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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만남] ‘존버’를 위하여…윤여정 “그래서 이 세상 오래 살아야 해”

입력 : 2024-06-23 17:00:47 수정 : 2024-06-23 18: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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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를 보면 단점을 보는 사람이라 소감 같은 거 물어보면 안 돼요.”

 

솔직함의 대명사 배우 윤여정답다. 영화 ‘도그데이즈’(김덕민 감독)에 출연한 그. 영화를 본 소감을 물으니 손사레를 친다. 덕분에 웃음으로 시작한 인터뷰다. 지난 3월 본지 신문에 실린 인터뷰를 웹용으로 다시 재구성했다. 

 

영화는 옴니버스 구조를 띈다. 크게 네 그룹의 사람들과 세 마리의 강아지로 얽힌 이들의 일상과 성장을 그렸다. 윤여정을 비롯해 유해진·김윤진·정성화·김서형·이현우·탕준상 등 라인업이 화려하다. 

 

윤여정은 극중 성공한 건축가 민서 역을 맡았다. 민서는 유일한 가족인 반려견 완다를 잃어버리고 배달 라이더 진우(탕준상)와 완다를 찾아나서는 인물이다.

 

윤여정은 “작품은 감독 때문에 했다. 조감독과 배우로 전 작품(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만나 전우애가 쌓였다. 당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취급을 받았다. 조감독만 19년을 했더라. 그때 ‘저 사람이 입봉 할 때 내가 할 게 있으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제는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나이라 단순하게 생각했다. 캐릭터를 보니 내 생각을 많이 하고 쓴 것 같더라. 아니, 시나리오 처음 받았을 때 캐릭터 이름이 윤여정이었다. 이게 뭐냐니까 (제작자) 윤제균 감독이 ‘다른 배우는 캐스팅할 수 없다. 생각도 안했다’고 하더라”며 웃어보인다.

 

영화 촬영 이후 실제로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까. 윤여정은 “반려견이 세상을 떠나고, 다시는 그런 일을 안 하기로 했다. 반려견을 키우는 건 자식을 하나 키우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내가 자식을 키울 나이(77세)가 못 된다. 친구들은 입양하라고 하는데, 내가 키울 자신이 없다. 그냥 외롭게 살다 가려고 한다”라고 답한다.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수상 이후 3년 만에 첫 공식 인터뷰다. 당시 들어올린 여우조연상 트로피만 40여개. 윤여정은 “수상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상상도 못 했다. 영화 ‘미나리’ 촬영 당시 너무 힘들어서 찍자마자 도망갔다. 그러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다”며 “그러다 보니 아무 계획도 없었다. 책에서 인생이 전위예술이고 영원한 미완성의 실험이라는 표현을 봤다. 나 역시 미완성의 사람이다. 인터뷰도 따로 할게 없다고 생각해서 안 했다. 잘 안 나가서 (달라진 위상을) 체감하지는 못했지만, 다들 날 존경한다고 하면 부담스럽더라”고 늦은 소감을 전했다.

 

수상 후 달라진 점은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늘었다는 점이다. 윤여정은 “평소보다는 작품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인생을 오래 살아서 사람들이 그럴 때 참 씁쓸하다. 난 쭉 있었는데, 주인공 들어오는 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제 주인공으로 쓰고 하는 거 보면서 씁쓸했다”면서 “예전에 저는 목소리 때문에 거부감 1위 배우였다. ‘저 여자 목소리 듣기 싫으니까 나오지 말라 그래’ 라더라. 그런데 지금은 제 목소리가 매력있단다. 세상은 그래서 오래 살아야 한다. 신기해”라고 말해 다시 한 번 현장의 웃음을 자아낸다. 

 

“푸를 청(靑), 봄 춘(春). 청춘, 봄도 예쁜데 푸른 봄은 얼마나 예쁘겠니. 넌 늙어본 적 없지만 난 젊어봤거든.” 도그데이즈에는 윤여정의 연기를 빌려 명대사의 향연이 펼쳐진다.

 

실제 인간 윤여정 역시 명언 제조기로 유명하다.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딨어”,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난데, 왜 그 사람 흉내를 내냐”,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도 67살이 처음이야” 등 경험을 바탕으로 한 위로와 조언이 화제를 모았다.

 

윤여정은 고개를 젓는다. “난 조언 같은 건 못하는 사람”이라면서도 “엊그제 덕담하라고 해서 그 말은 했다. 버티라고. 인생 버티는 거뿐이라고. 저도 미나리로 상 받고 출세한 지 2~3년밖에 안됐다. 사는 건 매번 힘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남의 일이니 상 탄 것만 기억하고 힘들었던 건 잊어버리는 거다”라고 말한다.

 

이어 “어느 자리에선가 박찬욱 감독이 그러더라. 미나리 속 연기는 자다가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엄청난 칭찬이지. 딱 그거다. 난 똑같았다. 버티니까 이런 날이 온 거다”라고 덧붙였다.

 

한국 영화 시장이 어느 때보다 어렵다. 대선배이자 현역 윤여정은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영화계가 어려운 건 세계적인 현상이다. 난 조그만 영화, 다양성 영화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라고 짚으며 “차기작은 시나리오를 보고 반쯤 예스를 한 게 있다. 독립영화라서 돈은 없다(웃음). 노년의 이야기를 무겁고 우울하지 않고 밝고 건강하게 풀었더라. 내가 참여한 영화가 손익분기점만 넘기면 성공한 거다. 그 감독이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 다시 봐도, 언제 읽어도, 언제 들어도 즐거운 윤여정 배우와의 대화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때 관객과 만나 솔직한 답변을 내놓으며 꾸밈없는 속마음을 전하는 그. 부국제 당시 작성했던 기사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참어른’으로 불리면서도 자신을 꾸미는 수식어에 손을 휘휘 젓는 윤여정. 또 만날 그 날이 기다려진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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