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겠지만, 많은 응원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지난 주말 초등 4학년인 딸과 함께 서점에 들렀다. 관심사가 다르기에 각자의 책을 살펴보고 있던 중 딸아이가 소리쳤다. “아빠, 손흥민이다.” 아빠가 체육부 기자라는 것을 아는 딸은 재촉하듯 손을 잡고 한편에 나열된 도서 코너로 향했다. 그곳에 나열된 책은 ‘후(WHO) 시리즈(다산 어린이)’ 중 손흥민 편이었다. 최근 한국 축구대표팀이 핫이슈인 것을 아는지, 손흥민 외에도 김민재, 이강인이 함께 나열돼 있었다. 걸그룹 ‘아이브’에 빠져 있는 딸은 축구엔 관심도 없다. 그런데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은 알고 있었다.
세 선수의 책을 차례로 둘러보면서 한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지난 5일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팔레스타인과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조별리그 B조 1차전 경기였다. 이 경기는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홍명보 감독이 10년 만에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후 첫 경기였다. 그래서였을까. 공격에서도, 수비에서도 2% 부족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날 경기에서 가장 뜨거웠던 것은 홍 감독의 전술, 선수들의 활약 여부가 아니었다. 바로 ‘야유’였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대한축구협회와 정몽규 협회장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전달했고, 또 홍 감독이 전광판 화면에 잡힐 때마다 ‘우~’라며 야유를 보냈다. 손흥민의 슈팅, 그리고 홍 감독의 표정이 영상에 잡힐 때면 응원과 야유가 동시에 나오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경기 후 김민재는 관중석을 찾아가 “좋은 응원 해주세요. 부탁 드릴게요. 부탁드릴게요”라고 외쳤다. 주장 손흥민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미 결정된 가운데 저희가 바꿀 수는 없는 부분이다. 어렵지만 많은 응원과 사람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강인 역시 “선수들은 100% 감독님을 믿고, 감독님을 따라야 한다.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겠다”면서도 “팬 여러분들 당연히 많이 아쉽고, 많이 화가 나겠지만, 그래도 꼭 더 많은 응원과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 서점가에서도 아이들이 많이 찾는 도서의 주인공, 걸그룹 밖에 모르는 초등학생도 아는 세 선수가 동시에 한국 축구팬들에게 “응원해달라”고 팬들에게 부탁했다.
부탁했다. 응원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응원이 필요하다고. 간절하게.
물론 팬들이 선수단을 향해 야유한 것은 아니다. 홍 감독을 향한 비판이었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유는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선수들 입장에서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경기장 안에서 충분히 영향을 받을 수 밖에서 없다.
심리학 용어로 ‘상황적 압력(Situational Pressure)’은 개인이 특정 환경이나 상황에서 요구되는 행동을 수행해야 할 때 느끼는 압박감을 의미한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이미 경기전 감독 선임 과정 및 홍 감독 선임으로 인한 논란을 인지하고 있었고, 여기에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었다. 이 경우 자신감 위축, 불안을 경험한다.
이와 더불어 ‘상황적 억제(Situational Inhibition)’을 겪었다. 이는 특정 상황에서 불안이나 긴장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자신감을 잃고 행동이 위축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상황적 압력을 받는 와중에 선수가 아닌 홍 감독에 보내는 야유라고 하더라도, 그 큰 소리의 야유를 듣는 선수들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날 팬들의 야유는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그들을 향한 야유가 아닐지언정, 그 큰 함성의 야유는 선수들이 직접 경험할 수 밖에 없어다.
협회와 홍 감독에 대한 팬들의 불신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이 선수들에게 영향을 줘선 안된다. 이는 경기력 저하라는 결과로 나온다. 팬들의 야유는 감독이 아닌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대표팀은 오는 10일 오만과 2차전 원정에 나선다. ‘승리하지 못하면 위기에 놓인다’라는 부담감을 안고 싸워야 한다. 이럴때 일수록 응원이 필요한 시기다. 홍 감독을 향한 야유는 나중에 해도 충분하다. 지금은 어쨌든 응원만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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