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과 함께, 꽃길을 펼친다.
올림픽 메달은 모든 선수에게 ‘꿈의 업적’이다. 전 세계 1위라는 찬란한 명예에 숱한 메리트가 줄을 잇기 때문. 특히 남자 태극전사들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덧붙는다. 바로 1973년 국위선양을 이유로 도입된 병역 특례다. 올림픽에서는 빛깔과 상관없이 메달을 따기만 하면, 예술체육요원 복무 자격을 얻는다. 최고의 동기부여를 안은 선수단, 기대대로 파리 곳곳에서 힘찬 전역 신고를 알리는 중이다.
◆“박하준 군대 가자”
27일 열린 공기소총 10m 혼성 은메달리스트에 빛나는 박하준(24)이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이다. 국내대회에 임할 때면 그의 집중력을 흔들기 위해 관중석에서 이 말이 터져 나오곤 했다. 오죽했으면 관중들에게 이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직접 요청한 적이 있을 정도. 이제 더 이상 그 말은 듣지 않아도 된다. 내년 초로 내다본 국군체육부대 입대 계획이 은메달과 함께 백지화 됐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AG)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와 함께 사격 대들보로 우뚝 섰다. 그러나 AG에서 병역 특례는 금메달에만 주어진다. 영광 속에 아쉬움을 곱씹었던 이유다. 피나는 노력 끝에 더 큰 무대에서 숙원 사업을 해결했다. 소속팀 KT에서 탄탄대로를 그릴 일만 남았다. 그는 “군대 이야기는 원래 국내대회 결선 때 저를 혼란스럽게 하는 야유 멘트라 싫어했다. 올림픽 준비하며 병역은 별로 생각 안 했는데, 막상 혜택을 받게 돼 기쁘다”고 미소 지었다.
◆입대 20일 전
올림픽이 끝난 후인 8월 19일은 탁구 대표팀 임종훈(27)의 입대일이었다. 국군체육부대(상무)로 향해 군 복무와 탁구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했던 그다. 하지만 탁구계를 들썩인 경사와 함께 이 또한 없던 일이 됐다.
‘삐약이’ 동생 신유빈의 손을 맞잡고 나선 대회 혼합복식에서 지난 30일 동메달을 따냈다. 2012 런던(남자 단체전 은메달) 이후 12년 만에 나온 한국 탁구 올림픽 메달과 함께 임종훈은 짜릿한 ‘전역증’까지 받아들었다.
“솔직히 군대 생각이 안 났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웃은 그는 “모든 건 유빈이와 함께 복식을 할 수 있어서 가능했다. 너무 고마운 마음뿐”이라며 덜컥 ‘합법적 병역 브로커’ 별명을 받아든 후배를 향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조기 전역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의 도경동(25)이 바통을 받았다. 그는 1일 열린 종목 결승에서 헝가리를 상대로 금빛 찌르기를 수놓아 생애 첫 올림픽에서 단숨에 금메달에 닿았다.
불안 요소는 있었다. 팀 동료인 세계랭킹 1위 오상욱, 22위 구본길, 23위 박상원과 75위 도경동의 순위는 다소 차이가 있었기 때문. ‘어펜저스 시즌2’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배경이기도 했다.
보란 듯이 깨부쉈다. 30-29로 팽팽했던 승부처, 도경동은 이번 대회 처음으로 피스트에 올라 실점 없이 5연속 득점을 쏟아내며 하이라이트 필름을 제작했다. 사브르 단체전 올림픽 3연패를 빚은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특별한 선물이 찾아왔다. 시상대에서 씩씩한 거수경례를 한 그는 현재 국군체육부대 소속이다. 그래도 병역 혜택은 똑같이 주어진다. 전역일(10월 16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말년 병장에게는 꿈만 같은 조기 전역이 주어진다. 동료이자 선배인 오상욱과 구본길 모두 국제대회를 통해 병역 혜택을 받고 한국 펜싱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도경동이 이제 그 길을 걸으려 한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