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2월 22일 토요일. 작업실에서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웹을 통해 인천유나이티드의 개막전 선발 명단을 확인했다. ‘박경섭’이라는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올해 입단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프로 데뷔가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필자는 밀린 일을 제쳐두고 박 선수의 경기를 몰입해서 봤다. ‘잘할 수 있을까’, ‘잘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박 선수는 이날 90분 동안 안정적인 경기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했다.
박 선수와의 인연은 특별하다. 박 선수의 유스 시절(U15 광성중, U18 대건고) 필자는 심리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이었다. 약 5년간 함께 하며 가까워졌다. 유소년 시기만 하더라도 박 선수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인성이 바르고 성실한 선수였다. 심리교육을 진행하면 항상 눈망울이 초롱초롱했다. 교육이 끝나면 개인적으로 찾아와 질문을 할 정도로 적극적이기도 했다. 필자는 당시 매사에 성실한 박 선수를 바라보며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괜한 걱정이었다.

박 선수의 U15 광성중 시절은 어땠을까? “다른 선수들보다 화려하지 않았어요. 키는 컸지만 기술이나 힘에서 항상 부족함을 느꼈어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대건고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는데 이때부터 현실적인 고민과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박 선수는 당시 자신의 실력으로 대건고에 진학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후 기량 향상을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저는 중학교 때 포지션이 수비형 미드필더였기에 헤딩에서 지지 않고 정확한 패스를 할 수 있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박 선수는 아침저녁으로 팬던볼을 이용해 헤딩 연습을 진행하는 한편, 팀 동료나 벽을 이용해서 패스 능력도 강화했다.
박 선수는 U15 시기부터 목표가 명확했다. U18 대건고 진학이라는 목표 아래 헤딩 및 패스 능력 강화 등의 세부 목표까지 세워두고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시간을 현명하게 활용했다. 힘든 시기도 있었다. 당시 U15 광성중은 팀 합숙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과 시간을 자주 보내지 못했다. 주말에 외박을 받아도 본가가 강릉이라 보통은 고모 집에 가서 쉬어야 했다. “많이 외로웠던 것 같아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었지만 자주 볼 수가 없었어요. 저를 위해서 물심양면 뒷바라지를 해주시는 걸 알았기에 외로움을 운동으로 이겨내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박 선수가 얼마나 어른스러웠는지를 예측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동기부여를 얻기도 했다. 중학교 진로 상담 선생님이, 그것도 팀 동료들이 다 있는 상황에서 박 선수에게 축구에 재능이 없다며 핀잔을 주게 된다. “당시에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았어요. 진로 선생님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꼭 증명하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아요.” 진로 선생님의 말이 박 선수의 기분을 상하게 했지만 이러한 자극은 새로운 자극제로 이어졌다. 축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결국 박 선수는 끊임없는 노력 끝에 U18 대건고 진학을 확정하게 된다.
U18 대건고 진학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또다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등학교 1학년 시기 집에서 6개월간 쉬어야 했다.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 이 시기에 축구를 그만둔 학생 선수들이 아주 많다. 박 선수는 달랐다. U15 광성중 시절에 얻은 성공 경험을 통해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내게 된다. 오전에는 웨이트와 피지컬 훈련을, 오후에는 볼을 가지고 감각 훈련을 진행했다. 끝이 아니다. 저녁에는 산소마스크를 끼고 달렸다. “코로나로 팀 훈련을 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제게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부족한 피지컬 능력을 보완하는데 집중했어요.” 박 선수는 7월에 돼서야 팀에 합류하게 됐다. 이후 진행된 팀 훈련에서 좋은 몸 상태를 보여주며 코칭스태프에게 눈도장을 받게 된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다. 박 선수는 얼마 되지 않아 좋은 기회를 마주하게 된다. 팀의 주전 센터백 선수가 부상을 당하게 된 것. 박 선수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당시 2학년 센터백 선수가 있었던 데다 박 선수의 포지션이 수비형 미드필더인 점을 고려하면 코칭스태프가 박 선수를 얼마나 신뢰했는지를 알 수 있다. 박 선수는 코칭스태프의 기대에 부응했고 포지션을 센터백으로 변경하게 된다. “포지션을 센터백으로 바꾸고 나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모든 것이 익숙지 않았거든요. 연습과 훈련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했고 모르는 것은 감독님과 코치님께 물어보며 적응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아요.” 박 선수의 적극성은 팀 내 입지를 다지는 데 큰 원동력이 됐고 경기 출전 기회는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박 선수는 팀에 대한 적응을 마친 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인천유나이티드에 입단하는 것이었다. “프로에서 센터백으로 경쟁력을 발휘하려면 피지컬 능력을 더 향상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피지컬 주기화를 설정해 훈련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박 선수는 월요일에 단체 웨이트, 화요일은 상체, 수요일은 하체, 목요일은 근력(코어), 금요일은 줄넘기를 했다. 이 시기는 심리교육에서 배운 심리기술 전략들이 숙달되는 시기였기에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더 강해지는 계기가 됐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기에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팀 동료들의 장기 부상으로 인해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고3 시기에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제 성장에 있어서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겸손함을 배울 수 있었거든요.”
박 선수는 졸업 후 인천유나이티드에 입단하지 못했다. 선문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프로에 바로 가지 못해 많이 아쉬웠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선문대학교에서 기량을 쌓은 뒤 프로에 입단한 것은 신의 한수가 된 것 같아요.” 선문대학교는 수비가 끈질기고 단단한 팀으로 유명한 팀이었기에 박 선수가 기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좋은 환경이 됐다. “대학에 와서 다 같이 수비하는 방법과 안전하게 수비하는 방법을 세밀하게 배울 수 있었어요. 훈련 내용 중 단체로 하는 하체 운동 또한 큰 도움이 됐어요.” 박 선수는 대학에서도 피지컬 능력을 꾸준히 향상시켰다. 그 결과 대학무대에서 4관왕과 수비상을 수상, 위닝 멘탈리티도 자연스럽게 끌어올리게 됐다.
“대학에 와서도 인천유나이티드에 입단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어요. 기량 향상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대학교 1학년 시기엔 걱정이 많았지만 2학년 여름 시기가 되었을 땐 프로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의 경기력이 기대 수준만큼 많이 올라왔고 꾸준함을 발휘하고 있었거든요.” 실제로 박 선수는 대학교 2학년 시기에 기량이 만개했다. 추가적으로 마음과 생각도 잘 관리했다. “인천 스카우트 선생님들이 경기를 보러 오셨다고 해서 더 잘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이 부분은 통제할 수 없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기본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이렇듯 박 선수는 중요한 순간마다 결과 목표 대신 과정 목표에 집중하는 전략을 잘 활용했다.

