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데뷔후 벌써 프로 14년차. 박용택(36)은 LG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다. 단순히 자리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매 시즌 성적도 뛰어나기에 그 의의는 더욱 값지다. 올 시즌 역시 21일까지 타율 3할1푼6리 148안타 15홈런 75타점 등 각종 공격지표에서 팀 내 1위다. 그가 세 자리 수 안타를 못 친 적은 2008년(86안타)뿐이다.
박용택의 올 시즌은 ‘기록대풍년’이다. 7년 연속 세 자리 수 안타 달성+타율은 물론 14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 도 달성했다. 그러나 박용택은 웃지 않았다. 팀이 부진할 때 개인 성적은 의미없다. ‘팀이 잘돼야 개인도 잘되는 것’을 주장하던 박용택을 스포츠월드가 만났다.
올 시즌 내 점수? 실격 기자가 ‘올 시즌 자신에게 점수를 주자면 몇 점이겠느냐’고 묻자 박용택은 주저 없이 “올 시즌 내 점수는 매길 수 없다. 실격이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모든 개인 기록은 팀 성적이 좋을 때 빛이 나는 것인데 팀이 포스트시즌도 못 간 마당에 내 성적이 무슨 의미가 있나”고 말했다. 목전에 둔 4년 연속 150안타 기록 역시 마찬가지다. 박용택은 “역대 KBO리그에서 아무도 달성하지 못했기에 나름 의미는 있겠지만 그저 큰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르고 있는 것에 대한 상 정도로 생각한다. 팀이 잘할 때 나온 기록이면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이라며 팀 성적에 대한 아쉬움만을 진하게 표출했다.
탈 LG 효과? 생각을 달리 해야 LG의 부진과 함께 ‘탈 LG 효과’란 말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LG를 떠나면 선수들이 잘 되는 현상을 비꼰 말로, 올 시즌 역시 박경수(kt) 정의윤(SK)가 LG를 떠나 프로 첫 전성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 없이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는 박용택이 더 대단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박용택은 “가끔 농담 삼아 말한다. 내가 작은 구장에서 뛰면 성적이 더 좋았을 거라고. 그만큼 잠실처럼 큰 구장을 쓴다는 것은 타자들에 불리한 점이 확실히 있다. LG를 떠난 투수 중에 더 잘된 선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중요한 것은 구장에 맞는 타격을 하는 것이다. 우선 잠실에서 홈런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유가 있다. 박용택은 “작은 구장을 쓰는 타자들은 기술 발전이 빠르다. 오버 스윙도 적다. 간결하게 치면서 구장에 맞는 타격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실은 타자들에게 욕심을 생기게 한다. 특히 장타력 갖춘 유망주들은 넘겨보고 싶다는 유혹에 휩싸인다. 그런데 잠실에서 홈런 타자가 되긴 쉽지 않다. 버릴 건 버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밝힌 뒤 “타자들이 LG에서 뛰는 것은 불리한 걸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를 내지 못하는 프로는 실패한 것이다. LG에서 뛴다고 못한다는 것 역시 핑계다. 구장과 자신에 맞는 타격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김현수(두산)가 좋은 예다. 현수는 홈런 욕심을 내지 않는다. 내가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타자로 꼽는 최형우(삼성) 박병호(넥센)도 처음부터 잘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팀에 맞는 타격 폼을 찾았고 스타가 됐다. 그렇게 생존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미심장한 지적이 이어졌다. 박용택은 “14년간 LG에 있으면서 내 자리가 위태롭구나 느낀 적은 딱 2번이다. 이택근(넥센)이 있던 2010년, 2011년이다. 당시에는 이진영도 FA로 합류했고 도루왕 이대형(현 kt)에 9번 이병규 선배까지 있었다. 7번 이병규도 주목받던 시기였다. ‘아 내가 조금만 못하면 밀리겠구나’ 하는 불안감에 치열하게 했다. 적어도 그런 긴장감은 있어야 선수나 팀이 발전할 수 있는데 올 시즌 역시 그런 적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박용택은 이어 “후배들에게 조언이라는 조언은 다 해준다. 심지어 쇼핑에 여자 조언까지 해줄 정도다. 단, 전제조건이 있다. 이 선수가 조금만 더 하면 날 뛰어넘겠구나 싶으면 (조언을) 하지 않는다. 내 밥그릇은 지켜야 할 것 아닌가”라며 너스레를 떤 뒤 “그런데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이 들게 한 후배는 없었다. 진심으로 그런 선수가 나타났음 좋겠다. 경쟁을 통해 더 발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 팀을 위해서나 후배 자신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나이 먹고도 야구가 아직도 어렵다”고 멋쩍은 듯 진심을 밝혔다.
한국 나이로 서른 일곱. 선수 생활 막바지를 향해가는 시점에서도 그는 배움을 갈망했다. 박용택은 “매 시즌 부상만 없다면 기준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늘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을 못 채우면 그때는 정말 은퇴해야 할 시기다. 물론 아직 그럴 징조는 전혀 없다“며 ‘꾸준택’의 다음 시즌 기상도 역시 맑음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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