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째 전성기일까. 2023년은 그야말로 엄정화의 해다. 상반기엔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타이틀롤을 맡아 올해 JTBC 드라마 중 시청률 최고 성적(18.5%)을 기록했다. 예능 프로그램 ‘댄스가수 유랑단’을 통해 가수로서 전국을 누볐고, 인기의 척도인 브랜드 광고도 세 편이나 촬영했다. 50대 중반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화제성이다.
그리고 이번엔 스크린 접수까지 나선다. 11일 개봉한 영화 ‘화사한 그녀’(이승준 감독)는 화사한 기술이 주특기인 전문 작전꾼 지혜(엄정화)가 마지막 큰 판을 계획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범죄 오락 영화다.
엄정화는 ‘영화를 잘 봤다’는 취재진의 인사에 “시사회 때 너무 긴장해서 보느라 어지럽더라. 그래도 관객들이 웃어주니까 마음이 놓였다. 다행이다 싶다”면서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짓는다.
이어 “제가 도둑 역할은 한 번도 안 해봤고, 원래 케이퍼 무비(절도 등의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범죄물)를 좋아했다. 우리 영화는 지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서사도 없고 현실만 보여준다. 이게 잘 버무려진다면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했다”라고 밝혔다.
이승준 감독은 화사한 그녀를 준비하며 시나리오 단계부터 1순위로 엄정화를 꼽았다. 영화 속 코미디는 물론이고 액션, 휴먼, 스릴러,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엄정화가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엄정화도 시나리오를 받자 단숨에 읽어 내리며 지혜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고. ‘오케이 마담’, ‘미쓰 와이프’, ‘댄싱퀸’ 등 코미디 장르서 좋은 성적을 낸 엄정화의 ‘촉’이 발동됐다.
엄정화는 “코미디 장르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이 장르만 좋아하는 건 아니고 주어져서 하는 것도 있다(웃음)”면서 “전 코믹한 이야기 안에서도 캐릭터의 감정은 진실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 분위기만 해치지 않는 선에서 깊은 진심을 관객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화사한 그녀는 이 황당한 이야기를 어떻게 웃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끌어갈까 고민이 많았다. 만화 같은 느낌의 영화를 공감할 수 있게끔 하는 지점이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라고 자신의 고민과 철학을 전한다.
1993년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로 데뷔한 그다. 199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반생인 Z세대들에게도 익숙한 언니, 누나가 된 지금. 이들이 한 번쯤 봤으면 하는 자신의 작품은 무엇일까.
엄정화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MZ세대에게는 영화 ‘싱글즈’,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추천하고 싶다. 그때의 서른과 지금의 서른이 같은 지점에서 고민할까? 그건 아닐 것 같다. 여자로서, 2030 나잇대 사람들로서 진짜 반응이 궁금하다”며 큰 눈을 반짝인다.
이어 “전 제 작품들을 다 좋아한다. 장르적인 영화에 도전할 때 성취감도 느끼고, 열심히 하는 느낌도 좋다. 다양한 영화를 만나 변화하는 제가 좋다”면서 “지금은 생활감이 있는 현실적인 사람들의 이야기, 깊은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여자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엄정화다. 롤모델로 자주 손꼽히기도 한다. 댄스가수 유랑단을 통해 전국을 함께 누빈 후배 가수 이효리, 보아, 화사는 엄정화를 향한 사랑과 존경을 쏟아냈다. 현업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선배에 대한 고마움일 테다.
엄정화는 “배우와 가수를 병행하는 것이 참 어렵다. 전 처음부터 같이 시작했음에도 ‘가수는 가수만 해야 하고, 배우는 배우만 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깨기가 힘들더라. 좋은 작품을 찾기도 어려웠다”라며 “그래도 지금은 제가 시작했을 때보다 인식이 좋아졌다. 이런 부분에 대해 연기돌로 불리는 요즘 친구들이나, 가수 후배들이 좋게 표현해준 것 같다. 돌아보면 기쁘다”라고 소회를 전한다.
“제 힘의 원동력이요? 힘들 때는 이겨내고 싶어서, 어려울 때는 이걸 넘어가고 싶어서 해냈던 거 같아요. 내 마음이 아직 멈추고 싶지 않은데, 지금 멈추면 돌아봤을 때 너무 슬플 것 같더라고요. 노래도 연기도 제가 너무 사랑하는 일이거든요. 나이와 인기를 떠나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해내고 싶었죠. 팬데믹 영향으로 활동을 꽤 쉬다 나왔으니, 저에게 2023년은 보너스 같은 해인 거 같아요. 저, 온전히 이 시간을 즐길게요. 감사합니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사진=제이엔씨 미디어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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