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 배우로 시작해 데뷔 20년을 맞았다. 1년에 한 작품이라도 채우자는 마음가짐, 작품이 빛을 보기까지 약 2년 간의 기다림조차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꾸준함이 빛나는 배우 김보라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4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백설공주)은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살인 전과자가 된 청년이 10년 후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담은 역추적 범죄 스릴러 드라마다.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종영을 앞두고 비즈앤스포츠월드와 만난 김보라는 “오래 촬영하고 오래 기다린 만큼 기대 이상으로 좋아해 주시고 흥미 가져주셔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벌써 2년을 훌쩍 넘긴 과거의 영상물이다. 김보라는 “27살, 젖살이 빠지기 전의 모습이 반갑더라. ‘저렇게 연기했었구나’ 당시가 떠오르기도 하고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서 새로움을 많이 느꼈다”고 돌아봤다.
백설공주는 영화 ‘화차(2012)’ 이후 12년 만에 복귀한 변영주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다. 2021년 촬영을 시작해 2022년 여름 촬영을 끝냈지만, 편성의 어려움을 겪어 2024년이 되어서야 시청자에게 선보인 작품이기도 하다.
변 감독에 관해서는 “현장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주셨다. 시원시원하게, 뭐든 명확하게 이야기해주셔서 헷갈릴 일도 없었다”고 했다. 감독과 함께 하설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두 사람이 생각한 하설이 비슷했다고. 김보라는 “하설은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 중립을 유지하는 태도를 가진다. 어떤 말에 휩쓸리지 않고 뚝심을 지켜나가는 성격을 가진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하설은 의대 휴학생의 설정이다. 스쿠터로 전국을 여행하던 중, 무천가든에 머물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수오(이가섭)와 대화하는 유일한 존재이자 정우(변요한)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말 그대로 ‘외지인’이었다. 똘똘 뭉친 마을 주민들과 달리 세계관 자체가 달랐다. 모든 게 다 궁금하고 의심스럽지만 중립을 지킨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 탓에 의대를 휴학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봤다. 원작 속 하설 캐릭터는 다은이와 닮아 수오에게 착각을 주는 인물이다. 원작에서는 건우와의 로맨스 기류가 있었지만, 극 중에서 전개되지는 않았다. 김보라는 “범죄수사물을 좋아해서 더 흥미로웠다. 현재에만 집중하는 인물이다 보니 더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보라가 밝힌 하설과 싱크로율은 60%다. “나는 하설이처럼 대범하지 못하지만, 사교성은 비슷한 것 같다”고 비교하며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을 많이 하는 것도 비슷하다. ‘카더라’를 들으면 바로 믿는 편은 아니다. 항상 ‘왜?’가 붙는 편”이라고 했다. 함께 방송을 보던 남편이 ‘진정한 살인마는 하설’이라고 말했다면서 “극 중 하설이는 물음표 살인마다. 수오가 발작을 일으키고 결국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하설 때문”이라며 웃어 보였다.
끝으로 김보라는 “배우 김보라와 극 중 하설을 구분 없이 봐주셔서 감사했다. 하설이 얄미워 보이지 않게 다가갔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보며 “기다리는 과정에서 배우들과 끈끈해졌고, 나오고 나서는 생각 이상으로 좋은 평이 많아서 여러모로 ‘럭키비키’였다”는 소감을 남겼다.
극을 이끈 11년 전 살인 사건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부성애’로 포장하기엔 지나치게 잔인하고 파렴치한 과거였다. 자식을 위해, 아니 내 자식만을 위해 남의 자식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한 청춘의 인생을 망쳤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아버지 4인방의 연기력은 비뚤어진 부성애를 한 번 더 짚어보게 했다. 알코올 중독에 가정폭력을 일삼는 심보영(장하은)의 아버지 심동민(조재윤),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이 오로지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는 양병무(이태구)의 아버지 양흥수(차순배), 너무 뻔뻔해서 자칫 아무 잘못이 없게 느껴지는 신민수(이우제)의 아버지 신추호(이두일), 그리고 야욕을 가지고 이 모든 상황을 지휘한 현수오·건오(이가섭)의 아버지 현구탁(권해효)이다.
