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제79주년 광복절 첫 방송으로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를 방영했다. 기미가요와 기모노 입은 여성들이 나오는 오페라가 광복절에 공영방송 전파를 타자 시청자는 황당함을 넘어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KBS는 제작진의 불찰이라며 진상 조사 방침을 밝히며 사과했다.
KBS는 15일 문화예술 프로그램 ‘KBS 중계석’을 통해 일본 배경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방송했다. 6월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공연 녹화본이다. 19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한 나비부인은 일본에 파견 중인 미군 대위와 게이샤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여자 주인공은 기모노를 입고 연기하고 등장인물 대부분이 기모노를 입는다. 주인공의 결혼식 장면에서는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나오고 일본 군가도 등장한다.
왜색이 짙은 작품이 공교롭게도 광복절 79주년인 이날 오전 0시부터 공영방송 KBS를 통해 방송된 것. 광복절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기모노·기미가요 방송을 선보이는 KBS에 누리꾼은 들끓었다. 방송 직후 KBS 시청자상담실 자유게시판에는 “공영방송이 이래서는 안 된다” “일본 방송 아닌가” “제정신으로 한 편성이 맞나. 기가 막힌다” 등 비난이 쏟아졌다.
KBS 중계석은 문화예술 전 부문에 걸쳐 공연 및 이벤트를 녹화해 해설·연주자들과의 인터뷰와 함께 방송함으로써 고급문화의 대중화에 기여하겠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나비부인은 1904년 초연된 유명 오페라로 푸치니의 걸작 오페라 중 하나다. 당연히 나비부인 작품 자체를 두고 왈가왈부하겠다는 반응은 아니다. 광복절은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날이다. 그런데도 굳이 왜색이 짙은 일본의 근현대 배경의 작품을 광복절 첫 방송으로 선보인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다.
심지어 해당 방송 마지막 장면에서 KBS는 “이 프로그램은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되었습니다”라고 자막을 띄웠다. 공영방송인 KBS가 제작하는 방송마다 해당 자막이 나오지만 국민의 소중한 수신료로 광복절에 기모노와 기미가요를 선보였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공감받기 어려워 보인다.
논란이 거세지자 이날 KBS는 하루도 안 돼 “우려와 실망을 끼친 점에 대해서 사과를 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KBS는 “7월 말에 방송할 예정이었으나 올림픽 중계로 뒤로 밀리면서 광복절 새벽에 방송되게 됐다”며 “바뀐 일정을 고려해 방송 내용에 문제는 없는지 시의성은 적절한지 정확히 확인, 검토하지 못한 제작진의 불찰로 뜻깊은 광복절에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방송 경위를 진상 조사해 합당한 책임을 묻는 한편 이날 방송예정이던 2부는 다른 공연 방송으로 대체하겠다고 알렸다.
나비부인 논란 속 광복절 오전엔 KBS가 태극기 그래픽을 거꾸로 사용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 생중계 직전 방송된 KBS1 일기예보에서 기상캐스터가 날씨를 안내하는 도중 사용된 그래픽에서 태극기의 모양이 좌우반전된 채로 송출됐다. 중앙의 태극무늬 주변 건곤감리의 위치가 반대로 전파를 탄 것. 상식 수준의 기본적인 검토조차 부실한 공영방송의 안일함에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여기에 더해 KBS는 이날 ‘독립영화관’을 통해 이승만 다큐멘터리 ‘기적의 시작’을 방영한다. 독립영화관은 매주 금요일 방송되는 프로그램이지만 하루 전인 광복절에 굳이 추가 편성했다. 기적의 시작은 대한민국 건국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표현하는 등 이승만 전 대통령을 과도하게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앞서 영화진흥위원회에 독립영화 인정을 신청했다가 ‘객관성이 결여된 인물 다큐멘터리’ 등의 이유로 불인정 판단을 받았다.
내부에서는 강력한 반발이 나왔다. 민주노총 언론노조 KBS본부,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12일 “KBS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 왜곡 다큐를 편성했다”고 항의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편성 취소를 요구하는 시청자 청원은 15일 오전 기준 약 7300명이 넘는 인원이 동의했다. 다만 사측은 “KBS 편성본부에서는 독립적인 편성권에 의해 방송 편성을 결정했고, 광복절을 맞아 다양성 차원에서 해당 다큐 영화를 선정, 방송하게 됐음을 알려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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