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왕, 한 번 해보니 또 하고 싶네요.”
생애 첫 시상식 나들이를 앞두고 서진용(SSG)은 고이 모셔둔 넥타이 하나를 꺼냈다. 팬이 선물한 것이다. 30세이브를 조금 넘긴 시점, “세이브왕이 되면 착용해 달라”며 건넸다. 바람은 이뤄졌다. 42세이브를 작성하며 당당히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조끼까지 꽉꽉 채운 회색 정장과도 퍽 잘 어울렸다. 서진용은 “성인이 된 뒤 처음으로 맨 넥타이인 것 같다”면서 “넥타이 때문에 세이브왕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또 하나의 동기부여가 된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서진용에게 2023시즌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굵직한 발자취를 대거 남겼다. 구단 한 시즌(전신 SK 시절 포함) 최다 세이브 신기록을 세웠다. 리그 최초로 블론 없이 30세이브 고지를 밟은 데 이어 역대 6번째로 40세이브에 올랐다. 무엇보다 스스로 틀을 깼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슬로스타터’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개막 후 20경기 연속 평균자책점 ‘0’의 행진을 이어갔다. 구속 역시 개막전부터 150㎞ 가까이 찍혔다. 4월에만 1승 10세이브를 신고했다.
한순간에 얻은 열매가 아니다. 숱한 고난을 이겨냈다. 마무리로 낙점되고도 완주하지 못하고 자리를 옮기기 몇 차례. 올해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닝 당 출루허용률(WHIP)이 1.53에 달했다. 경기 당 볼넷 허용 개수가 6개가 넘는다. 그래도 이겨냈다. 위기의 순간마다 삼진을 잡아내며(경기 당 7.9개)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자랑했다. 서진용은 “무사 만루가 돼도 점수를 안 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래, 한 번 또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꾸준함의 결실이기도 하다. 2018시즌부터 꼬박꼬박 50이닝 이상을 책임졌다. 올해는 73이닝으로, 데뷔 후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뛰어난 회복력을 자랑하는 서진용이지만 계속되는 피칭에 피로가 쌓여갔다. 통증을 느끼면서도 팀의 승리를 위해 버텼다. 결국 지난 10일 우측 팔꿈치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날 검사에선 뼈가 거의 깨진 상태였다. 선수 입장에선 칼을 대는 것 자체가 큰 불안감일 터.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 서진용은 “개막전까지 맞출 수 있을 듯하다. 팔도 새로 갈았지 않나. 계속 타이틀을 유지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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