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가 개봉됐다. 많이들 알다시피 이동건 작가의 네이버 웹툰 원작이며, 2021~22년 걸쳐 OTT 티빙을 통해 2시즌 실사 드라마로도 등장한 바 있다. 그리고 6일까지 4일간 누적관객 수는 4만767명. 토요일 일간차트 7위까지 내려가 이렇다 할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어찌됐든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 향방은 초미의 관심거리다. 미디어믹스가 과격할 정도로 진행되는 일본이라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한국서, 비록 실화와 애니메이션으로 형식은 다를지언정, 불과 2~3년 만에 같은 IP로 영상 콘텐트가 한 번 더 등장한단 점 말이다.
그런데 살펴보면 이 같은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11월 ENA에서 실사 드라마화된 혜윰 작가 웹툰 ‘낮에 뜨는 달’이다. 현재 바이포엠 툰스튜디오 및 마나가네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 중이다. 마찬가지로 2020년 tvN 실사 드라마로 소화됐던 야옹이 작가의 ‘여신강림’도 TV판 애니메이션화가 진행 중이며 지난해 11월 애니메이션 버전 포스터가 공개되기도 했다. 한편 2022~23년 걸쳐 티빙에서 실사 드라마화된 윤인완-양경일 작가의 ‘아일랜드’ 역시 3D 애니메이션 제작 소식이 들린 바 있다.
여기서 상황을 동시다발적 미디어믹스 유행 정도로 보는 건 다소 단편적 시각이다. 크게 보면 웹툰이 오로지 실사 드라마화를 향해 미디어믹스를 꾀하던 시절과 달리, 이제 애니메이션화로 IP를 확장시키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단 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 제작 중인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만 해도 ‘미래의 골동품 가게’ ‘나노리스트’ ‘하우스키퍼’ ‘테러맨’ 등등 줄줄이 이어지고, 이미 실사 드라마화된 뒤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경우도 ‘청춘블라썸’ 등이 더 있다. 이밖에도 많다.
사실 이 부분이 한국 웹툰에 있어 사뭇 중요한 기점이 된다. 애초 한국 웹툰은 애니메이션화보다 실사화 쪽이 더 ‘자연스럽다’는 평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 내러티브 콘텐츠시장은 근본적으로 리얼리즘에 기반하고 있어서다. 판타지 장르로 설정되더라도 인물들은 리얼리즘에 근거해 사고하고 행동하면서 한국 대중의 ‘공감’을 사야한다. 그렇게 보편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 ‘평범성’ 안에서 인물들이 구성되게 마련이다.
문제는, 애초 만화=>애니메이션으로 진행되는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캐릭터성’ 승부란 점이다. 인물 디자인부터 시작해 각종 과잉된 설정들, 예컨대 독특한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 특징적인 버릇, 흔치 않은 취미나 취향 등으로 오히려 좀처럼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고 평범하지 않은 인물상을 구현하는 ‘캐릭터’ 성립 여부가 만화=>애니메이션 진행 왕도다. 일본선 얼마 전 작고한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와 ‘란마1/2’ ‘시끌별 녀석들’ 작가 타카하시 루미코 등이 1980년대 이 같은 흐름을 보편화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다. 이전까지 유행이었던 만화=극화 흐름을 깨고 성립시킨 패턴이다.
이 같은 ‘캐릭터성’ 중심 만화가 일본서 1980년대 이래 대세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간명하다. 그쪽이 훨씬 큰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일단 캐릭터성이 도드라지면 단순히 만화와 파생 애니메이션이란 콘텐츠 판매뿐 아니라 의류부터 학용품, 각종 액세서리, 완구 등에 이르기까지 팬시상품화 극점에 도달할 수 있다. 게임 등 다른 미디어로의 이동도 훨씬 손쉽게 이뤄진다. 그렇게 만화 IP는 하나의 ‘산업’이 된다. 리얼리즘 기반 웹툰은 계속 영상 콘텐츠로의 확장만 꾀할 수 있을 뿐 ‘캐릭터산업’ 일부가 되진 못한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한국서 일단 웹툰으로 성공을 거두려면 어찌됐든 내수 소비자들 취향에 맞도록 리얼리즘 기반으로 진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인물 디자인은 캐릭터상품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인물들 성격과 행동 부분에선 소위 ‘그럴싸한’ 전개, ‘공감’을 살만한 인물상을 구현해야 한다. 인물들이 몇몇 기행을 벌이더라도 그 배경은 어디까지나 엄혹한 현실논리의 장이어야 반응이 오게 마련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웹툰 업계엔 영화나 TV드라마계에서 활동하거나 지망하던 이들이 스토리작가로서 상당수 개입하고 있단 후문이다. 그럼 결국 미디어믹스도 TV드라마나 영화가 더 자연스러워진다. 일본이든 미국이든 ‘캐릭터가 전부’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캐릭터성에 치중하는 애니메이션계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혹 애니메이션화 돼봐야 실사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미국이나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누리는 거대한 캐릭터산업으로의 진입은 꾀하질 못한다. 국내 잘 알려진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에서 꼽자면, 대략 ‘바다가 들린다’ 정도 위치가 된다. 좋은 콘텐트로 기억되지만, 산업적 중심이 되기엔 무리인 콘셉트다.
그런 점에서 지금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 등 웹툰 애니메이션화 열풍은 단연코 한국영상산업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이 맞다. 그 과정에서 어떤 시행착오를 겪고 어떤 전향적 판단들을 내리는지가 애니메이션 ‘불모지’ 소리까지 듣는 한국 애니메이션계 향방을 좌우할 전망이다. 이미 애니메이션판에선 웹툰의 인물 디자인 대신 캐릭터성 강한 애니메이션용 디자인을 새로 고안해 교체하는 작업도 공개된 몇몇 포스터나 콘셉트 아트 등을 통해 확인되는 실정이다. 어쩌면 ‘그 이상’이 필요할는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웹툰화까지 진행됐던 국내 몇몇 웹소설들은 이 같은 ‘캐릭터성’ 성립에 노하우가 풍부한 일본 애니메이션업계에서 판권을 가져가 ‘아니메’로 재탄생하는 와중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과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했던 사정’ ‘외과의사 엘리제’ 등이 그런 경우다. 또 웹툰은 아니지만 미래엔 아이세움의 학습만화 ‘살아남기 시리즈’도 일본서 2020년과 2021년 두 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소화되더니 지난 2월엔 TV판 애니메이션 제작도 발표된 상황. 이밖에 중국서 애니메이션 제작에 들어간 한국 웹툰들도 많다.
확실히 국내 웹툰업계와 애니메이션업계 양측에 모두 전향적 발상과 기획들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내수 취향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향한 의욕과 실험 부분도 마찬가지다. 웹툰의 전 세계적 확장과 더불어 동시 진행돼야할 부분들이다. 한국은 이미 수많은 IP들을 갖고 있다. 이제 그 IP를 소위 ‘IP답게’ 기능할 수 있도록 최적화시킬 방안들을 모색해봐야 할 때다.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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