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의 민족’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은 창작 뮤지컬 ‘스웨그에이지’는 공연장에서 떼창이 울려 퍼지는 진풍경을 만들었다. 서울예대 학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창작 뮤지컬계 대표적 성공사례다. 스웨그에이지의 연출을 맡아 입봉작으로 대성공을 거둔 우진하 연출을 만났다.
전공 수업으로 출발해 3년에 거쳐 준비한 데뷔작 ‘스웨그에이지’가 우진하 연출의 대표작이다. 조선 최초 소방관의 이야기를 다룬 ‘멸화군’에 이어 지난해 청춘의 삶과 고민을 녹인 ‘청춘소음’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창착 뮤지컬에 특화된 연출력으로 존재감을 굳혔다.
◆‘스웨그에이지’는 내 운명…데뷔작 입봉스토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2017년 서울예대(서울예술대학교) 학생들의 학사 창작 뮤지컬 ‘외쳐, 조선!’이 시작점이었다. 학교 공연이 상업 공연으로 발전했고, 재연과 삼연까지 이어졌다.
음악과 안무에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했다. 국악과 시조에 힙합과 랩의 요소에 더해 ‘가장 한국적이면서 신선한 창작 뮤지컬’ 탄생으로 주목받았다. 극본, 작곡, 연출, 안무까지 모두 신예들의 합작이었다는 점도 이목을 끈 부분이다. 그 결과 ‘스웨그에이지’는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11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되며 화제를 모았다. 그 해 양희준, 김수하가 남녀신인상을 받은 데 이어 다음 해에는 작품상, 안무상, 남자신인상(이준영)을 받으며 ‘신인등용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우진하 연출은 대학 시절 수업 과제로 제출한 이 작품의 연출을 시작해 수년 간 함께했다. 학사 창작 뮤지컬으로 입봉에 성공한 전무후무한 사례로 후배들에겐 롤모델로 존경받고 있다. 우 연출은 “제작자가 작품을 보러 오셨다가 좋은 기회가 닿았다. 보통은 작가, 작곡가만 함께 가는데, 연출과 배우진 등 학교에서 제작한 분들이 그대로 옮겨갔다. 뮤지컬계에서도 대표 사례에 꼽힌다”고 소개했다.
성공한 연출가의 학창시절은 어땠을까. 우 연출은 “대학교 2학년까지는 배우가 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진지하게 진로를 결정하면서 연출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배우도 연출도 흥미로웠지만, 연출할 때 능력을 더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종 교내 행사에서 연출을 맡으면 결과도 좋았다. 전공을 살려 연출을 택했고, ‘내 작품을 만들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학교에 복학해 ‘스웨그에이지’가 탄생했다.
교내 공연이 상업극 발전하면서 변화도 많았고 노력도 컸다. 공연장의 규모도 제작비도 월등하게 커졌다. 인터미션을 포함해 180분이었던 공연은 150분으로 줄었다. 교내 공연이 ‘하고 싶은 거 다 해’의 느낌이었다면, 초연을 준비하면서는 대본만 6000번 이상 수정했다. 대본, 음악으로 시작해 연출 콘셉트 자체까지 계속해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수정해서 발전시켜 나갔다.
◆“뮤지컬 연출가는 ‘선장’…리더십이 중요하죠.”
공연의 연출자는 어떤 역할을 할까. 우 연출은 “영화에서 감독이 하는 역할을 공연에서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출자와 각 분야의 감독들이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결과물을 만든다. 모든 파트와 협업하면서 최종 결정을 조합해 완성본을 만들어내는 역할이다. 프리프로덕션 과정을 거쳐 약 두 달 연습 기간을 가진다. 그 과정에서 배우들의 동선, 호흡, 시선 등의 디테일을 잡아 나간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연출의 역할이 크다면 그 이후는 무대 감독의 몫이 된다.
우 연출은 “우스갯소리로 연출 전공은 졸업하자마자 백수가 된다고 이야기한다”며 웃어 보였다. 연극과 내에도 연출, 음향, 조명, 무대 등 다양한 파트가 있다. 그 중 연출은 ‘잘 조합해서 좋은 그림을 만드는’ 일이다.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제작자는 ‘선주’ 연출을 ‘선장’이라 정의한 그는 “선장이 배를 잘못 이끌면 침몰한다. 리더십은 기본”이라고 말한다. 선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견을 조율하며 유연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작품을 보는 시선이나 연출력은 리더십 다음이다. ‘나보다 이 작품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자신감으로 선원들에게 신뢰를 주는 선장이 되고자 한다.
