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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희의 눈] 자동차가 스스로 출근하는 시대, 인간이 해야 할 일

입력 : 2025-04-20 13:14:44 수정 : 2025-04-20 13: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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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최신 발표는 자동차 산업의 지형도를 다시 한 번 뒤흔들었다.

 

일론 머스크가 “생산라인을 막 빠져나온 차가 인간 손을 한 번도 거치지 않고 고객 집 앞까지 달려갈 것”이라고 밝히자, 공장 내부에서 이미 FSD ‘언슈퍼바이즈드’ 모드로 완전 자율 주행을 시험 중이라는 보도가 곧바로 뒤따랐다. 실제로 기가텍사스와 프리몬트 공장에서는 막 조립된 모델 Y가 스스로 출고장까지 이동하며 인력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다. 그동안 ‘로보택시’나 ‘사이버캡’이라는 단어가 주로 투자자 이벤트에서 흘러나오는 미래형 슬로건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물류 사슬의 맨 첫 단계부터 인간이 밀려나는 구체적 시나리오가 공개된 셈이다. 

 

노동시장에도 파급이 크다. 미국만 해도 운송·창고 부문에 종사하는 인력은 수백만 명에 이른다. 택배 기사, 장거리 트럭커, 렌터카 인수 담당자, 딜러 검수 조립원 같은 직군이 자율 배송 체계의 직격탄 후보로 거론된다.

 

하지만 모든 운전대가 사라지면서 일자리 총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손이 핸들을 떠난 만큼 눈과 뇌가 모니터 앞으로 이동한다. ‘텔레오퍼레이션’, 즉 원격 운전·관제 산업을 추적하는 시장조사 기관들은 관련 시장이 2030년 20억 달러 수준에서 2032년 40억 달러 안팎으로 두 배 넘게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리적 근육 노동이 초저지연 네트워크와 데이터 레이블링을 다루는 지식 노동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규제 환경 역시 속도를 맞추고 있다. 미 교통부 산하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지난 연말 자율주행차의 전방위 확산을 목표로 ‘무인차량 시험 면제 심사 간소화’ 규정을 제안했다. 기존에 제조사당 2500대 수준이던 무인차 면제 한도를 확 늘리고, 스티어링 휠이나 브레이크 페달 없이도 상업 운행을 허가할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업계는 이를 두고 “연방 차원의 규제 샌드박스가 본격 가동된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로이터(Reuters) 덕분에 완전 자율 배송이 대규모로 깔릴 인프라는 법적·행정적 걸림돌을 상당 부분 해소한 상태로 출발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흐름에 가장 발 빠르게 올라탄 곳은 역시 테슬라지만, 후발 주자라고 만만히 볼 수 없는 플레이어도 존재한다. 아마존이 2020년에 인수한 주룩스(Zoox)는 이번 달 초 로스앤젤레스 중심부 일반 도로에서 로보택시 시범 운행을 시작했다. 동그랗고 사랑스러운 상자 모양의 차량이 교차로를 빠져나가는 영상은 단순한 홍보물을 넘어 ‘승객 없는 차량이 공공 도로를 정상 속도로 달린다’는 사실 자체를 현장에 새겼다. 여기에 구글 웨이모, GM 크루즈까지 가세해 미국 서부 도시들은 자율주행 스타디움이자 거대한 A/B 테스트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문제는 변화의 속도보다 준비의 속도다. 우선 금융시장부터 보자. 단일 플랫폼 기업에 모든 베팅을 싣는 전략은 기대 수익률만큼이나 변동성도 클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공개된 사이버캡 콘셉트카가 세부 사양과 일정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테슬라 주가가 급락했던 장면은 투자자에게 생생한 교훈을 남겼다. 블룸버그 ‘자율 배송 체인’ 전반에 걸쳐 칩·센서·5G‑Advanced 네트워크·클라우드 관제 소프트웨어로 자본을 분산시키는 픽 앤드 쇼블 방식이 중장기 관점에서 리스크 헤지를 돕는다. 엔비디아의 엣지 AI GPU, NXP와 모빌아이의 차량용 SoC, 초저지연 백홀(backhaul)을 공급하는 통신 장비 업체, 그리고 수천 대 차량을 웹 콘솔 한곳에서 관리해 주는 SaaS 스타트업이 대표적이다.

 

노동시장 측면에서는 ‘전환 교육’이 키워드다. 자율주행 관제사는 단순히 운전을 잘하던 사람이 즉시 적응할 수 있는 직무가 아니다. 고해상도 스트리밍, 다중 카메라 뷰 배치, 원격 제어 체계를 이해해야 하고 차량 이상 징후를 로그 데이터에서 읽어낼 디지털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교육기관이 함께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규제가 완화되는 만큼 전환 불안을 줄일 사회적 안전망이 뒤따라야 갈등 비용도 줄어든다. 이 과정에서 마이크로 디그리 형태의 온라인 강좌나 재취업 패키지가 봇물처럼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제조·물류 현장 또한 빠르게 재편될 전망이다. 차체를 완성한 뒤 검수 작업을 맡던 직원들은 센서 필름 먼지를 제거하거나 무선 업데이트(OTA) 소프트웨어를 테스트하는 ‘필드 테크’로 이동할 수 있다. 도심 속 렌터카 창구 직원은 사라지겠지만, 수백 대 대여 차량을 원격으로 점검하고 배터리 잔량을 실시간 파악하는 플릿 오케스트레이터라는 직무가 대신 등장한다. 데이터가 연료가 되고, 코드는 공구가 되는 시대다. 전화 교환수가 사라졌어도 통신 산업이 커졌던 것처럼 운전석이 사라져도 모빌리티 산업의 부가가치는 오히려 불어나게 마련이다.

 

물론 우려도 존재한다. 완전 자율 배송이 약속했던 일정에 맞춰 상용화되지 못하면 기술 신뢰도 하락과 함께 규제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안전사고가 한차례만 크게 터져도 봇물처럼 열린 규제 창구가 순식간에 닫힐 공산이 크다. 노조와 지역 사회가 정치권을 압박해 안착 속도를 늦추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기업이 사회적 면허를 얻기 위해서는 ‘노동 전환 펀드’에 출연하거나, 전직·재교육 프로그램을 공식 파트너십 형태로 운영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판은 이미 기울었다. 공장부터 소비자 현관까지 이어지는 1000㎞의 물류 리본을 사람 대신 알고리즘이 달리는 시대는 시간문제다. 핵심은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그 물결 위에 올라타는 속도와 자세다. 자율 배송 체계가 높일 효율은 분명 거대한 경제적 파이를 만들 것이고, 그 파이는 새로운 일자리를 먹여 살릴 영양분이기도 하다. 핸들을 내려놓고 키보드를 집어드는 속도, 그리고 도로 위 데이터 흐름을 읽어내는 통찰이 결국 개인의 소득과 기업의 수익률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스스로 집으로 출근하는 날,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의외로 단순하다. 첫째 변화가 불러올 공포를 과장하지 않고 냉정하게 구조를 분석할 것. 둘째 기술·규제·노동 세 축이 만나는 접점을 탐색해 투자와 교육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할 것. 마지막으로 혁신의 전면에서 실패와 시행착오를 감당할 이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충전소’를 함께 설계할 것. 운전석이 비워진 자리에는 여전히 인간의 기획력과 상상력이 들어설 공간이 충분하다. 그리고 그 공간이야말로 다음 세대의 밥벌이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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