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속 장하빈은 워낙 감정을 숨기고 일반적인 공감 능력을 보여주지 않은 탓에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라는 예측도 나왔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본체 채원빈은 딴판이었다. 연기에 진지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좋아하는 만화나 게임을 얘기할 땐 눈이 빛나는 영락없는 20대 초반의 해맑은 소녀였다.
채원빈은 1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속사 사옥에서 MBC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종영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했다. 채원빈은 극 중 아버지 장태수(한석규 분)와 심리전을 벌이며 복잡한 내면을 지닌 장하빈 역을 맡았다. 장하빈은 어떤 감정도 내보이지 않아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로도 보이는 인물이다. 배우로서 연기하기 결코 쉬운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것도 대선배 한석규와 연기적으로 대립하는 위치에 서야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채원빈은 한석규에 밀리지 않는 포스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한석규의 MBC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회차가 진행될수록 한석규와 더불어 신예 채원빈의 발견이 뜻깊었다.
채원빈에게도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뜻깊은 작품이다. 종영 소감을 묻자 그는 “촬영이 끝났을 때도 섭섭했는데 종영은 정말 말도 안 되게 허전하더라. 그래서 정말 이 작품을 많이 애정했구나 느꼈다”고 답했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마지막회 시청률은 9.6%(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두자릿 수를 넘기진 못했지만 매회 우상향 곡선을 그렸으며 무엇보다 시청자의 압도적인 호평을 받았다. SBS ‘열혈사제 2’, tvN ‘정년이’와 시간대가 겹쳤음에도 유의미한 성적을 남겼다. 대중적인 사랑을 받기 어려운 스릴러 장르이지만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셈이다.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채원빈은 “각본부터가 작가님 한 분이서 어떻게 쓰셨을까 싶을 정도였다. 읽기만 하는데도 따라가기 벅찰 정도의 스토리”라고 웃었다. 이어 “그런 이야기들을 시청자에게 잘 매듭지어서 전달해 주신 감독님의 연출력도 한몫을 했던 것 같고 선배님들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서 그 인물로서 존재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고 공을 돌렸다.
아울러 “저희 스태프분들이 정말 물불 안 가리고 촬영을 하시느라 많이 다치셨었다. 그런데도 병원에서 쉬라고 한 기간을 안 지키시고 그냥 깁스하고 오셔서 촬영하셨다.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날 뻔한 적이 많았다. 그렇게 모두가 물불 안 가리고 모든 것을 건 작품이었다. 그래서 잘 완성이 된 것 같다”고 함께 일한 스태프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기대한 것만큼의 성적이나 반응이 나온 것 같은지에 대해 채원빈은 “너무 (기대) 이상이었다. 저희 작품에 마니아층이 생길 거라는 확신은 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고 끝까지 봐주실 줄은 몰랐다. 그래서 더 뿌듯했다”고 미소 지었다.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왔지만 결코 만만했던 촬영은 아니었다. 장하빈에 깊게 몰입한 탓에 채원빈은 몸무게가 4∼5kg 정도 빠졌었다고. 그는 “하빈이를 이해하는 게 일단 첫 번째로 힘들었다. 이해를 하기 시작하니까 몸이 안 따라줬다. 처음 겪어보는 인간의 유형이라 제가 인물을 따라가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했다”고 돌아봤다.
그만큼 연기하기 어려웠던 장하빈. 채원빈은 “감독님께 1차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작품과 이 인물을 가장 잘 이해하고 계시는 분이니까 자문을 많이 구했다”며 “감독님께서 ‘하빈이는 동물적인 감각이 필요한데 너가 그걸 가지고 있어’라고 해주셨다. 처음에는 잘 와닿진 않았었다. 저에 대해서 잘 몰랐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하빈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계속 대본을 보고 다른 인물들처럼 열심히 분석하려고 하면 더 망가지더라. 그냥 이 친구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걸 이해를 해줬어야 했다”고 까다로웠던 장하빈의 캐릭터 분석 과정을 설명했다. 더불어 “처음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고 최대한 평소처럼 만들어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감독님과 얘기를 하면서 점점 이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두고 가둬두면 안 되겠다, 좀 최대한 열어놔야겠다고 느끼고 촬영을 하면서 많이 잡아갔다”고 캐릭터를 구축했던 과정을 밝혔다.