대선배들과 작품을 함께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변요한, 고준과 붙는 장면이 많아졌지만 대선배들의 열연은 현장을 배움의 장으로 만들었다. 김보라는 “역시 오래 (연기)하시는 덴 이유가 있으시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내공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젊은 배우들도 물론 그랬지만, (선배님들이) 더 열정적으로, 열심히 연기하셨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면서 그 날의 진실이 드러났다. 범인을 궁금해하는 지인들에게는 ‘대본을 안 봐서 모른다’고 답했다고. 하설의 캐릭터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김보라는 “하설이는 궁금증을 품고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내 신 이외의 상황은 너무 이입해서 읽지 않으려 했다. 디테일한 상황이나 감정을 알게 되면 나도 모르게 나올 것 같더라. 일부러 버리려 했다”고 답했다.
김보라는 지난 6월 영화 ‘괴기맨숀’으로 만난 조바른 감독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여배우로는 비교적 빠른 결혼 소식에 축하도 많이 받았다. “일과 나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편”이라고 소신을 밝힌 김보라는 “고민도 있었지만, 확신이 있을 때 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고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절친한 비연예인 친구들의 결혼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그는 “연예계에 시선을 둔 게 아니라 내 나이 또래 친구들과 시선이 맞았다”면서 “약간의 오지랖일 수도 있는데, 또래 연예인들 중에서도 결혼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열애설, 결혼설이 나도 생각보다 달라지는 게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결혼 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그는 “감정에 더 솔직해졌다. 사람과 교류하는 데 있어서 방어막이 많이 사라졌다”고 했다. 두 사람의 결합뿐 아니라 새로운 가족이 만나서 낯섦이 깨지는 과정을 겪고,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과 신뢰를 유지하며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지난 추석을 지내며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챙기는 방법도 한층 더 배워나갔다.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빨리 엄마가 되고 싶다’고 밝힌 김보라의 바람은 여전할까. 이에 관해 김보라는 “1학기와 2학기 장래희망이 바뀌지 않나. 나도 작년과 올해의 인생 계획이 바뀌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지금 가장 관심을 둔 건 사진이다. 올해는 특히 ‘내가 뭘 좋아하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2004년 데뷔해 올해로 데뷔 20년을 맞았다. 장나라 아역으로 ‘웨딩’(2005)을 통해 얼굴을 알렸고, ‘소문난 칠공주’, ‘로열 패밀리’, ‘내 딸 서영이’ 등에 출연했다. 신드롬을 일으킨 ‘스카이 캐슬’로 다시금 주목받아 ‘모래에도 꽃이 핀다’, ‘옥수역 귀신’ 등에 출연했다.
김보라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성인이 되고 성숙한 역할을 위주로 오디션을 봤다. 그런데 단편 영화도 학생 역할을 빼곤 다 떨어지더라. 그땐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20대엔 여전히 소녀 같은 외모가 힘들기도 했지만, 이제 ‘이렇게 살 수 있을 때 활용하자’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뀌었다고. “이제 나이 얘기를 하면 묻어가기로 했다”고 웃어 보였다.
“저는 골고루 잘 섞일 수 있는 배우예요.” 김보라가 꼽은 ‘배우 김보라’의 장점이다.
지난 20년 동안 쉼 없이 1년에 한 작품이라도 남기기 위해 ‘열일’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조급함이 없어요.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 언급되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불행하지 않게 일하는 게 배우로서의 가장 큰 행복이다. 데뷔 20년을 맞은 지금, 가장 달라진 건 무엇인지 묻자 “이 일을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 명확해진 것”이라며 “아직 부족함이 많고 배울 것도 많다.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바랐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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