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또래 관계 스트레스 요인
최근 아동 92%·청소년 57% ↑
ADHD·품행장애 동반할 수도
경미해도 자해·자살 충동 특징
증상 따라 심리·약물 치료 실시”
“아이가 무슨 우울증이야.”
어린아이라고 해서 성인처럼 우울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래친구와의 관계, 학업 등으로 우울한 아이가 늘고 있다. 소아우울증은 국내에서 점점 더 흔하게 발생하는 질환이 되고 있다. 이를 간과할 경우 아이의 몸과 마음 건강에 장기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단순한 감정기복으로 넘기면 안 되는 소아우울증, 원인부터 치료방법에 대해 김재원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교수(사진)로부터 들었다.
-소아우울증이란 무엇인가.
“우울증은 우울감과 의욕 저하를 주요 증상으로 가지며 다양한 인지?정신?신체적 증상을 동반하고, 일상기능을 떨어뜨리는 정신과적 질환이다. 이런 질환이 아동?청소년에게 발생하면 소아우울증이라고 한다. 원인은 60%가 학업 스트레스, 가족?또래관계 등 환경적 요인이다. 나머지 40%는 유전적 요인이다.”
-우울증을 앓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국내에서 소아우울증 발생은 점차 증가하는 중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아동(6~11세)의 우울증 진료 건수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무려 92%나 증가했다. 청소년(12~17세)은 5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증가세의 원인은 한국의 소아청소년이 어릴 때부터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소아우울증의 위험요인은.
“우선 또래관계의 어려움을 들 수 있겠다. 친구와의 갈등이나 학교 폭력은 소아우울증의 중요한 위험요인이다. 다른 또래관계에 문제가 있더라도 어릴 때부터 꾸준히 교류하는 좋은 친구 한두 명을 만들어 계속 유지한다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의외로 ‘비만’도 한 요인이다. 소아 비만은 최근 발생률이 증가하는 또 다른 질환이다. 아직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연구를 통해 소아 비만과 소아우울증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두 질환 모두 적극적인 예방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소아우울증의 증상은.
“소아우울증은 성인우울증과 비슷하게 식욕 저하, 불면증, 집중력 저하 등을 동반한다. 특히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고 호소하거나, 이전에 즐기던 활동에 대한 흥미나 의욕이 사라지는 아이들이 많다. 우울한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우울감 대신 짜증이나 예민함이 나타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소아우울증은 성인과 달리 주의력결핍행동장애(ADHD), 품행장애, 불안장애 등을 동반할 수 있어서 체계적인 진단이 중요하다. ”
-사춘기와 헷갈린다는 보호자도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그렇다. 사춘기 때 흔히 발생하는 감정기복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우울증에 의한 감정 변화는 지속적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며, 치료가 필요한 증상이다. 우울감이나 과민함이 2주 이상 지속되며, 우울증 경고 증상 중 4가지 이상이 나타나면 우울증을 우려해볼 수 있다. 사춘기와 우울증을 구분하려면 아이의 변화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 가령 초등학생 때까지 공부를 잘 하던 아이가 중학생 때부터 갑자기 학업에 부진하다면, 부모가 가장 먼저 걱정하는 문제는 ADHD다. 하지만 실제로는 소아우울증에 동반된 집중력 저하일 가능성이 높다.”
-소아우울증 진단은 어떻게 이뤄지나.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는 ‘DSM-5(미국정신의학회 평가기준)’과 ‘CDRS-R(소아청소년 우울증 중증도 평가도구)’를 사용해 소아우울증을 체계적으로 진단한다. 이밖에 우울증 이외의 정신과적 질환을 진단하기 위해 ‘K-SADS’ 라는 면접도구가 사용된다.”
-진단 후 치료 방법은.
“CDRS-R 평가 결과 40점 미만의 경증이면 심리 치료를 우선 진행한다. 40점 이상(중등도 이상)이면 항우울제 치료를 실시한다. 항우울제의 경우 치료 시작 8~12주째에 반응을 평가하고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약물 복용을 부담스러워 하는 측면도 있지 않나.
“항우울제를 장기 복용할 경우 부작용으로 자살 생각이 증가하는 것을 많이 우려한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장기 복용으로 인한 자살 생각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하지 않는다. 항우울제 치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치료 시 약 처방만 이뤄지나.
“그렇지 않다. 소아청소년은 감정을 표현하거나 조절하는 능력이 미숙한 경우가 많아서 ‘놀이치료’나 ‘정서 조절 훈련’을 병행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치료에 동참하는 보호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므로 ‘가족 치료’를 함께 실시하기도 한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이나 취미를 혼자서 계획?실천하도록 하는 ‘행동활성화 치료’를 실시할 수도 있다.”
-소아우울증 치료 시 보호자가 인지해야 할 요소는.
“우선 ‘자살 예방’이다. 심하지 않은 경미한 우울증으로도 자해나 자살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두 번째는 부모의 도움과 지지다. 특히 보호자는 아이를 잘 이해하도록 우울증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긴 치료 과정 속에서 지치지 않고 아이를 지지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소아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소아우울증의 가장 중요한 예방 수칙은 마음과 몸이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는 아이들이 여가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렵다. 부모가 나서서 아이의 숨 돌릴 틈을 직접 마련해주는 게 필요하다.
정기적인 선별 검사도 조기 발견과 예방에 유리하다. 미국에서는 만 12~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 1회 우울증 선별 검사를 권장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초등학교 1?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정서행동 특성검사가 시행된다. 정기 검사로서는 부족한 실정이다. 가정에서도 실시할 수 있는 우울 검사(PHQ-9)와 같은 평가 도구 등을 통해 매년 정기 검사를 해볼 것을 추천한다.”
-환자와 가족에게 제언해달라.
“소아우울증을 겪는 아이와 부모는 이 상황이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며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병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원인을 찾으려 하기 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자. 자책하지 말고 아이의 회복과 건강한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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