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되겠습니다!”
과녁을 향해 힘껏 시위를 당긴다. 1점 차이로 희비가 엇갈린다.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의 무게가 상당하다. 양궁을 일컬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 말하는 이유다. 태극궁사 임시현(한국체대)은 그마저도 즐겨보려 한다. 생애 첫 올림픽 무대, 그것도 에이스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나서지만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다. 임시현은 “한 번 금메달 맛을 보니 욕심이 나더라. 다함께 재밌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 혜성처럼 등장한 궁사
임시현은 지난해 한국 양궁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AG·2023년 개최)을 앞두고 치른 국가대표 선발전서 당당히 1위에 올랐다. 2020 도쿄하계올림픽(2021년 개최)서 3관왕에 오른 안산(광주은행) 등 쟁쟁한 선배들을 모두 제쳤다. 반짝 활약이 아니었다. 실제 AG 대회서 압도적인 기량을 뽐냈다. 여자 개인·단체전, 혼성전을 모두 석권했다. 37년 만에 AG 양궁 3관왕이라는 대업을 세웠다. 만 20세에 ‘에이스’ 칭호를 얻게 된 배경이다.
큰 무대 경험은 임시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2년차 징크스따윈 없었다. 이번에도 1위 자격으로, 2024 파리하계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했다. 웬만한 국제대회 메달보다는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서 두 메이저 대회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어진 2차례 월드컵 개인전에서도 우승을 맛봤다. 위기도 있었다. 지난달 열린 3차 대회서 개인전 두 번째 경기 만에 탈락한 것. 아쉬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어진 단체전서 금메달을 합작하며 패배의 흔적을 털어냈다.
◆ 우연한 만남, 특별한 성장
사실 시작은 우연한 만남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에 양궁부가 생겼다. 방과 후 활동으로 처음 활을 잡았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임시현에게 꼭 맞았다. 금방 두각을 드러냈다. 물론 엘리트 선수로서의 길을 걷는 것은 쉽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예기치 못한 부침을 겪기도 했다. 본가인 강원도 강릉을 떠나 원주에서 생활하게 됐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서 살다 보니 심적으로 어려움을 컸다. 기대만큼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고비마다 임시현을 일으킨 것은 정직한 땀방울이었다. 재능이라는 새싹을 키우는 물줄기와도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훨씬 더 가파른 성장세를 그려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도 마찬가지. 묵묵히 고된 훈련을 이겨냈다.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파리 앵발리드 사로와 같은 환경을 진천선수촌 양궁장에 조성한 뒤 흔들림 없는 로봇과 대결을 펼치는 것은 기본. 거센 바람, 세찬 비 그리고 축구장(전주월드컵경기장) 소음 등 각종 변수에도 대비했다.
◆ 첫 올림픽, 가장 높은 곳으로
한국 양궁은 자타공인 세계 최강이다.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은 역대 올림픽 양궁 종목에서 금메달만 27개를 수확했다. 조직위원회는 한국 양궁에 대해 “지금껏 한 대회서 양궁 종목을 석권한 유일한 나라”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 스포츠 역사상 동계와 하계 올림픽 종목을 통틀어 올림픽 최다 금메달이기도 하다. 미국 스포츠전문잡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를 비롯한 많은 매체들은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이 금메달을 추가할 것이라고 봤다.
임시현이 바라보는 곳은 분명하다. 시상대 가장 높은 곳이다. 내심 전 종목 싹쓸이까지도 노린다. 양궁 성적표에 따라 한국 선수단의 목표달성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 임무가 막중하다. 특히 전훈영(인천시청), 남수현(순천시청)과 함께 나서는 여자 단체전은 올림픽 10연패 대업이 걸려 있다. 선배들의 기운을 이어받아 전무후무한 역사를 쓰겠다는 각오다. 임시현은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 출전할 수 있어 감사하다. 올림픽에서 최고가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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