‘스웨그에이지’에 이어 ‘멸화군’은 2017년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 리딩 공연, 2020년에는 창작산실-올해의 신작 후보로 선정됐고, ‘청춘소음’은 안산시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 리딩 공연에 이어 창작산실-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돼 관객을 만나게 됐다. 우 연출은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동시대성을 가진 소재와 더했다. 여기에 한국적 요소가 들어가 신선함을 준 것이 요인인 것 같다”고 선정 비결을 귀띔했다.
◆꽃길로 시작해 강단에 서기까지
스물아홉, 입봉작으로 대박을 쳤다. ‘꽃길’이 아니냐는 물음에 “조심스럽지만 사실”이라고 답하며 웃었다. 실력에 이어 운도 따랐다. 우 연출은 “한 작품을 준비하면 보통은 5년, 길게는 10년도 걸린다. 약 3년간의 준비 시간은 정말 짧은 편에 속한다”고 했다. 그 뒤엔 작품과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우 연출은 “젊기 때문에 가졌던 자신감과 열정이 있었다. 밖에 나와서 일하다 보니 부족한 게 많더라”고 돌아봤다.
‘스웨그에이지’ 앙코르 공연을 시작하면서 코로나가 공연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공연을 중단한 기간도 있을 만큼 심각했다. “당시엔 공연장에 가는 자체가 꺼려질 때”면서 “1년도 안 돼서 예술의 전당 공연을 잡았는데, 객석이 30%만 채워질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누구를 위한 공연인가’ 생각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쇼 머스트 고 온(Show Must Go On)’을 되새겼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문화예술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코로나의 위협 속에서도 스태프와 배우의 개런티까지 깎아가면서도 무대는 계속됐다. 연출가에겐 의미 있는 예술의 전당 공연이었다. 무사히 마치고 나서야 ‘해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마냥 환하기만 한 꽃길은 아니었다. 우 연출은 “2019년 ‘스웨그에이지’ 초연부터 매년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고민했다”고 고백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우 연출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다”고 현실적인 문제점을 짚었다. 교내 연출작으로 입봉의 기회를 얻은 그이기에 주변에서는 돈을 잘 벌 것이란 오해가 크다고. “실상을 이야기하면 놀라는 분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우 연출은 현재 모교에서 지도교수로 창작 뮤지컬을 강의하고 있다.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후학양성의 꿈을 키웠다. 연출도 강의도 소통하고 가르친다는 접점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하고, 이야기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에 장점을 느꼈다.
◆브로드웨이 향해…목표는 ‘토니어워즈’
평소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는 우 연출은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뮤지컬이 예능적 목적을 가진 ‘쇼’에서 시작된 것처럼 작품에 밝은 에너지와 희망이 녹아있길 바란다. “뮤지컬이 어둡고 어려운 이야기도 많지만 나는 할머니가 봐도 재밌고 조카가 봐도 쉽고 재밌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반면 조금 달라진 장르를 연출하고 싶은 소망도 있다.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어둡고 정적인 장르를 통해 평소의 색깔과는 다르지만, 이조차 잘해낼 수 있다는 강점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우 연출이 첫 작품의 상견례(배우와 제작진들이 첫 인사하는 자리)때부터 다짐하던 구호가 있다. “고 아시아, 고 웨스트엔드, 고 브로드 웨이!”라는 외침이다. 웨스트엔드(West End)는 미국 브로드웨이와 함께 뮤지컬의 명소로 불리는 영국 런던의 연극을 뜻한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무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다짐이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급격히 성장했다. 지난해 티켓판매액은 사상 최고치인 5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우 연출은 “새 작품도 많아졌고, 신진 창작자도 많이 나오고 있다”면서도 “잘 되는 작품과 안 되는 작품의 편차가 크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무대 공연이 가지는 대체할 수 없는 현장성이 있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독보적인 강점이다. 매일 같은 공연이지만, 또 매일 다를 수밖에 없는 게 공연”이라고 강조했다. 우 연출은 ‘회전문 관객(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는 관객)’을 언급하며 “공연은 캐스팅마다 달라지고, 배우들과 현장의 컨디션에 따라 또 달라진다. 미리 찍어두는 방송과는 다르다. 같은 구성을 만든다 해도 매번 달라지는 현장성이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이다”라고 자신했다.
아카데미엔 ‘기생충’ 봉준호, 에미상엔 ‘오징어 게임’ 황동혁이 있었던 것처럼 토니어워즈엔 자신의 이름을 올리길 기대하고 있다. 우 연출은 K-뮤지컬의 성과를 추켜세우며 “한국 뮤지컬 시장이 커지면서 해외 진출도 많아졌다.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토니어워즈에서 우리 작품이 수상하기도 한다. 우리 뮤지컬이 세계로 가는 게 더는 꿈 같은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밝은 미래를 그렸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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