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발매된 걸그룹 이달의소녀 미니3집 앨범 ‘[12:00]’가 초동판매 4만6900여장을 기록했다. 아이즈원이나 블랙핑크처럼 초동 수십만 장씩 파는 팀들만 대서특필되는 통에 감이 안 올 수 있지만, 사실 대단한 기록이다. 단적으로, 현재 활동 중인 K팝 걸그룹 중 저 이상 초동기록을 지닌 건 단 아홉 팀뿐이다. 피지컬음반 초동이 곧 팬덤 규모와 화력을 가리키는 현시점, 이달의소녀는 단박에 ‘K팝 걸그룹 팬덤 톱10’에 들어서게 된 셈이다.
좀 더 살펴보자. 이달의소녀는 여러모로 K팝에서 가장 극단적인 팬덤형 걸그룹 중 하나다. 음원사이트 성적과의 비교만으로도 알 수 있다. 가장 화력 좋은 음원 발표 첫날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 일간차트 순위가 269위였다. 이후 불과 며칠 만에 600위권으로 훅 떨어졌다. 이 정도면 기존 팬덤형 그룹들과 비교해 봤을 때도 언뜻 이해가 안 갈 정도로 피지컬 앨범과 음원 성적 간 격차가 큰 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간명하다. 이달의소녀 주류 팬덤은 ‘한국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내 음원차트에서 힘을 못 쓰는 것이다.
이미 피지컬 음반 판매에서도 상황이 잘 드러났다. 해외 K팝 팬들이 주로 이용하는 해외 직판 플랫폼 케이타운포유에서 주문된 물량만 2만장에 가깝다. 다른 플랫폼들까지 포함하면 전체 초동 물량 절반을 넘어서리란 예상이다. 여기서 온라인 팬덤 상황을 더 살펴보면 그 해외 팬덤 실체가 더 잘 보인다.
유튜브 음악 차트 및 통계에서 이번 미니 3집 컴백기간이 포함된 지난 28일 간(11월1일 현재 시점) 이달의소녀 콘텐츠를 가장 많이 본 국가는 1위 미국, 2위 인도네시아, 3위 브라질로 드러났다. 한국은 4위까지 가야 볼 수 있다. 주로 미국 인기가 두드러진다. 이달의소녀 공식 유튜브 채널 ‘loonatheworld’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녹스인플루언서의 구독자 예상 지역 분포에 따르면, 120만 구독자 중 최대 비중은 무려 25%를 차지하는 미국이다. K팝 ‘텃밭’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제치고 미국이 1위를 차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자연스럽게 이번 미니 3집 피지컬앨범 판매 성과도 미국 팬덤 지분이 크리라 예상해볼 수 있다.
이게 이달의소녀 팬덤 ‘실체’다. 국내서도 점차 팬덤이 커지곤 있지만, 기본적으로 해외 팬덤, 그중에서도 미국 팬덤 중심으로 전체 구도가 마련돼 있다. 오히려 국내 팬덤은 이처럼 열렬한 미국 팬덤이 이달의소녀 앨범 3장 연속으로 아이튠즈 앨범차트 1위에 올려놓는 통에 그 화제성에 힘입어 확대되고 있다 볼 수 있다.
어째서 이런 구도가 탄생한 걸까. 대부분 이달의소녀 음악 자체에 원인이 있단 해석들이다. 물론 그런 부분도 크다. 적어도 이달의소녀 데뷔 초반 노래들은 미국, 유럽 등지에선 확실한 마니아층을 지니고 있지만 국내에선 사실상 안티 트렌드라고까지 볼만했기 때문이다. 일정부분 언더그라운드 인상까지 드는 정도.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간 이달의소녀 음악 장르가 늘 ‘일정’했던 건 또 아니다. 론칭 단계 서브유닛들부터 완전체 미니1집 리패키지 앨범까진 프로듀싱 팀 모노트리가 주로 맡았다. 일렉트로니카 기반으로 드림팝 등 확실히 비주류적 터치가 많았다. 그러나 미니 2집부턴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가 ‘이례적으로’ 프로듀싱을 맡아, 외형적으론 걸크러쉬 분위기를 짙게 풍기고 음악 자체도 퓨쳐하우스 등 좀 다른 영역까지 가고 있다. 적어도 특정 장르 팬들이 장르 충성도 하나만으로 이달의소녀에 열광하는 분위긴 아니란 것이다.
