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럭무럭 성장할 일만 남았다.
프로야구 KIA의 2024시즌 개막 엔트리에서는 아쉽게도 고졸 루키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탄탄히 구축된 기존 마운드의 높이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선발, 불펜을 가리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자원들이 두루 포진했다. 딱 한 명, 물음표가 붙어있던 이름은 있었다. 2년 차 시즌을 맞은 좌완 곽도규다. 2023 KBO 신인드래프트 5라운드 전체 42순위 출신으로, 지난해 1군 14경기 평균자책점 8.23(11⅔이닝 11자책점)에 불과했다. 아직은 경험치가 더 필요한 유망주가 그의 타이틀이었다.
◆단단한 2004년생
당당하게 자리를 꿰찼다. 마무리캠프부터 시범경기에 이르기까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결과로 증명한다. 홈 개막전 7-5, 2점 차 리드에서 마운드에 올라 키움 송성문을 잡으며 프로 첫 홀드를 챙겼다. 27일 롯데전은 8회 등판해 온전히 1이닝을 책임져 무실점 피칭을 펼쳤다.
산뜻한 출발이다. 곽도규는 “작년에 비해 확실히 나아졌다고 스스로도 느꼈다. 그 모습 그대로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웃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인지 묻자 “제 몸을 편하게 쓰는, 컨트롤되는 부분이 많이 생겨났다. 드라이브라인을 다녀온 효과도 있고, 형들과 코치님들께 많은 것을 배운 덕”이라고 전했다.
미소 뒤에는 작은 불안감도 숨어있다. 그는 고졸루키였던 지난해도 개막 엔트리에 들었다. 하지만 당연히 입지는 좁았다. 열흘이 넘도록 불펜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이후 간헐적인 등판이 있었지만, 머지않아 2군으로 내려가야 했다.
곽도규는 그때를 떠올리며 “사실 지금도 거의 매일 2군에 내려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는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마운드에서는 ‘싸움닭’ 같이 달려들지만, 사실 누구보다 여리고 생각이 많은 타입이기 때문이다. 그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작은 부분만 틀어져도 예민해지고 생각이 많아지는 스타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하루아침에 성격이 변할 순 없었다. 하지만 불안함을 다루는 요령만큼은 1년 만에 자못 성숙했다. 그는 “지난해는 그 감정들에 얽매였다면, 올해는 다르다. 불안함을 인정하고 내 할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다”는 2004년생 답지 않은 묵직한 답변을 내놨다.
◆더 단단했던 1980년생
어떤 계기였을까. 답은 바로 정재훈 투수코치와의 만남에 있었다. 두 바퀴를 돌아 만나는 띠동갑 사제지간이지만, 마음의 거리는 누구보다도 가깝다.
곽도규는 “코치님께서 야구에 목숨을 걸고 노력해야 하는 성격 유형이 있는 반면, 야구가 인생을 옭아매도록 자신을 떠미는 유형이 있다고 하셨다. 제가 후자였다”며 “그러시면서 ‘야구 속에 네 인생을 넣으려 하지 말아라. 네 인생 안에 야구가 있는 거다. 딱 한 발만 야구에 담고 있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는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자신이 뿌린 공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몰두하며 힘들어하는 제자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정 코치의 진심 어린 조언이었던 것.
곽도규는 “덕분에 마음을 비우고 있다. 완벽을 바라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려 한다. 올해부터는 저를 믿고 성장을 즐기려는 마인드가 생기는 것 같다. 코치님의 가르침이 다 제 모토가 됐다”고 밝게 웃었다.
정 코치에게도 살며시 곽도규에 대한 질문을 건넸다. 정 코치는 화사한 웃음과 함께 “도규가 투구폼이나 공이 거칠지만, 정말 조심성이 많고 차분한 모범생 같은 친구다. 그렇다 보니 과감성이 떨어질 때가 눈에 보였다. 그걸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자신감이 필요했는데, 준비 과정을 통해서 본인이 스스로 잘 찾은 것일 뿐”이라며 제자를 치켜세우기 바빴다.
하지만 정 코치의 공이 정말 없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곽도규의 개막전 등판에는 정 코치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 이범호 감독이 “투수코치님께서 도규 구위가 좋다고 해서 추천을 주시길래 결정을 내렸던 거다. 그 경기에서 가장 중요했던 포인트”라며 비하인드를 공개한 바 있다.
보기만 해도 훈훈해지는 사제지간이다. 정 코치는 “당시가 어려운 상황인 건 알았지만 후회 없이 던져보라고 말해줬다. 그걸 또 잘 해내며 안정감을 찾더라. 앞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투수가 될 것”이라며 마지막까지 인생 후배를 향한 칭찬을 잊지 않았다.
광주=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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