채원빈이 생각하는 작품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는 “그래보이지 않지만 가족애를 얘기하는 작품”이라고 미소 지으며 “가장 가까운 사람,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가족 간의 믿음이나 신뢰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저도 이 작품을 하면서 저를 돌이켜보면 가족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까이에서 있었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가 쌓인 거지, 엄마와 아빠에게 어떤 사람인지 물어본 적이 없다. 가족이 모르는 제 모습이 있듯이 가족도 있을 수 있다”며 “그걸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가 이 작품을 하면서 느꼈다. 당연하게 소중한 존재들이다 보니까. 그걸 짚어주는 작품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또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메시지도 있다. 저희 작품에 마지막 범인이 성희(최유화)라는 것도 그렇게 보여진다. 시청자들이 저희랑 똑같이 구경장을 의심을 한 데에도 그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희 작품은 그런 메시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경향이 있었다. 사건들이 다 큼직하고 일반적인 내용들은 아니다 보니까”라고 덧붙였다.
채원빈은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필요할 것 같다. 가족들을 대할 때 이런 상황에서는 저렇지 않을까를 생각보다 제가 내린 적이 많더라. 저희 작품을 보시고 그런 점들을 한번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당부했다.
엔딩 이후 하빈이가 아빠와 어떤 삶을 살아갔을지를 두고 그는 “되게 많은 상상을 했었다. 우선 식탁을 다른 걸로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사이 좋게 납골당의 엄마 보러 가는 모습도 많이 상상을 했었다. 여느 가족처럼 성적표 나오는 날도 태수가 알고. 그런 평범한데 값진 일상들을 보내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뱅 스트레이트 헤어 덕분에 이토 준지의 만화 캐릭터 토미에를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있었다. 알고보니 ‘하빈이가 이렇게 담겼으면 좋겠다’고 감독이 주문한 사항이었다.
어린 나이인데도 이토 준지 만화를 봤는지 묻자 “이토 준지 작품을 좋아한다. 최근에 전시회도 갔다. 친구랑 만화카페를 자주 가는데 그럴 때마다 저희끼리 ‘이토 준지 타임’이라는 게 있다. 밥 시키기 전에 이토 준지를 먼저 읽고 밥 먹으면서는 좀 가볍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읽는다. 그 정도로 이토 준지 만화를 좋아한다”고 웃었다.
그래서 감독의 주문 사항에 내심 반가웠다면서도 채원빈은 “생소한 인물이면 사실 외형만 보이는데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보니까 놀랐었다. 토미에의 어떤 점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건지 여쭤봤는데 헤어스타일이나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 외형을 말씀하시더라”라고 전했다.
대선배 한석규와 연기 호흡을 펼친다는 것에 부담은 없었을까. 채원빈은 “제가 누가 될까 봐 처음에 굉장히 많이 부담을 가졌었다”면서도 “하지만 분명히 도움을 받을 거라는 믿음은 있었다. 선배님이 저를 잘 이끌어주실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촬영을 하면서도 제가 선배님께 ‘이게 힘들어요’ 이렇게 말하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끙끙 앓고 있으면 선배님께서 먼저 도와주셨다”고 감사를 전했다.
그런 대선배와 카메라 앞에서는 지지 않고 대립해야 했던 채원빈. 한석규와의 첫 촬영을 두고 그는 “당연히 긴장했었다. 근데 선배님께서 이전에 저희끼리 많이 미팅을 했을 때 나눴던 이야기들도 다시 꺼내주시면서 어제 만난 것처럼 대해주셨다. 상황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해주셨다. 저는 선배님이 이끌어주시는 대로 잘 따라가기만 한 것 같다”고 떠올렸다.