그럼 뭘까. 무엇이 해외 팬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 팬덤 이목을 집중시키며 그 충성도를 극단적으로 올려놓은 걸까. 상황을 종합해보면, 결국 이달의소녀가 론칭 초기부터 특징적으로 내놓은 ‘세계관’ 전략이 미국 팬들 구미를 저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세계관 전략팀들은 K팝 신에 적지 않다. 그러나 걸그룹 중 ‘이 정도’ 과격한 세계관 설정을 가한 팀은 실제로 이달의소녀뿐이다. 특히 이번 미니 3집 타이틀곡 ‘Why Not?’ 뮤직비디오는 그 세계관 설정을 알지 못하면 저게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닌 장면들인지 이해조차 힘들 정도로 그 콘셉트에 몰입된 실정이다. 애초 ‘걸그룹=대중성’ 공식을 깨고 팬덤형으로 기획된 프로젝트였는데, 이에 국내가 아니라 미국, 그리고 미국과 문화적으로 연동되는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영어권과 일부 유럽 국가들이 먼저 반응한 셈이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미국 K팝 팬덤은 그간 유난히 이 같은 세계관 설정을 즐겨왔다. 이달의소녀와 매우 비슷한 포지션, 즉 해외 인기가 국내 그것을 압도하는 보이그룹 에이티즈도 마찬가지다. 매우 복잡한 세계관 설정으로 잘 알려졌다. 에이티즈 공식 유튜브 채널 구독자 분포는 무려 44%가 미국에 쏠려있고, 마찬가지로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영어권이 뒤따른다. 심지어 K팝 세계관 설정 ‘아버지’라 볼 수 있는 엑소마저도, 공식 유튜브 채널 최대 구독자 국가는 미국이다. 따지고 보면 빌보드 신화를 쓰고 있는 방탄소년단 역시, 그 몰입 정도엔 차이가 있어도, 기본적으로 세계관 전략을 취하는 팀이기도 하다.
확실히 미국이 그렇다. 비단 K팝 외에도 근본적으로 대중문화에 있어 세계관 설정을 유난히 즐긴다. ‘마블 유니버스’ ‘DC 유니버스’ 등 만화→영화 세계관 탄생지가 미국이란 건 모두 아는 얘기다. 그밖에 1930~40년대 하드보일드 소설들, 소위 ‘펄프 픽션’들 역시 세계관 설정을 취한 경우가 워낙 많았다. 최소한도 대(對)미국시장 차원에서 세계관 전략은 미국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그만큼 장벽을 무너뜨리기에도 효과적인 전략이 맞단 얘기다.
지난달 26일 SM엔터테인먼트는 레드벨벳 이후 6년 만에 새 걸그룹 에스파의 11월 데뷔를 알렸다, 동시에 에스파는 걸그룹으로서 강도 높은 세계관을 보유한 팀이란 점도 밝히고 있다. 팀 멤버들이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좀처럼 예상하기 힘든 세계관이다. 어쩌면 이수만 총괄프로듀서가 이례적으로 이달의소녀 프로듀싱을 맡게 된 것도 그 강렬한 세계관 전략과 그에 따른 미국시장 반향을 주시한 결과였을 수도 있다. 한편 방탄소년단으로 역사를 쓴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역시 중소기획사 쏘스뮤직을 인수하자마자 소속 걸그룹 여자친구에 강렬한 세계관 전략을 입힌 바 있다.
이처럼 그 시작단계부터 모두가 미국시장을 의식했던 건 아니겠지만, 그 ‘효과’를 확인한 지금은 실제 미국시장을 의식하고 세계관 전략을 펼쳐나간다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K팝 ‘최종 목표’ 미국시장을 놓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시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제공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