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한 자유계약(FA) 우선 협상 제도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프로배구 V리그 FA 협상 교섭은 3차로 나눠 진행한다. FA 자격을 획득한 선수는 원소속 구단과 1차 협상을 진행하고, 이 기간이 끝나도록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못하면 시장으로 나온다. 2차에서는 원소속 구단을 제외한 나머지 구단과 협상할 수 있고, 만약 2차에서도 소속팀을 찾지 못하면 다시 원소속 구단과 3차 테이블을 차린다.
3차에 걸쳐 진행하는 FA 협상에는 기한이 설정돼 있다. 이번 비시즌의 경우, KOVO(한국배구연맹)가 FA 자격 취득 선수(남자 22명, 여자 11명)를 공시한 지난 2일부터 오는 5월14일까지 원소속 구단과 1차 협상을 진행하도록 했다. 이어 2차 협상은 5월15일부터 18일까지 진행하고, 이후 21일부터 31일까지 3차 협상을 한다.
따라서 오는 5월14일까지는 원소속 구단과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24일 현 시점에서 약 3주의 시간이 남았다. 그런데 이미 FA 자격 취득 선수들의 행보가 소문을 타고 번지고 있다. 일례로 센터 이동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여자 배구판에 나돌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획득한 베테랑 김세영(37)과 재계약하지 않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했고, 이 소식을 접한 흥국생명이 김세영과 접촉해 사실상 영입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김세영을 내보낸 현대건설은 또 다른 센터인 인삼공사의 한수지(29)와 접촉해 가닥을 잡았다는 소식이다.
이른바 템퍼링(사전 교섭)이다. 이는 두 구단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IBK기업은행의 레프트 김미연, 흥국생명의 리베로 한지현 역시 차후 행보가 사실상 결정났다는 소문이다. 남자부 FA 최대어인 한국전력의 전광인 역시 KB손해보험행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KOVO 규정상 템퍼링은 위반 사항이다. 앞선 소문과 관련해 구단 측은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전 접촉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어떤 구단도 ‘우리 사전 교섭했어요’라고 규정 위반을 당당히 밝힐 수 없다. 이는 지난 시즌에도, 그 전 시즌에도 마찬가지였다. 한 배구계 관계자는 “GS칼텍스가 FA 공시 직후 이소영과 재계약을 맺은 이유 이면에는 이처럼 템퍼링이 존재했기 때문”이라며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몇몇 구단에서 이소영과 식사자리를 하자는 연락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구단의 잘못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일단 일정 자체에 불균형이 있다. 1차 협상 기간이 약 40일이나 되지만, 2~3차 협상 기간은 4~5일 수준이다. FA자격을 취득한 선수는 KOVO가 공시를 하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다. 시즌이 끝나면 벌써 구단과 이에 대해 대략적인 대화를 나눈다. 구단 입장에서 남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거나, 고민하는 선수라면 차차 협상을 진행하면 된다. 그러나 떠나겠다는 생각이 단호한 선수의 경우 방법이 없다. 이 경우 구단과 FA자격 취득 선수의 껄끄러운 관계는 1차 협상 기간이 끝나는 시점까지 약 2개월이 넘는 시간을 의미없이 보내야 한다.
구단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있다. 1차 협상 종료 후 외부 전력을 영입하기까지 시간이 부족하다. 선수와 구단이 교감을 나누고 비전을 공유하면서 협상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시간을 정해놓고 경쟁 입찰을 하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규정대로 FA 선수와 접촉을 하려면 약속을 잡는 것조차도 힘겹다. 구단 관계자들이 선수의 고향집을 찾아가 부모를 설득하는 현상도 발생한다. FA 선수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전력 보강에 실패할 경우 한 시즌 농사를 망칠 수도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 사력을 다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선수가 있다면 사전에 접촉을 하게 된다.
FA 우선 협상 제도는 유명무실해졌다. 다음 시즌에도 암암리에 템퍼링이 이뤄질 것이다. 아니 이번 시즌 시작과 동시에 FA 영입을 위한 보이지 않는 물밑 접촉이 시작된다. 의미없는 규정을 굳이 고수할 이유는 없다.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한국배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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