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게이트’가 마침내 해결되는 분위기다.
이강인이 영국 런던으로 가 손흥민에게 직접 사과하며 갈등이 봉합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다만 일각에선 대한축구협회의 안이한 대처로 선수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것에 대해 비난하고 나섰다.
21일 이강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과문을 올리고 손흥민과 대표팀 동료들, 축구 팬들에게 고개 숙였다.
손흥민과 이강인의 충돌은 지난 14일 영국 매체 더선에 의해 알려졌다. 요르단과의 아시안컵 준결승전 하루 전날 대표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강인이 일부 선수들과 별도로 탁구를 쳤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자중하라는 취지로 손흥민이 제지했지만 이강인이 말을 듣지 않았고, 화가 난 손흥민이 멱살을 잡자 이강인이 주먹을 휘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축구의 간판으로 불린 두 선수의 충돌은 큰 후유증을 낳았다.
하지만 진정성이 의심됐다. 이강인이 곧바로 SNS에 사과문을 올렸지만 24시간 뒤 사라지는 게시물에 적어 논란이 더 확산됐다. 선배에게 대든 이강인을 향한 비난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3월 A매치에 소집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강인을 광고 모델로 썼던 업체들과 PSG 경기 중계사마저 이강인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상황을 중재해야 할 축구협회도 조사 의지를 보이지 않으며 수수방관해 사건을 더 키웠다.
결국 이강인이 먼저 손을 뻗었다. 이강인은 “흥민이 형을 직접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런던으로 찾아간 저를 흔쾌히 반겨주시고 응해주신 흥민이 형께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손흥민과의 물리적 충돌에 대해 그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절대로 해선 안 될 행동이었다. 이런 점들에 대해서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후배의 진심 어린 사과에 선배 손흥민도 손을 잡았다. 손흥민은 이강인의 사과문이 올라오고 약 한 시간 뒤 SNS에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강인이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저를 비롯한 대표팀 모든 선수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고 밝혔다.
손흥민은 “강인이가 이런 잘못된 행동을 다시는 하지 않도록 저희 모든 선수가 대표팀 선배로서 또 주장으로서 강인이가 보다 좋은 사람,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특별히 보살펴 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대표팀 주장으로서 악역을 마다하진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 행동에 대해 잘했다 생각하지 않고 충분히 질타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저는 팀을 위해 그런 싫은 행동도 해야 하는 것이 주장의 본분 중 하나라는 입장이다. 다시 한번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팀을 위해서 행동할 것이다. 한 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강인이를 용서해달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후배를 품은 손흥민은 마지막으로 ‘대표팀 내분설’도 진화했다. 아시안컵 기간 이강인과의 충돌을 비롯해 세대 간 갈등이 있었다는 루머를 일축한 것이다.
손흥민은 “일각에서 나오는 이야기 중 대표팀 내 편 가르기에 대한 내용은 사실과 무관하다. 우리는 늘 한 팀으로 한 곳만을 바라보려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의 두 에이스가 다시 손을 잡으면서 아시안컵에서 논란이 됐던 ‘탁구 사건’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다만 일각에선 축구협회의 대처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협회가 선수들의 불화를 곧바로 인정하면서 선수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기 때문이다.
협회의 대처가 일반적이진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클린스만 전 감독의 경질 관련 문제에 대해선 묵묵부답이었지만 선수들간의 불화는 빠르게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강인을 비난하는 악플이 쇄도했다.
지난 15일 전력강화위원회 회의 이후 브리핑을 가졌고 황보관 기술본부장은 손흥민과 이강인의 다툼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황보관 기술본부장은 “해당 사건에 대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구체적으로 더 확인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라고 답했다. 결국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건을 인정한 꼴이 된 것이다.
하지만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둘의 충돌에 대해 “너무 시시비비를 따지는 건 상처를 후벼서 악화할 수 있다. 언론도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도 도와주셔야 한다”고 밝힌 만큼 대표팀 제외 등 추가 징계가 나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주형연 기자 jhy@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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