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김재원 기자] 배우 송재호가 숙환으로 별세한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안타까운 사연들이 알려지면서 아쉬움을 더한다.
한 연예계 관계자에 따르면 8일 “송재호 씨는 지병의 악화로 인해 최근엔 주변인을 알아보지 못할 쇠약한 상태여서 안타까움을 더한다”면서 “자세한 내용은 개인 정보이기 알려드릴 수 없다”고 했다. 앞서 지난 7일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따르면 송재호는 1년 이상 앓던 숙환으로 인해 이날 숨을 거뒀다. 이에 2018년에 촬영했던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이 사실상 마지막 작품이 됐다. 향년 82세.
순탄치 않았던 인생사지만 영면에 들기 전까지 연기와 영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줬다. 1937년생인 송재호는 평양 출신으로 6·25전쟁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이어 잃는 아픔을 겪게 된다. 부산으로 월남 이후 1959년 부산 KBS에서 성우로 방송국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1964년 영화 ‘학사주점’ 출연했고, 1968년에는 KBS 특채 탤런트로 제2의 인생을 열었다.
이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한국 영화·연기사에 족적을 남겼다. 당시 한국 영화계는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등 호황을 누렸다. 송재호는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도 관심을 보이며 영화제작사를 열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1억 원이 넘는 빚을 떠안았다.
더구나 빚을 갚기 위해 사채까지 쓰게 되면서 곤경에 빠지기도. 사채업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상환을 종용하는 바람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바 있다. 특히 20대 초반 결혼한 뒤 4남 1녀의 자녀를 키우면서 사채를 상환하는데 고난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한 매체의 인터뷰에 따르면 “너무 괴로웠고 삶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며 “늘 쫓기듯 사는 인생이 너무 힘들었다”고 회상하기도. 하지만 극단적 선택이 번번이 실패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영화에 대한 꿈도 접지 않았다. 2000년 영화사 NM필름을 만들고 미국 현지 로케를 촬영을 계획했지만 9·11 테러가 터지면서 다시 한 번 좌절을 맛본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해 28살 막내아들이 눈길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충격으로 인해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포기를 모르는 그는 50년 동안 빚을 갚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부인과 관련된 내용은 매체를 통해 일부 알려진 게 전부였다. 2011년 YTN 뉴스에 출연해 당시 출연했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관련한 인터뷰를 가졌다. 실제 부인에게도 영화처럼 잘 해주냐는 질문에 “잘해주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긋나는 게 있다(중략). 아내는 첫사랑으로 한 살 연하인데 친구처럼 지내지만 내가 죽고 못 산다. 아내가 뭐라고 하면 무조건 알았다고 하고 말을 잘 들으려고 한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측근에 따르면 송재호의 부인은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배우 외에도 여러 방면에서 왕성한 발자취를 남겼다. 서울호서예술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연기자 양성을 위해 노력했고, 야생생물관리협회장, 홀트아동복지회 홍보대사, 문화재사랑 어린이 창작동요제 홍보대사를 지냈다. 또 국제사격연맹 심판 자격증을 취득해 심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생전 연기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은 말로 대신했다. “나이가 90이 되더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계속 연기할 수 있는 연기자란 직업을 택한 게 후회 없고 행복하다.”
송재호의 실제 모습은 스타일은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와 가장 흡사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온갖 풍파를 겪었지만 내색도 없이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 말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10일.
jkim@sportsworldi.com 사진=KBS2 ‘부모님 전상서’ 출연 당시, KBS 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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