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도시 4’의 ‘1000만 영화’ 입성이 코앞이다. 개봉 18일차인 11일 토요일 현재까지 944만9696명을 동원한 상태. 여전히 일간흥행 1위를 지키고 있어 다음 주중 1000만 돌파가 확실시된다. 그럼 ‘범죄도시’ 프랜차이즈는 2, 3, 4편이 모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트리플 1000만’ 기록을 세우게 된다. 지금껏 한국영화시장선 총 32편의 ‘1000만 영화’가 탄생했지만, 그중 ‘트리플 1000만’ 프랜차이즈는 ‘어벤져스’ 단 하나였다.
그런데 ‘어벤져스’와 ‘범죄도시’는 또 경우가 크게 다르다. 일단 ‘어벤져스’는 각자 자기 프랜차이즈를 갖고 있는 캐릭터들이 한 데 모이는 이벤트적 성격이 강했던 반면, ‘범죄도시’는 사실상 마동석 원톱 프랜차이즈다. 캐릭터 집중도와 소모도 차원에서 비교가 어렵다. 또 있다. ‘어벤져스’와 달리 ‘범죄도시’ 2~4편은 현재 ‘매년 1편씩’ 나오고 있단 점이다. 그런 식이면 지금쯤 피로도가 급증했어야 정상인데 그래도 여전히 1000만을 넘긴다.
이처럼 모든 면에서 기존 상식을 깨는, 전례 없는 흥행 행진이라면 이제 ‘범죄도시’ 자체의 특별한 매력요소를 반복해 짚어봐야 할 시점은 지났다고 볼 만하다. 그보단 전례 없는 종류의 ‘트리플 1000만’을 가능케 한 배경, 즉 현시점 한국영화시장을 둘러싼 대중심리와 트렌드 변화 부분을 면밀히 점검해봐야 할 때다. 가장 먼저, 세계 영화시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IP 천하’ 상황부터 들어볼 필요가 있다.
전반적으로 OTT 등장뿐 아니라 유튜브, 틱톡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는 영상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영화 극장관람은 점차 버겁고 품이 많이 들어가는 여가로 여겨지는 추세다. 거기다 세계적 물가 상승으로 영화 입장료도 한껏 올라간 상태. 여러모로 부담이 크다. 이런 조건이면 낯선 콘텐츠라도 일단 도전해보려는 모험적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소위 ‘보장된 재미’를 선호, 무엇을 보게 될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콘텐츠를 택하게 된단 흐름이다. 그러다 보니 일단 기존에 성립됐던 프랜차이즈 속편들이 전에 없이 선호되고, 그밖에 다양한 미디어믹스 IP 콘텐츠도 같은 맥락에서 유리해진다. ‘IP 천하’ 배경이다.
예컨대 북미만 해도 그렇다. 올해 1월 1일부터 현재까지 연간 통산 10위권 내 1~4위까지 4편이 프랜차이즈 속편(‘듄: 파트 2’ ‘고질라X콩: 뉴 엠파이어’ ‘쿵푸팬더 4’ ‘고스트버스터즈: 오싹한 뉴욕’)이고 2편이 기존 히트작 리메이크(‘웡카’ ‘퀸카로 살아남는 법: 더 뮤지컬’)다. 그나마 한국은 화력 좋은 자국영화 프랜차이즈화가 흔치 않고 이렇다 할 IP 영화들이 드문 환경이어서 ‘범죄도시 4’ 사례가 눈에 띌 뿐이다. 궁극적으론 세계적 흐름의 일부다.
한편, 이 같은 흐름에서 밴드웨건 현상, 즉 특정 콘텐츠 쏠림이 극심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올해만 해도 벌써 ‘범죄도시 4’와 ‘파묘’까지 ‘1000만 영화’가 벌써 2편 탄생하는 상황이지만, 그 바로 다음은 ‘웡카’로 353만 관객에 머문다. 400~900만까진 한 편도 없다. 나아가 ‘웡카’ 아래론 11일 현재까지 모조리 200만 아래다. ‘중박’과 ‘초대박’ 사이 산업의 실질적 허리가 돼주는 ‘대박’ 흥행작은 한 편도 없단 얘기다.
