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 팀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잠수함 에이스, 고영표(KT)는 아직 목마르다.
프로야구 KIA와 KT의 맞대결이 펼쳐진 지난 15일의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이날의 KIA 타자들은 고영표가 펼치는 마법에 혼이 나갔다. 전매특허 체인지업을 앞세운 투구에 타자들이 무력하게 물러났다. 떨어지는 공을 헛치다가 무릎을 꿇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날의 승부가 KIA의 1-0 승리로 끝났지만, 고영표의 마구 같은 체인지업이 계속해서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배경이다.
KIA 최원준은 경기가 끝나고 “공이 오다가 사라진다. 야구하면서 이정도로 못 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오타니가 와도 못 치는 거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며 혀를 내둘렀다. 적장 이범호 KIA 감독도 “현역 때도 상대했지만 정말 까다롭다. 체인지업인 걸 알고 쳐도 스윙할 수밖에 없다. 떨어지는 게 안 보인다”고 엄지를 세웠다.
이강철 KT 감독의 얼굴에도 미소가 서렸다. “최근 체인지업이 안 밀리고 종으로 잘 떨어진다. 한창 좋을 때 느낌이다. 자기 살아갈 길을 확실히 찾았다. 스피드에 연연하지 않고 확실하고 완전한 무기를 만드는 게 좋다는 걸 알아챈 느낌이다. 좋은 패턴으로 가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쏟아지는 칭찬은 고영표에게도 당연히 반갑다. “세계 최고 타자를 언급하면서까지 좋은 구종이라고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며 최원준에게 특별한 마음을 전했다. 정말로 오타니가 치기 힘들어할지 묻는 가벼운 질문에는 “아무래도 언더핸드로 체인지업 던지는 투수가 많이 없지 않나. 타자들에게는 적응이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어려워할 수는 있다고 본다. 한 번쯤은 헛스윙을 끌어내지 않을까”라는 즐거운 상상도 더했다.
마법의 체인지업과 함께 최근 폼이 부쩍 올랐다. 직전 경기였던 8일 NC전에서 7이닝 10탈삼진 1실점으로 마수걸이 선발승을 신고했고, 지난 KIA전에서 6이닝 11탈삼진 무실점으로 압도적인 힘을 뽐냈다. KT가 자랑하는 ‘토종 에이스’의 면모를 되찾아가는 그다.
고영표는 “체인지업 구위가 회복되면서 어제(15일) 같은 경기를 만들 수 있었다. 내 체인지업은 밋밋해지면 타자들한테 좋은 먹잇감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작년은 부상도 있고 여러모로 좋지 않았는데, 올해는 조금씩 원하는 타이밍에 힘을 전달할 수 있게 됐다. 피치 터널이 길어지면서 타자 눈앞가지 가서 잘 변하고 있다”고 만족감을 드러낸다.
탈삼진이 확 늘어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의 낙차로 인해 타자들의 애매한 콘택트조차 이뤄지지 않고, 모두 헛치기 마련이다. 고영표가 2경기 연속으로 10탈삼진 이상을 뽑아낸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다만, 동전의 양면처럼 아쉬운 포인트도 하나 있다. 투구수가 자연스럽게 늘어나면서 이닝 소화력이 다소 줄었다. 이강철 감독이 이를 직접 콕 집기도 했다. 고영표도 “공감하는 문제다. 과거의 나였으면 7∼8이닝을 갈 텐데, 헛스윙 비율이 높아지니 인플레이 타구가 줄어서 투구수가 많아지고는 있다”면서도 “다만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반대로 삼진은 변수가 없이 절대적으로 아웃카운트를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투수에게 장점이라 느낀다”는 자신만의 시선을 전하기도 했다.
발전을 멈출 생각은 없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커터라는 신무기까지 장착했다. 그는 “날 상대하는 좌타자들이 의식적으로 어퍼스윙을 하는 게 느껴진다. 이를 대비해 체인지업과는 반대되는, 떠오르는 느낌을 주기 위한 커터를 연습했다. 타자로 하여금 생각이 많아지게 해야 내가 공략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아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속에 대한 미련도 모두 내려둔 지 오래다. 그는 “감독님이 늘 말씀하신 대로 저도 구속에 대한 집착은 없다.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구속보다는 구위가 되는 투수가 되겠다”는 굳은 다짐까지 띄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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