한석규와 다른 작품에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지 묻자 그는 “너무 (생각)한다”고 단번에 답했다. 이어 “선배님을 작품에서 만난 게 천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나 뵙기 힘든 분이시지 않나. 제가 촬영을 하면서 선배님께도 ‘저 꼭 선배님 또 만나고 싶어요’ 얘기를 굉장히 많이 드렸다. 그때마다 선배님은 ‘또 만나면 되지’ 이렇게 밝게 얘기를 하시니까 ‘선배님 근데 그게 어렵잖아요’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근데 선배님께서 아빠 역할이 처음이라고 하시더라. ‘생각해 보니까 내가 아빠로는 원빈이가 처음이네. 내가 또 다음에 너의 아빠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너가 내 직장 후배로 나올 수도 있고 다 그렇게 만나지는 거 아니겠니’ 하셨는데 그 말이 꼭 이루어지길 소망하고 있다. 끝난 지 얼마 안 됐지만”이라고 웃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성공적으로 존재감을 뽐낸 작품인 만큼 자신감도 생기진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게 봐주시니까 너무 감사하다”고 겸연쩍게 웃었다. 본인의 연기 만족도를 두고는 “이 장면은 생각보다 괜찮다고 느끼는 장면도 있고, 어떤 장면은 ‘이게 뭐야’ 싶은 장면들도 있다. 그건 누구나 그럴 것 같다. 자기 자신이라 보이는 것도 많으니까. 그래도 좋은 평을 해주시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뿌듯하다”고 미소 지었다.
실제 채원빈이 성격은 장하빈과는 딴판이었다. 스스로도 싱크로율 0%라고 할 정도로 평소엔 밝고 쾌활한 그녀. 작품을 끝내고 난 뒤 변화한 지점이 있는지 묻자 그는 “작품을 하는 중간에는 그랬던 시기가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쉽게 우울하고 지치고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계속 무겁고 우울감에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면서도 “그래도 어떻게 잘 이겨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현장에서 그럴 수 없으니까 집에서만큼은 혼자만의 방식으로 울고 싶을 때 울고 그렇게 노력을 했다. 중간에 그런 심한 시기가 있었고 끝난 후에는 괜찮았다”고 전했다.
실제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떤지 묻자 그는 “제가 막내 딸인데 그래서 아빠가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다”고 멋쩍게 웃었다. 채원빈은 “편한 사이인 것 같다. 아빠도 엄마처럼 편해서 유치한 장난도 많이 친다. 어릴 때 제가 아빠 배 위에서만 커서 거기서 내려놓으면 그렇게 울었다더라”라며 “방송 나갈 때 아빠가 저한테 아버지한테 자꾸 못되게 굴지 말라고 많이 그러셨다”고 전해 웃음을 불렀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무사히 끝낸 채원빈은 오는 12월 KBS2 ‘수상한 그녀’ 첫 방송도 앞두고 있다. 장하빈과는 정반대 캐릭터다. 채원빈은 “제가 맡은 최하나라는 인물은 되게 밝고 목표가 뚜렷하다.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그걸 결코 무모하지 않게 만드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웃음이 많고 구김살 없는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하빈이랑은 다르게 자기 감정에 굉장히 솔직하다”며 “또 다른 점은 아빠랑 굉장히 친하고 허물없는 사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차기작은 현재 정해진 건 없다고. 최근에 빠져있는 게 있는지 묻자 채원빈은 “집이랑 거리가 좀 있어서 자주는 못 가는데 플레이스테이션을 대여해 주는 PC방 같은 곳이 있다. 거기 가면 마리오 게임이나 철권, UFC 게임을 친구랑 하는 걸 좋아한다”고 의외의 취미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기면 스트레스 풀리는데 지면 쌓인다. 그래서 이길 때까지 한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끝으로 채원빈에게 장하빈이랑 인물은 어떻게 남을 것인지 묻자 “너무 고맙고 미안한 인물로 남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조금 어려웠던 만큼 ‘표현을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은 똑같이 따라오는 것 같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고, 잘했다고 생각해’라고 혼자 생각했었다”고 해 웃음을 지었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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