이 역시도 영화 극장관람의 심리적/현실적 허들이 높아진 탓이다. 모험적 소비심리가 위축되니 자연스럽게 ‘남들도 다 보는 영화’ 쪽으로 옮겨간다. 각자 개성과 취향을 보상받으려는 욕구보단 트렌드를 따라잡고자 하는 심리만 부각된단 뜻이다. ‘범죄도시 4’나 ‘파묘’처럼 한 번 될성부른 영화로 초기 선택이 집중돼 트렌드가 형성되고 나면 이후론 1000만까지 일사천리, 반면 초기에 ‘대세’를 잡지 못하면 중박조차 어려워지는 흐름이 나온다.
끝으로, ‘범죄도시 4’에 국한해, ‘매년 1편씩’ 나오는 과도한 몰아치기형 프랜차이즈가 흥행 화력을 잃지 않는 비결도 짚어볼 만하다. 사실 명확한 답은 아직 나오기 힘들다. 단순하게는 ‘범죄도시’를 대체할 만한 ‘안심’할 수 있는 또 다른 한국영화 프랜차이즈가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탓일 수 있다. 또 어쩌면 OTT 드라마 시리즈의 대중적 유행과 함께 매년 새 시즌이 등장하는 미국드라마 구조에 익숙해져 ‘올해의 범죄도시 새 시즌’ 정도로 가볍게 영화 프랜차이즈를 이해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면 그보다 더 큰 흐름일 수 있다. 수년 전 세계 각국 영화 포스터들이 일본서 개봉했다하면 마치 종이신문에 끼워지는 상품광고 ‘찌라시’처럼 변모하는 모습이 국내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일본선 영화와 관련된 수많은 정보를 포스터 속에 모조리 채워 넣어야만 대중이 그제야 뭘 보게 될지 속속들이 파악해 안심하고 극장을 찾게 된단 것이다.
일본은 영화 극장관람을 많이 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그렇다. 지난해만 해도 일본의 연간 총 영화 관람객 수는 1억5554만 명 수준으로 1인당 1.24회 정도다. 같은 시기 한국은 1억2514만 명으로 1인당 2.42회다. 대략 한국의 절반 정도인 셈이다. 한국에 비해 여가가 다양한 취미거리로 잘게 분산돼있는 데다, 그중에서도 영상 부문은 홈엔터테인먼트 중심이어서 극장관람을 다소 부담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라 그렇다. 그러니 어떻게든 잠재소비자들에 ‘안전’함과 ‘예측 가능’함을 안겨주려 이미지보단 정보 중심 포스터 문화로 옮아갔다.
그런데 이젠 한국도 큰 맥락에서 일본 같은 분위기가 돼가고 있다. 이제 극장관람은 다소 버겁고 번거로운 여가다. 그럼 영화를 둘러싼 다른 양상들도 일본을 닮아가게 된다. 일본은 ‘본래’ 프랜차이즈와 IP 미디어믹스 천국이었다. 지난해 일본영화 연간흥행 10위 내 그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건 제작사 자체가 브랜드화 돼 있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뿐이었다. 또 흥행 쏠림 현상도 ‘본래’ 대단하다. 올해만 해도 IP 프랜차이즈 애니메이션 2편이 100억 엔 이상 흥행을 기록했지만 3위부턴 50억 엔 이하로 떨어져 있다.
심지어 ‘매년 1편씩’ 나오는 프랜차이즈 상황도 마찬가지다. ‘명탐정 코난’ ‘도라에몽’ 같은 애니메이션 프랜차이즈는 물론, 과거 무려 48편까지 등장했던 ‘남자는 괴로워’ 시절부터 최근의 ‘컨피던스맨JP’ ‘킹덤’ 등까지 실사영화 프랜차이즈 역시 매년 한 편씩 나와도 계속 흥행에 성공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영화시장 미래를 가늠해보려면 지난 수십 년째 사실상 같은 모습인 일본 현황을 참고해볼 필요도 있겠다. 극장관람이 더는 가볍고 일상적인 여가가 아니게 된 환경의 사례 말이다. 보다 진지하고 섬세한 관찰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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