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흑백요리사)은 맛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는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맞붙는 100인의 요리 계급 전쟁을 담았다.
14일 넷플릭스 톱 10 웹사이트에 따르면 ‘흑백요리사’는 지난달 30일부터 6일까지 400만 시청 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4개국 1위를 포함, 총 18개국 톱 10에 올랐다. 9월17일 공개 이후 3주 연속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TV(비영어) 부문 1위 기록이었다. 넷플릭스 코리아 예능이 3주 연속 글로벌 1위를 한 것은 최초다.
흑백요리사 붐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2021년 9월 공개된 오징어게임은 당시 공개 직후 46일 연속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돌풍을 일으켰다. 약 석 달 만에 2억6500만 시청 수를 기록한 넷플릭스 역대 최고 인기작으로 남았다. 시즌1 신드롬을 발판 삼아 오는 12월 공개되는 시즌2에 이어 2025년 시즌3 제작도 일찌감치 확정된 상태다. 이로 인해 흑백요리사는 ‘넷플릭스 예능판 오징어게임’이라는 수식어까지 달렸다. 요리에 얽힌 한국의 식문화를 콘텐츠로 세계에 알릴 수 있다는 점도 오징어게임 못지않은 호재다.
◆촘촘한 미션, 치열한 경쟁…새롭게 등장한 스타셰프
흑백요리사는 스타 셰프 최현석을 필두로 중식 그랜드 마스터 여경래, 대한민국 최초 여성 중식 스타 셰프 정지선, 대한민국 16대 조리명장 안유성, ‘2010 아이언 셰프’ 우승자 에드워드 리 등 화려한 백수저 셰프들이 경연에 나선다는 자체로 화제가 됐다. 경연으로 얻을 것 없는 ‘톱클래스’ 셰프들은 요식 업계 부흥을 위해 합류했다.
80명의 흑수저 셰프는 ‘생존’, ‘탈락’, ‘보류’를 통해 20명으로 가려졌다. 20인의 백수저는 이를 흑수저 셰프들의 머리 위에서 내려다봤다. 백수저를 넘어서겠다는 흑수저들의 경쟁심을 자극할 만한 설정이었다.
본격적인 대결에서 저명한 백수저 셰프들이 탈락의 고배를 마신 건 ‘블라인드 테스트’의 여파였다. 그럼에도 여경래 셰프에게 도전한 흑수저 중식 셰프들, 평생 동경의 대상이던 에드워드 리를 만나 멋진 승부를 보여준 고기깡패, 한식대가 이영숙이 보여준 ‘덜어냄의 미학’ 등을 통해 반전과 진정성을 동시에 보여줬다.
흑과 백, 고기와 생선으로 나뉘어 진행된 팀전에서는 주방에서 ‘팀플’로 움직이는 셰프들의 리더십과 경쟁력을 엿볼 수 있었다. 같은 재료, 같은 장르의 셰프들이라도 전혀 다른 조리법으로 요리를 완성했고 재료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로 치열하게 싸워나갔다. 예능이지만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전쟁’이 펼쳐졌다. 반면 “(백수저를) 제껴보자”라며 칼을 갈던 흑수저들도 경쟁을 거듭하며 존중을 쌓아나갔다.
예능 프로그램답게 반전의 참가자, 참가자 간의 갈등 등도 부각됐다. 최고 반전 캐릭터는 요리하는 돌아이였다. 뚱한 표정, 거침없이 내뱉는 비속어로 자칫 비호감 캐릭터로 전락할 뻔했으나 심사대 앞에서는 누구보다 초조하고 여린 모습으로 반전을 선사했다.
뻔한 식재료로 뻔하지 않은 요리를 만드는 셰프들의 창의성도 경이로웠다. 넘치는 자신감과 뒷받침하는 실력으로 최종 우승자가 된 나폴리 맛피아만큼이나 화제가 된 이는 자신의 한국 이름 ‘이균’을 알린 에드워드 리였다. 미국에 거주하지만 뿌리만은 한국에 두고 한식의 맛과 문화를 잊지 않으려는 그의 진심은 전 세계 시청자의 마음에 닿았다.
섭외 당시 당연히 심사위원인 줄 알았다는 최현석 셰프는 끝까지 도전 정신을 놓지 않았다. ‘냉장고를 부탁해’로 쌓은 경연 노하우와 예능감은 흑백요리사에서도 빛났다. 정파(正派) 안성재 셰프와 대척점에 있는 극 사파(邪派) 최 셰프의 관계성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포인트였다. 마늘 뺀 봉골레로 ‘그리시(greasy)하다’는 치명적 심사평을 받아든 최 셰프가 레시피를 복기하다 결국 “나는 틀리고 안 심사위원이 맞았다”고 인정한 장면은 둘의 마약 같은 관계성을 그려냈다.
◆노 젓는 셰프·요식업계…파인다이닝도 관심↑
창의적인 요리와 이를 맛본 심사위원들의 시식 평을 듣고 나면 자연스럽게 참가자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검색하게 된다. 덕분에 ‘파인다이닝(fine dining)’을 향한 관심도 급증했다. 파인다이닝의 사전적 의미는 ‘격식을 갖추어 비싼 레스토랑에서 제공되는 좋은 음식들을 먹는 것’이다. ‘좋음, 품질 높음’을 뜻하는 ‘파인(fine)’과 ‘격식을 갖춘 식사’를 뜻하는 ‘다이닝(dining)’을 결합해 이른바 고급스러운 만찬을 의미한다.
흑백요리사 이전의 파인다이닝이 그저 ‘비싼 요리’였다면 이제는 메뉴를 구성한 식재료의 어울림과 조리 방법, 그리고 얽힌 스토리 텔링까지 담긴 종합 예술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최현석 셰프의 레스토랑 쵸이닷의 디너는 19만8000원, 올 초 안성재 심사위원의 모수서울 디너 가격은 37만원이었다. 높은 가격에도 ‘미식 경험의 정점’이라 불리는 파인다이닝을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제작진이 상상한 ‘요식업의 부흥’이 이런 결과였을까. 흑백요리사의 흥행 성공으로 ‘물 들어와서 노 젓는’ 셰프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이미 오너 셰프 혹은 헤드 셰프로 일하고 있던 대부분 참가자의 업장은 예약조차 어려울 정도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노 젓는 출연진이 있고 유명 유튜브 채널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이들도 다수다. 결승에서 맞붙은 나폴리 맛피아와 에드워드 리는 tvN 인기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안성재 셰프는 JTBC ‘뉴스룸’ 출연을 앞두고 있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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