에는 MBC ‘아이돌라디오 라이브 인 서울’이 같은 장소에서 진행됐다. 잼버리 콘서트 이후 잔디가 회복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기후 변화 문제도 제기된다. 올여름 예상보다 무더운 날씨와 폭우로 인해 잔디 관리 유지는 더 힘들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한 국내외 주요 경기장은 켄터키 블루그래스라는 품종의 한지형 잔디를 사용 중이다. 해당 품종의 생육 적정 온도는 15~25도다. 그러나 25도 이상 고온에는 취약해 생육이 정지되고 말라 죽는다. 올해 30도가 넘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면서 잔디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태가 악화됐고 잔디 밀도는 60% 수준까지 떨어졌다.
잼버리 콘서트가 열리기 직전까지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상태가 좋은 잔디를 유지하고 있었다. 경기장 운영 주체인 서울시설공단은 2021년 10억원을 들여 천연잔디와 인조잔디를 섞은 하이브리드 잔디를 새로 깔았다. 하이브리드 잔디는 잔디 패임 현상을 방지해 선수 부상 예방과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또 잔디 식재층 모래를 전면 교체해 배수 성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쿠팡플레이 시리즈를 위해 내한한 맨체스터 시티 관계자들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를 극찬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 직전 엄청난 폭우가 내렸지만 완벽한 배수시설 효과로 불과 40분 만에 경기가 재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축구경기장의 얼굴인 잔디 보호를 위해서는 관리 주체의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설공단은 대중문화 공연의 경우 주최 측 관람료 수입의 8%의 비용을 별도로 받는 등 대관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적지 않다. 그만큼 잔디 관리 등 정비 투자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대형 공연장이 부족한 상황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의 콘서트 개최는 불가피하다. 한국과 기후가 비슷한 일본도 각종 경기와 콘서트 등이 유명 구장에서 열린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품종 개발, 전문 관리 인력 육성 등에 집중 투자했고 그 결과 양호한 잔디 상태를 유지 중이다. 유럽의 경우 대체로 축구 구단이 구장을 소유하고 있다. 경기장 잔디는 구단을 홍보하는 주요 상품이기 때문에 시즌이 끝나면 잔디를 교체하는 등 많은 투자가 이뤄진다.
대관 시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요구된다. 공연 횟수와 잔디 관리, 훼손 발생에 대한 배상 책임 등 체계적이고 섬세한 가이드라인이 주어진다면 축구계와 가요계 모두 불필요한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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