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주는 위압감, 그대로다.
프로야구 한화를 이끄는 김경문 감독에게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맞대결에서 거둔 6-1 쾌승은 특별했다. KBO리그 대표 사령탑으로서 빚어낸 900번째 승리였기 때문. 그의 감독 통산 성적은 900승 31무 776패가 됐다.
2018년 NC를 이끌다 지휘봉을 내려둔 그는 896승(30무774패)에서 6년간 긴 쉼표를 찍고 있었다. KBO리그 현장을 떠나 국가대표팀 지휘, 미국 연수 등을 거치며 야구와의 연을 놓지 않았던 그는 지난 3일 성적 부진을 이유로 물러난 최원호 전 감독을 이어 한화의 제14대 감독으로 공식 취임했다. 한화의 가을야구 진출이라는 임무를 받아 들고 대전에 발을 들였다.
멈춰있던 그의 승리 시계도 함께 돌았다. 감독 복귀전이었던 4일 수원 KT전을 8-2로 승리하더니, 내친김에 무려 시리즈 스윕승까지 일궜다. 단숨에 899승을 마크하며 홈 대전에 입성해 NC를 상대했지만, 1무2패로 오름세가 한풀 꺾였다. 포기는 없었다. 과거 두산을 오랜 시간 지휘하며 정들었을 잠실구장에서 곧장 승리를 빚어내며 대망의 900승 고지를 밟았다.
프로야구팀 지휘봉을 든 지 20년 만에 빚은 역사적인 이정표다. 그는 2004년 두산 감독으로 선임돼 사령탑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해 4월5일 감격스러운 감독 첫 승을 맛본 후, 꾸준히 승리를 적립하며 명장 반열에 다가섰다. 2011년까지 7년간 두산을 이끌며 512승을 수확했다. 이어 새로 창단한 NC의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해 384승을 추가했고, 전격 부임한 한화에서 부족했던 4승 퍼즐을 채웠다.
KBO 사령탑으로는 역대 6번째 대기록이다. 김응용(1554승), 김성근(1388승), 김인식(978승), 김재박(936승), 강병철(914승)이라는 전설적인 사령탑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간다. 한화와 3년 20억원 계약을 체결한 만큼, 이대로 승수를 쌓아 역대 3번째 1000승까지 바라본다.
기록 달성에 성공한 김 감독은 “한화에서 저를 써주셔서 이렇게 현장에 돌아올 수 있었다. 감독의 승리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하는 것”이라는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이어 “선수들에게 고맙다. 코칭스태프, 팬 등 고마운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나 혼자 기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공을 돌렸다.
나아갈 일만 남았다.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한화 지휘봉을 잡아 팀의 포스트시즌(PS) 진출을 이끌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과거의 그에게 그리 어려운 미션은 아니었다. 두산에서 8번의 시즌 중 6번, NC에서 6번 중 4번이나 PS에 닿았다. 한화가 기대하는 면도 그의 검증된 커리어에 있다. 김 감독은 “우선 5할 승률을 맞추는 게 우선이다. 그 다음 PS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겠다고 전했다.
결국 도전의 끝에는 한국시리즈 우승만이 자리한다. 김 감독도 숱한 가을야구 속에서 준우승만 4차례 경험했을 정도로 우승 갈증이 깊다. 한화의 손을 잡고 나선 위대한 도전,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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