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하는 국기원장으로 남고 싶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운동을 떠올려 보자. 열이면 열, 태권도라는 답을 낼 것이다. 여전히 동네 곳곳에는 태권도장이 즐비하며, 하얀 도복에 형형색색 띠를 두른 아이들이 사범님을 향해 건네는 우렁찬 인사도 쉽게 들을 수 있다.
태권도에 ‘국기(國技)’라는 명칭이 붙어있는, 태권도를 관장하고 보급하기 위해 설립된 중앙도장에 ‘국기원(國技院)’ 현판이 걸려있는 이유다. 그곳을 이끄는 16∼17대 수장 이동섭 국기원장은 이에 걸맞은 품격을 만들어 가기 위해 지금도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태권소년이 ‘국기’를 만들기까지
유독 몸이 허약했던 ‘소년 이동섭’은 “상남자로 커라”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이끌려 태권도와 연을 맺고 건장한 태권도인으로 거듭났다. 전남 고흥 출신인 그는 “전남 대표 선수로 대회도 많이 나갔다. 그 시절을 감안하면 키도 180㎝로 매우 큰 편이라 나가기만 하면 우승했다. 그게 동력이 돼 태권도 공인 9단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 설명했다.
문무를 함께 갖췄다. 체육학과에 진학해 학사,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정치외교학, 법학 공부까지 섭렵한 그는 무도 경찰 1기 특채로 경찰 공무원을 시작해 검찰 강력부, 특수부 수사관을 역임했다. 이후 정계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돼 최초의 ‘태권도 9단’ 국회의원 타이틀을 얻었다. 태권도를 향한 그의 열정에 힘이 실린 계기였다.
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바로 ‘국기 태권도 법제화’다. 태권도는 1971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기태권도’ 휘호를 받고 관습적 의미의 국기로 인식돼 왔다. 진정한 뜻의 법적인 국기가 아니었다. 이에 의미를 부여하려 이 원장이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2017년 국회 소관 법인 국회의원 태권도연맹을 창립했다. 이어 1년3개월 동안 여야 막론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총 228명의 서명을 받아 해당 법안을 발의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2018년 3월30일에 국기 태권도 법제화 내용이 담긴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태권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이 원장은 “세계적으로 봐도 체육을 국기로 지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또 그로 인해 나라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법도 만들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끝이 아니다. 우리 문화를 앗아가려는 타국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녹아있다. 그는 “동북공정과 같은 중국의 역사 왜곡, 문화 왜곡 등이 태권도에도 적용된다. 일부 중국인들은 태권도를 달마 대사가 만들었다며 자기 것이라 주장하고, 일부 일본인은 가라데의 아류라고 말하기도 한다”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국기로 못 박음으로써 ‘태권도는 우리 것’이라고 확실한 정체성을 부여하는 역사적인 의미도 담겨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로벌 ‘태권도 대통령’
태권도를 향한 남다른 애정을 발산시킨 그는 2021년 1월 16대 국기원장 보궐선거를 통해 지금의 자리에 도착했다. 1년9개월의 활동 기간 후, 지난해 10월 17대 원장에 재선되며 다시 3년 임기를 소화한다.
‘세계태권도본부’로서의 국기원의 품격을 갖추는 일에 몰두한다. 그는 “국기원의 품·단증 보급 국가가 204개국, 세계 태권도 수련 인구는 약 2억 명으로 추산된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내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고, 국기원장으로서 해외를 다니다 보면 국빈에 가까운 대접을 받는다”며 그 위상을 역설했다.
“얼마 전 두바이에서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태권도 시범을 보고는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계획에 없던 움직임이라 경호원들이 깜짝 놀라 만류할 정도였다. 그렇게 와서는 송판에 내 사인까지 받아 갔다”며 껄껄 웃기도 했다.
또 “수많은 미국 대통령이 국기원으로부터 명예 9단을 받아 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가 직접 만나 명예 단증을 전달하기도 했다”며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왜 태권도인들을 예우하고 단증을 받아 가겠는가. 그만큼 위치가 높아졌다는 뜻”이라고 힘줘 말했다.
다만 한국 태권도 현실에 대한 냉철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해외 위상이 이러한데, 정작 우리 정부가 그렇지 않다. 내 자식, 우리 문화를 소홀히 하고 과소평가 한다. 정부 및 고관들이 태권도의 세계적 역할을 인지하고 여러 관계부서를 동원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 ‘제2국기원 건립 사업’을 핵심 과제로 설정한 이유다. 1972년에 개원한 국기원은 51년 세월 속에 노후화를 피하지 못했다. 아직도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과 복도 천정이 석면으로 처리돼 있다. 주요 대회, 행사가 열리는 중앙도장에는 빗물이 새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태권도 위상에 걸맞은 역사적 공간이 간절한 상황이다.
이 원장은 “현재 도봉구 방학동에 3만5000평 부지를 확보했다. 그곳에 제2국기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정부와 긴밀한 협조 속에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라 설명했다. 쉬운 과정은 아니다. 그는 “국비를 사용한다는 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원들, 국회의원, 정부 관계자들과 면밀히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백년대계’
가야 할 길도, 해야 할 일도 여전히 산적해 있다. 몸이 두 개여도 부족할 정도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태권도 발전과 저변 확대라는 명확한 기치 아래 수많은 행사와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중이다.
이 원장은 “모든 일은 미래가 중요한 법이다. 1∼8대 국기원장을 역임하신 김운용 원장께서 태권도의 지난 50년을 이끌어 오셨다. 저는 그 뒤를 이어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하는 원장이 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제2국기원 건설을 비롯해 세계태권도본부로서의 국기원을 위해 해외 지원, 지부, 사무소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며 “이미 지난해 세계태권도연맹과 합의서를 체결해 표준화되고 체계적인 태권도 기술 보급과 정착에 힘쓰고 있다. 100여 개국과 논의 중이다. 연말까지는 200여 나라와 양해각서를 체결할 예정”이라 전했다.
그는 “역대 원장들이 해내지 못한 새로운, 발전된 국기원을 만드는 게 목표다. 태권도는 한국인의 얼과 자존심이 서려 있는 체육이다. 그에 걸맞은 멋진 태권도 성지를 만들어 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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