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드라마였다.
안바울(남양주시청·세계랭킹 13위)은 한국 유도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2015 아스타나 세계선수권대회,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 등에서 정상에 올랐다. 다만, 올림픽 금메달과는 좀처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2020 도쿄(2021년 개최) 대회서 각각 은메달,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4년생 안바울은 어느덧 만 30세가 됐다. 이번 ‘2024 파리올림픽’이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컸다. 더 다부진 각오로 나섰다.
이번에도 ‘한’을 풀지 못했다. 심지어 개인전서 예상보다 일찍 짐을 싸야 했다. 남자 66㎏급 16강전서 구스만 키르기스바예프(카자흐스탄)에게 소매들어 허리채기를 당했다. 절반패로 고개를 숙였다. 자신보다 세계랭킹 13계단이 낮은 상대였다. 그것도 상대 전적서 2승 무패로 앞선 상태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경기 후 안바울은 침통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감 있게 임했는데, 준비한 것을 다하지 못한 듯하다”고 털어놨다.
‘맏형’으로서 책임감이 컸을 터. 절치부심하며 유도 혼성단체전에 나섰다. 혼성단체전은 2020 도쿄 대회 때 처음 도입됐다. 남자 3명(73kg급·90kg급·90kg 이상급)과 여자 3명(57kg급·70kg급·70kg 이상급)이 출전한다. 각 체급과 관련 개인전 체급이 낮은 선수는 출전할 수 있지만, 높은 체급은 출전할 수 없다. 한국은 체급을 맞추기 어려웠다. 안바울(남양주시청)이 남자 73㎏급에, 여자 63㎏급 김지수(경북체육회)는 여자 70kg급에 출격해야 했다. 남자 81㎏급 이준환(용인대)은 국제무대 경험이 적은 한주엽(하이원)과 번갈아가며 90㎏급에서 싸웠다. 최중량급 김민종(양평군청)은 부상 투혼을 펼쳤다. 남자 100㎏ 이상급 결승전서 무릎을 다쳤다.
투기 종목서 체급은 굉장히 중요하다. 엄청난 핸디캡을 안고 뛰는 셈이었다. 체력 소모 자체가 평소보다 몇 배 이상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매 경기 혈투를 벌였다. 버티고 또 버텼다. 튀르키예와의 16강전부터 시작해 프랑스와의 8강전, 우즈베키스탄과의 패자부활전, 독일과의 동메달 결정전 등 무엇 하나 쉬운 경기가 없었다. 안바울의 경우 도합 35분49초 동안 매트 위를 지켰다. 한 경기 정규시간이 4분인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치열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동메달 결정전이다. 4일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경기장이었다. 안바울은 이날 매트를 두 번이나 밟았다. 3-2로 앞선 6경기서 이고어 반트크에 패했다. 체급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결국 연장전인 골든 스코어로 이어졌다. 단체전의 경우 골든 스코어는 추첨으로 체급을 정해 재경기를 치른다. 그 결과 남자 73㎏급으로 정해졌다. 안바울은 “체급이 당첨되는 것을 보고 그저 이겨야겠다는 생각밖엔 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끝장 매치. 이미 체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 전 당한 패배를 돌려주고자 이를 악물었다. 끈질기게 맞서 싸우며 기회를 노렸다. 상대에게 지도 3개를 유도, 5분25초 연장전 끝에 반칙승을 거뒀다. 동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선수단은 누구랄 것 없이 서로를 껴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특히 동생들은 안바울의 이름을 연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안바울은 “나 혼자 한 게 아니라, 다 같이 노력해서 딴 메달이기에 더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의미 있는 메달이다. 올림픽 유도 혼성 단체전에서 한국이 메달을 딴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에 나서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해 한국 유도 대표팀 11명이 전원 시상대에 올랐다. 안바울 개인적으로는 올림픽 3회 연속 메달 획득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한국 유도 선수가 올림픽 3회 연속 메달을 딴 것 또한 최초의 발자취다. 앞서 김원진(양평군청)과 장성호 등이 3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았으나 메달까진 일구지 못했다. 안바울은 “감사하다. 동고동락하며 힘든 시간을 보낸 동료와 메달을 따니 그간의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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