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이른바 K-콘텐츠들은 각 분야별로 글로벌화가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로제가 브루노 마스와 협업한 ‘아파트’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을 필두로 한 K-팝을 비롯해 K-푸드, K-패션 등 어느새 ‘K’는 한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그리고 이제는 웹툰까지 K를 수식어로 내세우며 전 세계 만화팬들을 흡수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의 경우, 미국 나스닥 시장에도 상장했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K-웹툰의 미래를 이끌 작가 중 한명인 ‘HO9(호구·본명 이호·34)’를 만났다.
“호구(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처럼 늘 손해보는 인생을 살았지만,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겐 여전히 호구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주고 싶어요.”
웹툰 작가 HO9는 근면 성실함으로 자수성가한 만화가다. 부모님의 사업 부도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노력으로 꿈을 이뤘고, 자신이 작업할 스튜디오와 함께 카페도 열었다. 지난 24일 완결한 네이버웹툰 ‘별난식당’ 배경이 철거를 앞둔 미개발지역인 점도 작가의 어린 시절이 영향을 줬다. 전작인 ‘요리GO(2018년)’에서 요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일한 주인공 한별이 미개발지역 ‘부자동’에 ‘별난식당’을 열고 운영하는 이야기다.
25일 실제로 만난 HO9 작가는 한별이 그 자체였다. 겸손함은 물론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닮았다. 한별이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손님들에게 따뜻한 요리를 내어주며 위로한다. 작가는 한별이의 온기 담긴 음식처럼 자신이 그리는 만화가 삶에 지친 이들에게 웃음과 희망이 되길 바란다.
◆로망을 만화로 남기다
HO9 작가는 창의적인 작업이 좋아 현재의 직업을 택했다. 요리와 미술 전공을 고민하던 학창시절, 한국조리과학고에 입학하면서 대학 진로도 비슷하게 외식영양학을 전공했으나 만화가의 꿈을 잊지 못한 그는 졸업 후 진로를 바꿨다.
HO9 작가는 “요리사가 매번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고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어낼 것 같지만 현실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요리를 하려면 레스토랑에서 10년 정도 일한 뒤 오너 셰프가 돼야 할 수 있다. 그걸 버틸 정도로 요리를 좋아하는 게 아니더라”라며 “내가 하고 싶은 창의적인 일, 머릿속으로 그린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일은 만화뿐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내가 지금까지 배운 요리를 접목하면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웹툰을 그리게 됐다”고 웹툰 작가가 된 배경을 밝혔다.
시리즈로 이어진 요리GO와 별난식당은 작가가 요리사로서 생각했던 로망을 한별이를 통해 실현한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요리를 배울 당시에는 나만의 작은 소소한 가게를 갖는 게 꿈이었다. 그날의 재료에 따라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고, 손님은 술 한잔 기울이며 인생 이야기를 하는 그런 따뜻한 식당을 차리고 싶었다”며 “현실에선 못 이룬 걸 만화를 통해 펼쳤다. 웹툰에 나오는 등장인물, 요리에 대한 다양한 지식, 주변 인물과 손님들의 일부 사연도 실제 친구들과 지인, 그리고 직접 겪었던 에피소드가 반영됐다”고 말했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 오히려 배움이 돼”
별난식당의 주 배경이자 철거예정 지역으로 설정된 부자동은 작가의 어린 시절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투영한다. HO9 작가는 “어렸을 때 부모님의 사업이 기울면서 낙후된 환경에서 살았었다. 기초수급자였는데, ‘왜 나는 저 애랑 다를까’,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었다. 당시 술주정뱅이나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런 환경을 보고 자란 것이 오히려 배움이 된 것 같기도 하다”며 “정치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외치지만 정작 그런 동네엔 찾아오지 않고 탁상 정책만 펼치더라. 과거의 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웃음과 희망을 주고 싶다”고 그림을 그리는 의미를 짚었다.
그러면서 “만화를 보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별난식당을 찾는데, 한별이가 만들어주는 따뜻한 요리를 맛보며 위로받는다. 그런 온기를 전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바랐다.
현재 합정에서 카페도 운영 중이다. 오전에는 카페에 나와 자신의 레피시로 샌드위치 등 디저트를 만들고, 이후에는 같은 건물 3층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10시간 동안 웹툰 작업을 한다. 하루를 ‘일’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본인의 삶에 만족한다. 그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는 게 참 고생 많은 일이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만족한다. 직업 만족도 최상”이라고 웃었다.
◆앞으로 꾸고 싶은 또다른 꿈
별난식당을 마무리한 HO9 작가는 곧 차기작을 선보인다. 한별의 세 번째 이야기가 될 외전은 ‘전국 맛집 투어’를 콘셉트로 한다. 이후에는 히어로물, 빵 제조 콘셉트 등 다양하게 열어두고 생각할 계획이다. 2차 콘텐츠 등 다양한 형태로도 작업이 이어지길 희망하고 있다.
그는 “웹툰의 활발한 해외 수출 덕분에 무궁무진한 기회의 문이 열렸다. 한국에서 반응이 크지 않아도 유럽이나 다른 해외에서 반응을 기대할 수도 있고. 다른 협업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tvN ‘정년이’, 넷플릭스 ‘스위트홈’ 등 웹툰, 웹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많아지고 있다. 영상화, 게임화 같은 2차 창작물로 확장하는 건 모든 작가들의 꿈”이라며 “독자분들이 어떤 형태로 저희를 찾아줄지 모른다. 어떤 콘텐츠로든 찾아뵈면 좋겠다”고 새로운 꿈을 밝혔다.
신정원 기자 garden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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