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가는 나그네의 바통…정성으로 세우는 조직
국회도서관 DB는 AI에게 최고의 식재료
국회도서관이 새로운 진화를 준비하고 있다. 황정근 국회도서관장은 방대한 의정 데이터 위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해 국회와 국민을 잇는 지능형 지식 허브로의 전환을 목표로 진화시키려 한다.
그에게 국회도서관의 미래는 단순한 디지털 혁신이 아니라 국가의 지적 자산을 ‘지능’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그의 구상은 단순한 기술 혁신에 그치지 않는다. 황 관장은 “AI의 성공은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며 공직자의 자세로서 ‘성의정심(誠意正心)’을 거듭 강조했다.
AI와 사람이 공존하는 새로운 시대, 공직의 의미를 다시 묻는 자리에서 황 관장은 기술보다 ‘사람의 성의’를 이야기했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는 3일 황 관장을 만나 AI도서관으로의 전환과 그가 말하는 성의의 리더십, 그리고 국회도서관이 준비하는 내일에 대해 들어봤다.
◆전자도서관에서 AI도서관으로의 진화 ‘내일 프로젝트’ 본격 시동
황 관장은 인터뷰 내내 ‘AI도서관’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가 구상하는 국회도서관의 미래는 단순한 전자도서관이 아니라 AI가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식 플랫폼이다.
국회도서관은 1997년부터 그동안 1300억원의 예산을 들여 4억4000만 페이지에 달하는 데이터베이스(DB)를 전산화해 구축했다.
학술논문과 정책자료, 입법자료 등 고품질 자료를 전산화한 DB 규모는 국내 최대 수준이다.
황 관장은 “이제 자료를 보는 시대를 넘어 AI가 자료를 읽고 해석하는 시대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 구상은 현재 추진 중인 ‘국회AI도서관’, 일명 ‘내일(NAIL:National Assembly AI Library) 프로젝트’로 구체화되고 있다. 취임 후 가장 힘을 실은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NAIL은 국회도서관의 ‘내일’(Future)”이자 자신이 책임지는 ‘내 일’(My work)이라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이제 정보를 지능으로 바꿀 때라는 황 관장은 “단순히 자료를 검색하는 단계에서 AI가 분석하고 요약하며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제안하는 단계로 발전시킬 것”이라며 “국회도서관의 모든 AI 서비스를 연결해 하나의 지능형 플랫폼으로 통합하겠다”고 강조했다.
국회AI도서관은 단순한 행정 자동화 수준을 넘어 국회의원·보좌진·국민이 함께 쓰는 AI입법 플랫폼으로 설계되고 있다. 그 핵심 경쟁력은 앞서 말한 국회도서관이 70년 이상 축적해 온 방대한 데이터다.
황 관장은 “다른 기관에는 없는, 국회도서관만의 강점이 있다”며 “석·박사 논문과 학술지 논문, 정책 보고서 등 양질의 DB는 AI한테 공부시키는 좋은 식재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저작권 문제로 인해 전체 DB를 국민에게 완전 개방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는 “국회의 지식에 국민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법 개정도 함께 고민 중”이라며 “AI도서관은 궁극적으로 국민 모두에게 열린 지식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AI시대의 공직 철학 ‘성의정심’
AI도서관의 구상은 단순한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 바탕에는 황 관장의 공직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황 관장은 사법연수원 15기로 입소해 판사로 15년, 변호사로 20년을 일했다. 정치 관련 사건을 주로 맡으며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했고, 각 정당의 자문 및 소송을 많이 맡은 인연이 국회도서관으로 이어졌다. 법을 적용하던 자리에서 이제 법을 만드는 국회를 지원하는 자리로 옮겨왔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공직자를 ‘스쳐가는 나그네’라고 표현했다. 황 관장은 “공무원은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맡은 바를 정성껏 하고 그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는 계주 선수”라며 자신은 24번째 국회도서관장으로 다음 주자한테 바통을 잘 넘겨주는 게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공직자의 기본자세는 ‘성의(誠意)’다.
황 관장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앞의 말에는 ‘격물치지(格物致知), 성의정심(誠意正心)’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황 관장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오렌지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도산 선생이 젊은 시절 미국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는 한인 노동자를 소개해주는 일을 했고 그때 ‘오렌지 하나를 따도 정성껏 따라, 그래야 주인이 너를 내치지 않는다. 그것이 곧 독립의 길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설명했다.
안창호 선생의 말은 단순한 근면 교훈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 농장주들이 한국인 노동자는 성실하다는 신뢰를 가지면서 조선인 이민자들의 처우가 개선되고 나아가 한국인의 명예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오렌지를 따는 정성이 곧 독립운동이었고, 자기의 일을 성의껏 하면 그게 곧 나라를 일으키는 길이라는 것이다.
황 관장은 “정성껏 일해야 신뢰를 얻고, 그 신뢰가 쌓이면 조직이 성장하고 나라도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관장이 말하는 오렌지 철학은 시대를 넘어 통한다.
그가 말하는 성의정심은 ‘정성으로 일하고 바른 마음으로 책임을 다하는 태도’와 닿아 있다. AI가 발전해도 결국 어떻게 쓰느냐는 사람의 성의에 달려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공직자의 본분이자, AI시대를 살아가는 이가 새겨야 할 인간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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