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의 의미를 되새길 때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3선 도전 길이 열렸다. 체육회 정관상 연임은 1번만 가능하지만,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심의를 거치면 예외가 인정된다. 이 회장은 이 절차를 밟았고, 공정위는 전체 회의를 통해 그의 3선 도전 신청을 승인했다.
평가 기준 점수도 넘었고, 의결 절차도 문제없이 밟았다. 하지만 여론의 시선은 차갑다. 대한체육회와 공정위의 내면에 자리한 ‘불공정성’ 때문이다.
시작점에는 이 회장의 비위행위 의혹이 있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공직복무점검단은 이 회장을 직원 부정 채용(업무 방해), 물품 후원 요구(금품 등 수수), 후원 물품의 사적 사용(횡령), 체육회 예산 낭비(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고,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가 13일부터 내사에 착수했다.
이 회장의 3선 도전을 받아들인 공정위의 운영과 구성에도 문제가 있다. 공정위가 체육계 임원 연임 심의까지 맡은 건 이 회장이 첫 임기를 시작한 이듬해인 2017년부터다. 2019년부터 공정위를 이끌고 있는 김병철 위원장은 2017년부터 2년간 유급으로 이 회장 특별보좌역을 맡았던 최측근이다. 게다가 나머지 공정위원들도 이 회장이 직·간접적으로 임명한 인사들로 알려졌다.
직접 택한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연임 여부를 심의받는 황당한 상황, 이름만 ‘공정위’였고 간판만 ‘심의’라는 비판이 쏟아진 이유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공정위 절차를 밟는 걸로 정당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그곳에 자기 사람만 있다는 걸 모두가 예전부터 알고 있지 않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계·체육계도 앞다퉈 목소리를 낸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장이 임명한 공정위가 회장의 연임 여부를 심의하는 것이 이른바 ‘셀프 연임 심사’로 불공정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며 “더 이상 체육회에 공정성과 자정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쓴소리를 쏟아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도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회장으로서 자질이 전혀 안 되는 자를 공정이라는 거짓의 탈을 쓴 스포츠공정위가 연임 승인 결정을 한 것에 어느 국민이 동의하겠느냐”고 지적했고, 차기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도 “공정위 결정은 명백한 자기모순”이라며 “권력 유지를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힘줘 말했다.
이 회장의 ‘자가당착’에 담긴 불공정성이 사라지지 않으면 비판은 끝날 수 없다. 귀국 기자회견에서 긴 답변을 쏟아낼 정도로 할 말은 많지만, 국정감사 및 체육회 현안 질의 증인 출석은 개인 사유를 들먹이며 회피한다. 3선 도전 승인을 신청한 사람은 “(회장직을) 그만두고 물러서서 내 삶을 정리할 준비를 해놨다”고 말하는 이 회장 본인이기도 하다.
제42회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다음 해 1월 14일이다. 스스로 공정성을 걷어찬 체육회와 ‘고인물’이 돼버린 수장의 승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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