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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왕인 박사·한석봉母도 머물다간 ‘구림 전통마을’

입력 : 2022-11-21 01:00:00 수정 : 2022-11-21 08: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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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정’ 이순신 친필 편지 사본 눈길
도선국사 탄생설화 내려온 ‘국사암’
한반도 최초 유약 ‘시유 도기’ 생산지
구림마을 드론 전경

‘인생 첫 영암여행을 떠나면 어디로 가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구림 전통마을을 찾으라는 답을 들었다.

영암에는 볼거리가 많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월출산으로 등산을 떠나 멋진 기암괴석들을 바라볼 수 있고, 가족여행을 떠났다면 이곳 대표 관광지인 기찬랜드를 찾는 것도 좋다.

구림마을을 감싼 월출산

감성여행을 고려한다면 구림마을로 향하는 게 답이다. 구림마을은 월출산 서쪽 자락 군서면에 위치해 있다. 전남 나주시 금안동과 전북 정읍시 무성리와 함께 ‘호남 3대 명촌’으로 꼽히는 곳이다.

나주역에서 자동차로 40분 남짓 들어가면 도착한다. 지난주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마을은 말 그대로 깊은 가을 그 자체였다. 월출산 서북쪽 동구림·서구림·도갑·동계·서호정 등 12개 마을이 하나의 이름으로 어우러져 있다. 어디서나 월출산이 감싸고 있어 눈이 호강한다.

상대포 역사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마을을 둘러보면 편하다. 이곳은 신라시대부터 국제교역 역할을 했는데, 백제 문화를 일본에 전한 왕인 박사도 이곳을 통해 일본에 건너갔다.

상대포구

구림마을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왕인 박사가 일본으로 향하고, 도선국사가 태어난 전설이 내려오며, 이순신 장군이 정비 등을 위해 다니고,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장사를 하던 곳이다. 지금도 시간이 멈춘 듯 아름다운 고택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담이 둘러싼 마을길을 따라 걸으면서 400년 넘은 고택들을 마주한다. 울창한 솔숲의 아름다운 누각과 정자들로 가득해 엽서 속 풍경같다.

마을 입구에 다다르니 친구와 만나 놀던 백구가 반갑게 꼬리치며 맞아준다. 노란 은행잎이 작은 부채들처럼 펼쳐진 데다가, 멋진 고택들과 어우러져 어디서 찍어도 ‘인생샷’이다. 특별히 무언가를 둘러보지 않아도 마을 자체가 그림이고 장관이다. 늦가을 만추 하면 영암이 떠오를 것 같다.

마을 대부분이 고택이다보니 모르고 들어간 곳이 주민들의 집이어서 당황해 나오기도 했다. 한 정자와 큰 나무가 멋져 보여 들어갔더니 ‘죽림정’이라는 곳이다. 누가 사는 집인 것 같아 나가는 길을 여쭈니, ‘관광객이냐’며 갑자기 죽림정에 대해 살뜰히 소개해준다. 알고 보니 이곳을 세운 연주 현씨의 18세손 현삼식 씨다. 평소에도 관광객들에게 기회가 되면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죽림정 안에는 기증하고 복제된 이순신 장군의 친필 ‘약무호남시무국가’ 편지 사본이 8부 걸려 있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고 쓴 편지다. 현 씨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은 왜군과 전쟁 중, 한산도 앞에 진을 치면서 현덕승 사헌부 지평에게 보낸 편지 속에 이같이 적었다. 나라를 걱정하는 것은 물론 영암 일대 해안가에 사는 백성들을 아끼는 애정이 담겼다는 게 현 씨의 설명이다.

현삼식 씨가 죽림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지금은 예쁜 연못으로 바뀐 상대포구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왜구들이 접근해 농작물을 약탈해 마을 주민들의 골칫거리가 됐다. 이순신 장군도 이곳에 들러 머물다 가곤 했는데, 당시 마을 사람들은 군인들을 환대했다. 이순신 장군은 군량미와 군수품을 지원해준 구림 주민들에게 감사의 서한을 보낸 게 이 편지다. 원본은 현충사에 있다.

이밖에 400년 넘게 보존된 ‘창녕 조씨 종택’과 ‘죽정서원’, 울창한 솔숲 사이에 있는 ‘회사정’도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아름다운 고택 내에서도 한옥을 경험할 수 있다. 마을 내에는 한옥 민박시설이 대규모로 조성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국사암

도선국사의 탄생설화가 내려오는 ‘국사암’도 둘러볼 만하다. 낭주 최씨 선조를 모시는 사당인 ‘국암사’ 마당의 커다란 바위다. ‘구림마을’이라는 이름도 버려진 아이를 비둘기들이 감싸 안았다고 해서 붙었다. 구림마을 4km 이내에 도선국사가 세운 ‘도갑사’가 있어 함께 둘러볼 만하다. 입구의 ‘해탈문’은 국보로 지정됐다.

영암은 문화예술에 특화된 지역이다. 우선, 도기로 유명하다. 약 1200년 전 통일신사시대에는 한반도 최초로 유약을 칠한 ‘시유 도기’가 이곳 구림마을에서 생산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같은 역사를 담은 영암도기박물관도 둘러볼 만하다. 이는 구림도기의 역사성과 영암의 우수한 도기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설립됐다.

이뿐 아니다. 영암의 고즈넉한 마을에서 호안 미로, 샤갈, 살바도르 달리를 마주쳤다. 코코 샤넬의 초상을 그린 여류화가 마리 로랑생, 시대 최고의 여류화가 쿠사마 야요이의 초기 작품도 걸려 있었다.

영암군립 하정웅미술관.

마을 중앙의 ‘군립 하정웅미술관’에서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마침 내년 3월까지 ‘현대미술의 거장’ 전시를 열고 있어 둘러봤다가 예상치 못한 작품들에 감동했다. 이는 재일교포 사업가인 동강 하정웅이 수집한 미술품과 자료를 영암군에 기증해 성사된 것. 하정웅 선생은 평생 모아온 작품과 자료 3700점을 모두 부모님의 고향인 영암에 기증했다. 미술관 맨 위층에서는 2012년 조덕현 이화여대 미대 교수의 ‘수집, 혹은 기억’ 작품이 걸려 있다. 이는 동강 하정웅 선생의 생애를 압축한 현대미술 작품이다. 고즈넉한 산책 후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본 뒤 한옥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면 가을 감성 충전 완료다.

한편, 영암을 찾았다면 맛있는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독천 낙지거리를 찾아 ‘호롱 낙지’와 ‘갈낙탕’을 먹으며 기력 회복을 해보자. 닭 한 마리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영암 닭코스 요리’는 천년고찰 도갑사와 군서면 일대에서 즐길 수 있다. 기찬랜드의 명물 ‘비주얼 쇼킹’ 영암 한우 육회초밥도 기억할 만하다. 초밥을 먹은 뒤 영암의 명물인 무화과로 만든 ‘무화과빵’과 아메리카노로 뺴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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