프로 데뷔 경기에선 심리적인 준비를 어떻게 했을까? “팬 분들이 경기장에서 버스를 맞이해 주실 때 살짝 긴장이 됐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자신 있었어요. 멘탈 플랜대로 경기를 준비했고 즐겼던 것 같아요. 경기 전엔 눈을 감고 경기장에서 상대 공격수를 막아내거나 헤딩과 패스하는 이미지를 많이 그렸어요. 에너지 수준 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썼고요. 경기 상황에선 자기암시와 윈 어글리 전략을 적극 실천하며 악착같이 버텼던 것 같아요.” 스포츠 심리전문가가 봤을 때 박 선수의 심리적 수준은 K리그 정상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다양한 심리기술 전략을 인지하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선수는 현재 프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유소년 시기에 박 선수를 지도한 이들은 이러한 상황을 예상했을까? 최재영 인천유나이티드 U18 대건고 감독은 ‘좋은 선수가 될 수밖에 없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섭이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지도자의 코칭을 적극 수용할 줄 아는 선수예요. 지도자의 코칭을 적극 수용하기 때문에 전술 수행 능력도 상당히 우수해요. 또 리더십을 발휘할 줄 알고 발밑이 좋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 감독은 자신의 제자를 치켜세웠지만 동시에 냉정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절대 만족하지 말고 겸손과 노력을 더 발휘해 줬으면 좋겠어요.”

필자는 박 선수를 무서운 선수라고 생각한다. 유소년 시절부터 목표 설정을 통해 스스로 동기 수준을 높였고 집중, 노력, 인내심을 자연스럽게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목표 설정에 따른 세부 목표도 치밀하게 설정할 줄 아는 선수다. 더 무서운 것은 프로 선수가 돼서도 현재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박 선수는 마지막에 이 메시지를 유소년 선수들에게 꼭 전달해 달라고 말했다. “뛰어난 재능이 없어도 목표 설정을 통해 노력을 꾸준히 한다면 육각형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절대 노력을 멈추지 말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박 선수는 실력만큼 마음도 따뜻했다. 이번 박 선수의 목표 설정 사례가 대한민국 유소년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글=이상우 박사, 정리=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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