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되고 차상현, 이정철 감독님께 ‘죄송했습니다’ 전해
-아이들과 배구하면서 책임감 ‘더 잘하고 싶어’

배구 인생 스토리만 보면 책 한 권은 거뜬하다. 1라운드 2순위로 V리그 무대를 밟으며 촉망받은 신인이었다. 하지만 2시즌만에 돌연 은퇴를 선언 한 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재능을 아깝게 여긴 실업팀의 제안으로 배구공을 다시 잡았다. 2년 만에 프로팀에서 러브콜이 왔고, 다시 V리그로 복귀했다.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난 그는 프로복귀 3년 만에 국가대표 유니폼까지 입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타고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며 V리그를 지켰고, 지난 2023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주인공은 ‘율대장’, ‘방탄유리’ 그리고 본인 강조 ‘율공주’로 불리며 팬 서비스만큼은 V리그 전체 최고였다는 바로 김유리다. 현재 V리그 출신 이효동이 대표로 있는 배구 클럽 ‘아스트로하이’에서 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김유리를 한국유청소년배구협회 주최 클럽 배구 대회가 열린 강원도 인제에서 직접 만났다.
◆샐러드 가게 우수 직원… 은퇴 후 선수 생활 미련에 배구 처다도 안 봐
김유리 코치는 2023년 4월 은퇴를 선언한 뒤 배구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김 코치는 “사실 선수생활을 더 하고 싶다. 34세까지 하는 게 목표였는데, 딱 1년 남은 상황에서 재활을 하고 복귀하느냐, 그냥 은퇴하느냐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했다”며 “막상 은퇴를 하고 나니 자꾸 미련이 남더라. 배구를 보면 미련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안 봤다”고 전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래서 선택한 일은 샐러드 가게였다. 김 코치는 “나는 뭔가 계획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오늘만 산다. 하루살이 같다고 해야 하나(웃음)”라며 “어쩌다 샐러드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됐다. 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더라. 내가 만든 음식을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재미를 느꼈다”고 전했다. 잘하는 사람은 어디서도 티가 난다. 우수 직원이었다. 김 코치는 “샐러드 가게 사장님께서 ‘제2의 백종원’이 되자고 하시면서 체인을 내자고 제안해 주셨다. 그때쯤 해설위원을 하게 됐고, 지도자를 해보자는 제안도 받았다. 그렇게 만나게 된 것이 이효동 대표팀이 계시는 아스트로하이다”고 말했다.

◆지도자 된 뒤 이정철, 차상현 감독님께 전화하다
엘리트 학생 선수가 아닌 클럽 활동 학생을 지도하는 일이었다. 애초 계획에 없던 일이다. 김 코치는 “엘리트, 클럽 이런 걸 나눌 처지도 아니다. 지도자 자체가 내 인생에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다. 내 주제에 누가 누굴 가르치냐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 번 시작하면 허투루 하지 않는다. 프로선수 출신 지도자라는 책임감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떠올랐다. 김 코치가 V리그에서 활약했던 소속팀 IBK기업은행과 GS칼텍스에서 감독과 선수로 만났던 이정철, 차상현 현 SBS Sports 해설위원이다.
김 코치는 “프로선수 김유리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해 주신 분”이라면서 “선수 때 두 분과 참 많이 싸웠다”고 껄껄 웃었다. 그러면서도 ‘은인’이라고 강조했다. 김 코치는 “이정철 감독님은 실업에서 뛰던 나를 다시 V리그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리고 선수 시절 그렇게 구박을 하시면서 지도자 자격증을 따라고 하셨다. 이 감독님께서 없었으면 선수 김유리도, 지도자 김유리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차상현 감독님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실 거라고 생각한다. 선수 생활 마지막 감독님이셨다. 내가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전화한 것도 차 감독님”이라고 전했다.

김 코치가 이정철, 차상현 감독에게 전한 첫마디는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였다. 김 코치는 “지도자가 되고 나니 감독님들 생각을 많이 나더라”고 웃으며 “선수는 나만 챙기면 되는데, 지도자는 챙길 것이 정말 많더라. 감독님들이 나 때문에 많이 힘드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감독과의 에피소드를 풀어놨는데, 중요한 것은 그때와 지금의 감정이 다르다는 점이다. 김 코치는 “이 감독님께서 훈련 중에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다녀오면 ‘훈련하기 싫어서 화장실 가는 거지’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때는 진짜 억울하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감독님이 미웠다. 그런데 이제는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차 감독에게는 대놓고 말씀드렸다. ‘어떻게 저를 안 때리셨어요?’라고. 김 코치는 “차 감독님께서 껄껄 웃으시면서 ‘이제 내 마음을 알겠나. 이제 니도 당해 봐라’고 농을 하시더라”며 “지금까지도 어떻게 코칭해야 하는지 알려주신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진심을 다한다
김 코치는 현재 국제학교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엘리트 선수는 아닌 클럽 활동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절대 허투루 하지 않는다. “아직도 어떻게 지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은 하지만, V리그 선수 출신 지도자라는 타이틀에 흠이 가지 않게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열성적이다.
성과도 나온다. 김 코치가 이끄는 ‘아스트로하이’는 최근 클럽 배구대회에 출전했다. 한국유청소년배구협회와 인제군배구협회가 공동 주최 및 주관하고 인제군과 인제군의회 그리고 (사)인제군체육회가 후원하는 클럽 배구 대회 ‘인제부터 즐거움 배구 챌린지 코리아 2025’에 출전해 여자 U18 부문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우수 지도자상까지 거머쥐었다.
김 코치는 “차라리 엘리트 선수라면 성적을 내야 하니 더 강하게 지도할 것 같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두 번 정말 재미로 배구하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너무 헷갈렸다. 어디까지 봐줘야 하는지, 굳이 화내면서 시켜야 하는지, 또 예의 없는 거는 못 참아서 부딪히는 게 많았다”며 “선수 때도 안 걸렸던 성대 결절도 왔다”고 웃었다.

그래도 보람차다. 김 코치는 “아이들이나 학부모님들이 ‘선생님 덕분에 서브가 좋아졌어요. 리시브가 나아졌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뿌듯한 느낌이 든다”라며 “솔직히 선수 때는 감흥이 없었다. 돈을 빨리 벌고 싶어 선수를 시작했고, 선수 생활을 하면서는 그냥 ‘열심히 해야지’ 하고 뛰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지도자, 선생님으로 인정받으니깐 뭔가 책임감도 느껴지고, 뿌듯함도 느낀다. 말로 설명하지 못할 무언가 있다”고 미소 지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주위에서 나중에 배구 클럽 차릴 거냐, 본격적으로 지도자 할 거냐 많이 물으신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뭔가 계획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하루살이다. 나중에 어찌 될지는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며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열심히 아이들 가르치고, 지도자로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고, 그렇게 지내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아직도 나를 응원해 주시는 팬분들이 있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만큼 더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인제=권영준 기자 young0708@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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