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한 인물로 유명하다. “변명하지 않겠다”, “부인하지 않겠다” 등 솔직한 화법으로 정치적 위기를 돌파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고개를 숙였을 때 대중들은 비판을 쏟아냈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의 빠른 인정과 사과에 대중들은 오히려 호응했다.
이에 반해 한국 축구계를 관장하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의 태도는 여러모로 아쉽기만 하다. 각종 비판에 놓여있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 회장에 대한 논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올해 7월 홍명보 한국 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 논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시끄러웠다.
지난해 승부조작·비리축구인을 기습 사면했다가 여론이 악화하자 사흘 만에 임시 이사회를 긴급 소집해 결국 사면 결정을 번복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에 독단적 관여를 했다는 정황도 있었다.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하면서 100억원에 이르는 위약금도 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과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등 떠밀려서 한 모양새였다.
홍 감독 선임 과정이 국민적인 비판을 받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축구협회에 대한 특정감사에 들어가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정 회장은 문화체육관광위 현안 질의와 국정감사에서도 그는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정면 돌파를 선택하는 모습이었다.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회장직 4선 도전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문에는 “여러 가지 생각하고 있다”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4선 도전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축구협회 사유화와 관련해서는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현대계열 기업들이) 매년 축구계에 1500억 원 투자하는 부분도 고려해 주시길 바란다”, “남녀 프로팀을 4개 이상 운영하고, 연령별 대표팀도 10개 이상 운영한다”고 했다. 마치 ‘그동안의 공을 인정해 달라’는 식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처럼 들렸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얼마 전 한국을 찾았을 때는 “감독 선임에 관해 FIFA에서도 많이 하긴 했는데 (현재 왜 논란이 되고 있는지) 잘 이해를 못하셨다”며 “전력강화위원회에서 추천을 했고 저희가 적절한 조치를 해 임명했다”고 설명했다고 취재진에 말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하는 기색이었다.
5일 문체부 특정감사 최종 결과 발표에 따르면 위르겐 클린스만 전 대표팀 감독이나 홍명보 현 감독의 선임 절차 위반뿐만이 아니다. 축구협회 운영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문체부는 정 회장에 대해 종합적으로 책임을 물어 자격정지 이상의 징계를 요구했다.
최현준 문체부 감사관은 이날 정 회장과 축구협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중징계를 내린 이유는 대한축구협회 회장이라는 자리는 축구협회를 대표하고 사무를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다”라며 “따라서 그 누구보다 축구협회의 규정과 절차를 준수하고 이사회를 존중할 책임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국가대표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스스로 규정을 위반하는 개입을 했다”고 했다.
사실상 정 회장도, 축구협회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인다. 물론 정 회장 입장에서는 모든 게 납득 안 될 수 있는 대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축협을 향한 셀 수 없는 비판들이 축구협회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 회장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대중들을 향한 진정어린 사과가 아닐까. 진심으로 이런 상황까지 내몰리게 된 본인과, 축구협회를 위해서라도 사과는 꼭 필요하다.
김진수 기자 kjlf200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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